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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유럽서 유명했던 한국화가...이응노 '원초적 조형본능'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양반집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19세때인 1922년 서울로 상경, 서화계 대가인 김규진을 찾아가 간청했고, 결국 그의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다. 대나무를 잘 그렸다. 1924년 '청죽(晴竹)'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선전에서 '묵죽화'로 몇 차례 입선하여 '대나무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스승에게 죽사(竹史)라는 호도 받았다. 하지만 옛 동양화를 그대로 답습할 뿐인 화단의 풍조에 한계를 느꼈다.

1936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미쓰바야시 제이게츠(松林桂月)에게 일본화를,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현대적인 미술교육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온 이응노는 일본미술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 고유 화풍을 강조하는 ‘단구미술원’을 조직했다. '고암화숙'을 차리고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에도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이 시기 이응노는 구상에서 벗어난 반추상의 수묵화를 실험하기 시작한다.


한국전쟁을 피해 충남 수덕사에 기거중이던 이응노는 해외 미술계 진출을 꿈꾼다. 1957년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을 통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되는 것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다.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응노는 서양의 앵포르멜(informel) 회화 양식을 흡수한 후, 지필묵을 통한 서예적 추상 세계의 지평을 연다. 1962년 엥포르멜 운동을 주도하던 '폴 파케티 화랑' 전속작가로 유럽과 전 세계를 무대로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세계적인 한국화가'에게 불운이 닥쳤다. 한국전쟁 당시 생이별한 아들의 소식을 구하기 위해 1967년 독일을 방문하면서다.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간첩 화가'로 낙인이 찍혀 2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뤘다. 옥중에서도 그림은 멈추지 않았다. 먹다 남은 밥풀을 뭉쳐 조각을 만들고 휴지에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한다.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작품을 전시할 수도 없었다. 간첩사건에 2번이나 휘말려 전시와 판매가 금지됐다. 1983년 프랑스에 귀화한 이응노는 결국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사망했다. 정부에서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1989년 1월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은 주인공 없이 열렸다. 그 전시회 첫 날, 그는 파리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였다.


'군상'과 '문자추상'의 한국적 추상화를 구축한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가나문화재단과 인사아트센터는 '이응노의 도불 60년, 작고 30년 기념전'을 16일부터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3층에 펼친다.

1958년 도불 이후 1960, 1970년대에 작업한 콜라주와 추상, 1980년대의 군상 시리즈 70여점을 선보인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비석처럼 그 낡은 돌의 마티에르, 돌에 새겨진 문자 등 오랜 세월에 걸쳐 풍우를 견디어 온 비석들의 문자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런 세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문자에 관한 트키닉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문인화로 화단에 입문했던 이응노는 한자와 한글을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콜라주, 수묵, 유화,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태로 문자추상으로 발전시켰다.

화가에게 경제적 곤궁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도불 후 물감조차 사기 어려웠지만,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라주 기법으로 폐자재를 활용하고 그 위에 수묵 담채로 마티에르를 표현한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콜라주는 이응노의 조형본능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회화, 조각, 세라믹, 타피스트리 등 장르와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문자추상'은 수묵화와 서예를 바탕으로 앵포르멜(informel)을 구현했던 작업이다. 시서화 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미술에 있어서 문자의 필획이 갖는 추상성과 조형성은 오히려 서양의 추상보다 역사가 깊다 할 수 있다.

이응노의 60년대 추상 작업에서 변형된 문자들은 언뜻 사람들의 형상과 닮아있으며, 70년대의 문자추상은 사람과 융합한 형태로 독특한 패턴을 보인다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표현은 1980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군상'이 등장했고 1989년 작고할 때까지 계속됐다. 익명의 군중이 서로 어울리고 뒤엉켜 춤을 추는 듯한 군상 연작은 평화와 어울림속에 서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보여준다.

"서양인의 뒤만 쫒아가서는 결국 국제무대에 설 수 없다"던 이응노의 예술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세월에 곰삭은 그림처럼 '한국화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창조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고암 이응노의 '원초적 조형 본능'을 만나볼수 있는 전시는 2월10일까지. 관람은 3000원.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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