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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증손 김용만 “할아버지는 때론 두렵고 때론 자랑스러운 오묘한 존재”

임시정부 100년, 임정 루트를 가다 ④
증손자 김용만씨가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청사에 걸린 김구 주석 사진 앞에 섰다.

증손자 김용만씨가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청사에 걸린 김구 주석 사진 앞에 섰다.

“많은 분이 기억하는 인자한 미소를 띤 백범 선생 사진과 가족이 아는 증조부님은 다소 차이가 있었어요. 국가의 운명을 위해 싸우던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항상 가족보다 국가를 위한 삶을 사셨던 분이죠. 백범 할아버지는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자랑스러운 오묘한 존재로 제 마음속에 계십니다.”
 

3대가 모두 공군 학사장교 출신
“임정 100년, 중국 5·4운동 100년
한·중이 함께 기념했으면 좋겠다”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 ~1949) 선생의 증손자 김용만(33)씨가 기억하는 증조부의 모습이다. 광복군 창설위원장이었던 김구의 기백을 계승한 조부 김신(학사 장교 2기·전 공군참모총장), 부친 김양(학사 장교 70기, 공군 중위 전역, 전 국가보훈처장)에 이어 김용만씨는 2014년 공군 중위(학사 장교 125기)로 전역했다. 그는 “국방에 기여하기 위해 방산업체에서 일한다”면서 “서울시가 기획한 3·1운동 100주년 시민위원회 310단장으로도 활동 중”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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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씨는 어릴 때 위인 만화를 통해 증조부를 처음 만났다. “『백범일지』에서 ‘득수반지무족기(得樹攀枝無足奇) 현애철수장부아(懸崖撤手丈夫兒)’라는 구절이 가장 가슴에 남아요.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나, 벼랑에서 잡은 가지마저 손에서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장부’라는 뜻이죠.” 이 글은 백범의 스승인 성리학자 고능선(高能善·1842∼1922) 선생이 과단성이 부족해 보이는 어린 백범에게 준 글이다. 김용만씨는 “그 글은 백범이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용기의 근원”이라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김용만씨는 “우리에게 3·1운동과 임정 100주년의 해인 2019년은 중국엔 5·4운동 100주년이자 건국 70주년의 해”라며 “한·중이 함께한 역사를 기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6~2007년 부친이 상하이 총영사로 재임할 때 조부와 함께 증조부의 발자취를 찾아다닌 적이 있다. 김용만씨는 “현대적 교통편을 이용해도 힘들었는데, 임정 요인과 가족들이 일제의 감시 아래 그 먼 길을 이동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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