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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용의 한반도평화워치] 개방된 북한의 경제 성공, 사람에 대한 투자가 결정한다

북한의 경제 발전 
2019년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비핵화 문제로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새해 들어 중국을 다시 방문했다. 세계 언론은 3~4월 중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과의 두 번째 만남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싸고 관련 국가들의 팽팽한 외교적 수 싸움이 한반도라는 체스판을 두고 올해도 다시 시작되는 형국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마리가 마련된다면, 비핵화의 구체적 절차와 행동을 위한 후속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 내부와 남한, 주변 국가, 국제기구, 국내·외 민간단체 등에서 북한 경제의 개혁과 개방에 관한 논의도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북한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146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북한은 1인당 국민소득 1500달러 이하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다. 북한 주변에는 2017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 3위인 일본, 세계 11위인 러시아, 세계 12위인 남한이 포진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유독 북한만이 가난한 것은 결과적으로 지난 반세기 이상의 기간 북한의 정치·경제·사회시스템이 북한 주민을 잘살게 하는 데 실패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부터는 북한 경제가 주변 국가들의 경제적인 성과를 빨리 따라가는 것이 북한을 위해서도 좋고, 동북아 지역 경제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서도 좋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우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 경제의 개혁과 개방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 답은 ‘북한 사람’이다. 너무 오랫동안 폐쇄적인 경제와 국제사회에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 경제시스템과 북한 사람들은 경제에 관한 국제적 관행과 제도에 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지난 몇십 년간 북한이 지속해 온 중국과의 경제 교류는 북한이 중국이란 렌즈를 통해서만 세계를 바라본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 경제가 개방되고 북한 주민들이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과 교류가 증가하면 북한 사회가 국제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과 경제 주체들에겐 경제 활동의 국제적 관행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결국 북한 사람에 대한 투자와 교육·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된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국제 거래 및 국제기구들의 사업 개발 과정, 민간 기업들의 투자 결정 과정, 국제 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 방법 등 열거하기도 힘든 많은 내용과 주제들에 관하여 빨리 이해하고, 공부하고 배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 발전 원동력은 인적 자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경제를 발전시킨 국가들의 성공 요인들은 각 나라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 요인은 공통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기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 회복, 한국의 경제 성장 신화, 대만의 경제 발전, 개혁개방 40년의 중국 경제 발전, 최근 베트남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모두 인적 자본의 축적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은 국가와 개인이 모두 인적 자본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결과였다고 설명해도 과하지 않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의 기능을 도입하고, 경제 개방을 통해 국제 경제 체제에 편입되어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도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로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이 향후 경제 발전을 위해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은 모든 분야에서 국제 사회와 소통을 강화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관행을 습득하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는 그동안 고립되었던 북한에 대해 인적 역량을 강화해주고 교육·훈련을 제공하며, 북한은 이를 통해 빠르게 인적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북한 경제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
 
북한 경제개발은 적어도 30년, 한 세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은 경제 개방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 2위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 1만 달러가 되지 못한다. 1986년 ‘도이모이’ 경제 개혁으로 경제 발전을 시작한 베트남은 최근에 매년 6% 이상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 이하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주변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이 도와준다면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30년의 세월을 고려하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 계획과 이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아무리 주변 국가들이 도와주고 국제 금융기관들이 싼 차관을 제공해 북한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북한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한국을 포함해 누구도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을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기회와 이득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국제적 경제 관행과 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북한은 경제 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시간을 더 중요한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경제 발전에 성공한 국가들의 경제 발전 과정은 어쩌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북한이 생각하는 ‘단번도약’(낙후된 제조업 산업 기반을 뛰어넘어 ICT 기반 지식 경제를 활성화해 여러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는 경제 도약)은 얼마나 빨리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을 북한에 도입하고 북한 사정에 맞게 성공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주변 국가들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배우고 얼마나 빨리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남의 실패 경험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는 길이다. 결국, 북한 경제의 발전은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북한 스스로가 사람과 시간이란 변수를 놓고 북한의 경제발전 방정식에서 얼마나 슬기롭게 그 해법을 찾느냐에 달려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베트남 발전 본격화했다
베트남 경제는 1980년대 중반까지는 폐쇄적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했으나, 86년 ‘도이모이’로 불리는 개방·개혁 조치로 개방형 시장경제로 이행됐다. 1차 도이모이 정책이 시작된 86년부터 베트남은 경제와 토지 개혁, 민영화·개방화 등 다양한 개혁 조치를 했다. 그러나 개혁 초기 베트남은 다양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이 더디게 이루어졌다.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원조 자금과 차관이 초기 베트남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87년 베트남에 유입된 원조와 차관은 2억 달러 정도였고,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1000만 달러였다. 40년이 지난 2017년 FDI는 140억 달러에 이르고, 국제 원조·차관은 24억 달러 정도이다. 베트남 경제 발전에 있어 FDI가 중요한 자금원이었다.
 
베트남 경제의 개혁·개방 과정은 한마디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 과정이었다. 92년 미국의 1차 경제 제재 해제, 97년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2001년 미·베트남 무역협정 비준서 교환 등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속도를 내며 단계적인 국제사회 편입이 이루어졌다.
 
베트남은 1976년 세계은행에 가입했다. 그러나 미국이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등을 이유로 경제 제재를 하며 세계은행 지원을 받지 못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 후에야 세계은행으로부터 인프라 부분을 중심으로 금융 지원을 받게 됐다. 베트남은 66년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했지만 미국의 경제 제재로 ADB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이후 본격적인 지원을 받아 경제 발전에 필요한 인프라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있었다. 특히, 세계은행·ADB 같은 국제 금융기구와 유엔을 비롯한 원조기관은 베트남의 초기 경제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고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베트남과 국제기구의 협력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은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은 아직도 베트남이 경제 개혁과 개방을 선언한 86년 이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은 미국의 경제 제재 완화와 그 후의 다양한 후속 조치에 따라 단계적으로 국제금융기구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대 들어 베트남에 대한 FDI가 급격히 늘어나게 됐다. 베트남 경제 발전 사례는 국제 사회로의 편입과 이에 따른 다양한 지원과 협력이 외부로부터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베트남 내부에서 인적 자본을 축적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지식과 경험·기술을 배우고 축적해 온 베트남 내부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경제 발전 성공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일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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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