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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 뗀 ‘규제 샌드박스’…신청부터 칸막이

신기술·서비스가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시장에 조속히 출시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17일 첫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이 제도의 근거 법안인 산업융합촉진법과 정보통신융합법이 이날부터 발효된다고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란 모래 놀이터처럼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 수 있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하는 제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 홈페이지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 홈페이지 모습.

제도 시행 첫날인 이날 하루에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현대자동차, KT, 카카오페이 등 대기업부터 마크로젠(바이오)·모인(핀테크)·조인스오토(플랫폼) 등 다양한 스타트업·중견기업 등 총 19곳이 규제특례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제도 면면을 들여다보면 부처 간 칸막이 등으로 당초 취지와는 다른 ‘반쪽짜리 규제 샌드박스’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벌써부터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운영하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 홈페이지 모습.

산업통상자원부가 운영하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 홈페이지 모습.

규제 샌드박스는 ▶규제 신속확인 제도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 제도 ▶임시 허가제도 등 크게 3가지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규제 신속확인 제도에 따르면 기업들이 신기술과 관련한 규제가 있는지 정부에 문의하면 정부는 30일 이내에 회신해야 한다. 만약 회신이 없거나 관련 규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신기술·신제품을 곧장 시장에 출시해도 된다. 그러나 정부가 판단했을 때 기존 규제가 모호하거나 불합리하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임시 허가’를 부여하거나 안전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 규제를 면제하는 ‘규제 특례’를 해당 기업·서비스에 적용하게 된다. 임시 허가와 규제 특례는 심의위원회가 심의한다. 심사 통과 기업들은 2년간 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됐지만 기업들이 그간 고충을 호소해온 규제 대못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부처 간 칸막이 문제가 있다. 17일 문을 연 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는 과기정통부(sandbox.or.kr)와 산업부(sandbox.kiat.or.kr)가 각각 따로 운영한다. 규제를 심사하는 데도 정보통신기술(ICT)과 산업 분야를 구분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는 과기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문의해야 하고, 산업 분야 규제 샌드박스는 산업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문의해야 한다. 어느 기관으로 신청했는지에 따라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위원장 유영민 과기부 장관)’와 ‘규제특례 심의위원회(위원장 성윤모 산업부 장관)’의 심의를 거친다. 익명을 요구한 전기차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업 한 곳이라고 부처 한 곳, 규제 한 가지에만 얽매여 있는게 아닌데 왜 부처별로 창구를 나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시행된 첫날 접수된 안건

규제 샌드박스 시행된 첫날 접수된 안건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됐지만, 당장 다음달 열리는 심의위원회가 위원들조차 정해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부는 이번달 중 심의위원들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장관이 주재하는 위원회가 얼마나 전향적으로 규제 관련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게 업계의 시선이다. 규제 특례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국내 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해당 부처 실무자들을 그간 여러차례 만나서 해결되지 않은 규제에 대해 심의위가 다른 결정을 내릴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기업들의 특례 부여 절차를 보고 신청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신청한 KT와 카카오페이는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보내던 종이 고지서 대신 카카오톡·문자 메시지로 전자 고지를 받을 수 있는 임시허가를 신청했다. 정보통신망법 등의 규제로 불가능했던 모바일 전자고지가 임시허가를 받게 되면 앞으로 카톡으로 각종 과태료 고지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대자동차는 도심지역 수소 충전소 설치를 요청했다. 현행법(고압가스안전관리법·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등)에 막혀 있다. 블록체인 기술로 기존 3~4일 걸리던 해외송금을 하루로 줄이는 송금 서비스(스타트업 ‘모인’)와, 폐차업 등록을 하지 않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폐차 비교견적을 제공하는 서비스(‘조인스오토’) 등도 규제 특례를 요청했다. 정부는 이번에 접수받은 사례들을 다음달 중 심의·의결한다는 계획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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