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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없는 악기도 연주자 잘 만나면 명기

기자
윤경재 사진 윤경재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26)
JTBC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 볼품없는 악기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이웃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중앙포토]

JTBC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 볼품없는 악기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이웃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중앙포토]

 
울음이 울림이 되는
 
소리에도 부딪히며 아파하는 빛깔이 있다
두두 둥 둥둥 개개 갱 징징
덩따쿵따 쿵따쿵따
맨 처음의 눈짓 하나로 잉태된
구름과 바람, 우레와 비
살을 섞으면 신음을 내는 사물은
배냇 속 놀던 장단이다
 
소리는 소리를 낳고
울음은 울음을 낳을 뿐
 
주인공이면서도
말없음표의 검은 섬처럼 외로워했던 관객들
실컷 바수어진 소리, 울음 삼키며
색깔 다른 고갯짓을 해도
구석구석 울림이 한 두레를 이룬다
 
굿거리와 덩더꿍이장단은 할미의 약손이다
소리의 빛깔이 스미듯 울림이 되어
외진 가슴에 산수화를 그려 넣는다
너와 나 틈새에 연리지 가락 메우고
삶과 죽음의 비나리를 뿌린다
 
[해설]
런던 템스 강변 모습. 그늘진 한쪽 모퉁이에 한 노인이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며 동냥하고 있었다. (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중앙포토]

런던 템스 강변 모습. 그늘진 한쪽 모퉁이에 한 노인이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며 동냥하고 있었다. (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중앙포토]

 
런던의 템스 강변에 많은 사람이 나와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늘진 한쪽 모퉁이에 한 노인이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며 동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신통치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거지 노인이 벗어놓은 모자에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웬 낯선 외국인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노인이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음악은 볼품없어도 자세만큼은 진지하고 절실해 보였다. 조금만 잡아주면 좋은 연주를 할 것 같았다.
 
거지 노인의 바이올린 대신 연주하는 파가니니
거지 노인은 다 떨어진 외투를 입고 신발도 떨어져 너덜너덜했다. 심지어 덥수룩한 머리는 제대로 감지 않아 처량해 보였다. 외국인이 가까이 다가가 측은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갑자기 빈 몸으로 산책을 나오느라 지금 제 수중에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제가 할아버지를 대신해 잠시 몇 곡 연주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노인은 핑곗김에 잠시 쉬기로 마음을 먹고 낯선 외국인에게 낡은 바이올린을 기꺼이 건네주었다. 외국인은 그것을 손에 쥐고서 음을 조율한 다음 천천히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낡은 바이올린에서 놀랍도록 신기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 외국인이 연주하는 곡에 금세 매료됐다. 한 곡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곡이 끝난 후에는 몇몇 사람이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점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거지 노인은 자기가 벗어놓은 모자를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노인의 모자에 넣었다. 순식간에 돈이 수북이 쌓였다. 그것도 한 푼 두 푼 던져주는 동전이 아니라 돈의 단위가 컸다. 몇몇은 지갑을 열고 큰돈을 꺼내 모자에 넣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경찰관이 놀라 달려왔다. 그러나 경찰관마저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감상하다가 자기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거지 노인의 모자에 넣어 주었다.
 
잠시 후 그의 연주가 끝났다.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이 우레와 같은 손뼉을 쳤다. 그러자 그 외국인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절했다. 그때였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 사람은 파가니니다. 그 유명한 파가니니!”
 
바이올린의 귀재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 그는 바이올린 줄이 끊어진 채로 완벽한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는 템스 강변을 산책하러 나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노인을 위해 몇 곡을 연주해 주었다. [중앙포토]

바이올린의 귀재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 그는 바이올린 줄이 끊어진 채로 완벽한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는 템스 강변을 산책하러 나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노인을 위해 몇 곡을 연주해 주었다. [중앙포토]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년)는 바이올린의 귀재로 알려진 인물이다. 심지어 바이올린 줄이 끊어진 채로 완벽한 연주를 하기도 했던 그를 ‘바이올린의 마술사’라고도 불렀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런던에 연주차 와 호텔에 머물렀을 때 잠시 짬을 내어 템스 강변을 산책하러 나왔다. 그러다가 불쌍한 거지 노인이 바이올린을 힘겹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위해서 대신 몇 곡을 연주해 주었다.
 
파가니니와 거지 노인이 같은 악기로 다른 음악을 만들어 낸 차이는 음악에 대한 자세의 차이다. 파가니니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음악을 창조한 것이며 노인은 자기 감흥에 쏠린 음향을 뱉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파가니니는 먼저 연주할 자기 악기의 음을 조율할 줄 알았다.
 
노인이 낸 소리는 물체의 물리적 진동일 뿐이었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음악은 연결된 음의 파동을 넘어 의미의 세계로, 마음의 영역으로 차원을 달리한 것이다. 3차원에서 4차원 세계로 청중을 이끈 것이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음악은 듣는 순간 시공을 초월해 의미 있던 과거를 회상하게 하거나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이 있다. 공간마저 초월하게 한다. 음악의 이런 특별한 힘 덕분에 사람들은 쉽게 황홀경에 빠진다. 황홀경을 뜻하는 영어 ‘ecstacy’는 그리스어 ‘exstasis’에서 나왔는데 ‘ex’는 바깥을 의미하고, ‘stasis’는 서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황홀경이란 ‘자신을 잊고 자신의 바깥에 서 있는 상태로 이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의 노래와 연주를 듣고 혼절하는 청소년들이 생기나 보다.
 
사람들이 보기에 망가지고 볼품없는 악기이다. 아무리 수고롭게 연주해도 와서 보는 이가 드물다. 감동을 전달하기는커녕 날 선 소음만 가득하다. 그러나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이라면 볼품없는 악기에서도 놀랍도록 감동적인 선율이 울려 퍼져 나온다. 이웃에게 감동을 주고 평화와 쉼을 선사할 수 있다.
 
볼품없는 악기도 연주하기 나름
김덕수패 사물놀이 공연 모습. 사물놀이는 각 악기가 홀로 연주될 때보다는 넷이서 함께 어울릴 때 더 신명이 나고 감동을 준다. [중앙포토]

김덕수패 사물놀이 공연 모습. 사물놀이는 각 악기가 홀로 연주될 때보다는 넷이서 함께 어울릴 때 더 신명이 나고 감동을 준다. [중앙포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깨지고 굴곡진 삶일망정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악기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울림과 화음이 무엇인지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물놀이는 각 악기가 홀로 연주될 때보다는 넷이서 함께 어울릴 때 더 신명이 나고 감동을 준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가락과 장단이 몸에 새겨 있다. 자세를 바꾸어 알맞은 길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각자의 소리가 소음과 울음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울림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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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