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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웬 AR 게임? 포켓몬 고 열풍서 힌트

증강현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주인공인 게임회사 대표 유진우(현빈·오른쪽)와 그의 연인이 된 정희주(박신혜). 유진우를 곤경에 빠뜨린 증강현실 게임에는 정희주와 똑같이 생긴 신비한 캐릭터 엠마도 등장한다. [사진 tvN]

증강현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주인공인 게임회사 대표 유진우(현빈·오른쪽)와 그의 연인이 된 정희주(박신혜). 유진우를 곤경에 빠뜨린 증강현실 게임에는 정희주와 똑같이 생긴 신비한 캐릭터 엠마도 등장한다. [사진 tvN]

스마트 렌즈로 구현된 증강현실 게임 속에서 죽인 상대가 현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죽은 자는 비가 내리고 기타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들려올 때면 디지털 좀비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을 공격한다. 나중엔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나타나 목숨을 위협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은 이런 곤경에 빠진 게임회사 대표 유진우(현빈)가 현실과 게임을 넘나들며 자신을 옭아매는 오류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국내 최초의 증강현실 소재 드라마다. 게임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는 물론 게임을 잘 모르는 중년층까지도 ‘알함앓이’에 빠지게 했다.
 
과학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황당한 판타지가 몰입감을 주는 건 이야기 전개의 설득력 덕분. 이는 타임슬립 소재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 그리고 웹툰과 현실을 넘나든 ‘W’ 등 남다른 상상력을 자랑하는 송재정(46) 작가의 솜씨다. 이번 드라마는 13일 방송된 14회 시청률이 10%(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까지 오른 가운데 이번 주말 16부작으로 종영한다.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송작가는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에서 이야기를 착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W’가 끝난 뒤 미래에서 온 남자 유진우를 중심으로 한 타임슬립 소재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었는데, 다른 소재가 없을까 찾아보던 차에 당시 유행했던 포켓몬 고를 해봤다. 여의도 광장에서 직접 포켓몬을 잡아봤는데 엄청나더라. 포켓몬 고처럼 아이템만 증강현실로 한다면 드라마로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유진우 캐릭터만 놔둔 채 증강현실 소재로 이야기를 바꿨다”고 말했다.
 
드라마 화면에는 게이머의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방어력·공격력·경험치 등이 수치로 표현된다.

드라마 화면에는 게이머의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방어력·공격력·경험치 등이 수치로 표현된다.

이어 “포켓몬 고를 하면서 더 고차원적인 증강현실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무서웠다. 각본을 쓰며 공학박사와도 얘기를 했는데, 완벽한 가상캐릭터가 나오면 애인이나 친구도 필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내용처럼 증강현실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살의가 표출되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두려움, 가상이 현실을 압도할 수 있다는 위압감에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게임 세대라고 밝힌 송작가는 “첫 회 현빈이 스페인 광장에서 게임을 하는 부분이 핵심이라 생각했는데, 그때 게임을 모르는 시청자들이 빠져나갔다. 시청 층의 이동을 겪으며 7·8회 정도 되니까 시청자들이 게임에 적응을 한 것 같다. 퀘스트·레벨업·동맹 등 게임의 기본 틀을 넘지 않으려 애썼다. 가이드라인을 소박하게 잡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송재정 작가

송재정 작가

중반 이후 드라마 전개가 느리고, 회상 장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진우가 모든 걸 잃고 애인 희주(박신혜)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고뇌하는 과정을 그리려 했는데, 그게 일부 시청자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진 것 같다. 하지만 엔딩으로 가기 위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판타지 드라마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송작가는 원래 시트콤에서 출발했다. ‘순풍산부인과’ ‘똑바로 살아라’  ‘거침없이 하이킥’ 등 김병욱 PD와 수많은 히트작을 썼다. 그는 “호기심을 쫓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 시트콤을 할 때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코미디만 하다 보니 판타지와 멜로도 하고 싶어져 드라마로 넘어오게 됐다. 욕망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정통 드라마 작가 출신이 아니어서 작품이 혼종이란 얘기를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판타지를 다루지만 감정의 리얼리즘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계인을 만나거나 증강현실의 오류로 환상을 볼 때 인물이 어떤 공포를 느끼고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을 그리는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이런 원칙만 지킨다면 어떤 종류의 판타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독창성의 원천에 대해선 “책을 좋아하는데 인문학·전기·잡지 위주로 본다.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있는 책은 작업 스트레스가 본능적으로 나와 안 본다. 유진우라는 인물은 테슬라 회장인 일론 머스크의 자서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존 스토리텔링에 의존하지 않고, 모델을 외국의 특이한 인물에서 찾기 때문에 독창적이란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초기에는 판타지의 기본을 모른다는 핀잔을 들어가며 제작자를 설득하려 애썼는데, 지금은 제작자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서 오히려 부담이 될 정도”라고 전했다.
 
그의 드라마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작 그 자신은 “소재가 특이하다는 말을 듣지만 난 보편적 플롯이라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영웅 신화에서 출발한다. 모든 걸 가진 왕이지만 전쟁에 나가 현실적 어려움뿐 아니라 신화적인 고난도 겪는다. 유진우의 플롯도 마법과 현실에서 동시에 고난을 겪으며 영웅이 돼가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내 드라마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히어로다. 영웅이 아닌 사람이 고난과 여러 만화적 과정을 겪고 현실의 사랑을 찾으며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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