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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평양냉면 5대 전설, 을지면옥 철거된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재개발 위기에 놓인 을지면옥의 입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재개발 위기에 놓인 을지면옥의 입구.

대대로 물려내려온 노포(老鋪)로 유명한 서울 을지로 골목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피맛골처럼 을지로 일대에도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다. ‘서울 5대 평양냉면집’으로 꼽히는 을지면옥도 재개발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을지로 재개발 바람에 노포 문닫을 위기
5대 평양냉면집 을지면옥도 철거 예정
“남편 태어난 곳. 쫓겨날 때까지 장사할 것”
노가리 골목도 일부 철거 앞두고 있어
“박원순 시장이 시민 기만하고 있다”

을지면옥은 종로구 장사동, 중구 을지로동ㆍ광희동 일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에 속해 있다. 이 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다음 단계인 관리처분계획을 통과하면 철거에 들어간 인근 공구상 거리처럼 사라지게 된다. 
 
14일 저녁 을지면옥에서 만난 안주인 홍정숙씨는 “재개발에 동의한 적 없다. 남편이 태어난 고향이 이 집인데 어딜 갈 수 있겠느냐”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쫓겨나는 순간까지 여기서 장사하겠다”고 말했다.    
을지면옥이 속한 세운 3-2구역의 재개발 후 조감도. [사진 한호건설그룹 홈페이지]

을지면옥이 속한 세운 3-2구역의 재개발 후 조감도. [사진 한호건설그룹 홈페이지]

을지면옥은 1985년 을지로 공구상 거리 안쪽, 지금의 건물에서 시작했다. 69년 경기도 연천 전곡면에서 홍영남ㆍ김경필 부부가 시작한 냉면집이 87년 의정부로 옮겨와 의정부 평양면옥이 됐고, 두 딸이 그 계보를 이어 서울에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을 냈다. 이 계보가 평양냉면 의정부 계열의 역사다.  
 
을지면옥은 큰 길가에서 안쪽 건물로 갈 수 있는 통로만 보인다. 손님들이 다니기 편하도록 앞 건물의 한쪽을 임대해 만든 것이다. 점포 사이에 조그맣게 들어서 있어 자칫 한눈팔다 지나치기 쉽다. 이조차도 을지면옥의 맛이 됐다.  
 
홍 씨는 “냉면 맛도 맛이지만 이 숨은 건물을 찾는 맛도 있다며 손님들이 좋아했는데 대형 빌딩이 들어서고 그곳에 입점한들 이 분위기와 맛이 나겠느냐”며 “오라는 곳은 많지만, 을지로에 을지면옥이 있어야지 다른 곳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또 “물려받아서 할 사람도 마땅하지 않고 요즘 같아서는 그만둘 마음마저 생긴다. 누구를 위한 대규모 재개발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노가리 골목이 있는 수표정비구역은 2023년 완공 목표로 재개발 할 예정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노가리 골목이 있는 수표정비구역은 2023년 완공 목표로 재개발 할 예정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을지면옥뿐 아니다. 을지다방ㆍ통일집ㆍ양미옥ㆍ안성집 등 을지로 대표 노포들도 철거 위기에 놓였다. 한국판 옥토버 페스트(독일 뮌헨의 대표적인 맥주 축제)로 입소문 난 을지로 노가리 골목도 수표 도시환경정비사업(2023년 완공 예정)으로 일부 철거된다.
 
노가리 골목의 명물이 된 골목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정규호 뮌헨호프 사장은 “공사하는 동안 펜스를 쳐놓고 하더라도 골목에 좌판을 깔아놓고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옥토버 페스트처럼 명소로 키우겠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는데 재개발로 골목 전체가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에서 철거 중인 공구상 거리. 사진 한은화 기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에서 철거 중인 공구상 거리. 사진 한은화 기자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은 2006년부터 추진됐다. 세로로 길게 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양쪽 구역을 모두 재개발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2015년께 세운상가 재생사업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재생 바람이 불었다. 
 
이른바 ‘박원순표 도시재생 1기 프로젝트’였다. 박 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꼽히며,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 제조업의 잠재력을 활용해 ‘메이커스 스페이스’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세운상가 안에 창업공간인 ‘세운 메이커스 큐브’를 만들고 젊은 작가들을 입주시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도심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로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그런데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세운상가만 남겨질 모양새다. 한국전쟁 이후 공구상들이 모여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전초기지가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
 
올 초부터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들어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1, 3-4ㆍ5구역의 경우 영업하던 400여개의 공구상이 이전하거나 폐업했다.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말 서울시가 발표한 주거비율이 90%까지 높아지는 도심 재개발 사업의 첫 번째 대상 지역이다.    
 
서울시의 전면 철거 움직임에 젊은 창작자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세운메이커스 큐브에 입주해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전유진씨는 “세운상가 일대의 제작기술을 활용해 메이커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로 입주했는데 거래처는 철거되고 세운상가만 기념비처럼 덜렁 남게 됐다”며 “‘청계천ㆍ을지로에서는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말처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조업 장인들이 모인 곳이 한순간에 철거되니 절망적이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 입주해 있는, 백남준 작가의 엔지니어였던 이정성 장인은 “서울시가 지난해 세운상가를 발전시키고 재생하는 데 힘써달라며 16명의 장인까지 뽑아놓고, 뒤에서 헐고 들어오고 있다”며 “서울시가 세운상가 일대에서 하는 것은 재생이 아니라 재개발이다. 시장이 시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을지로 일대가 워낙 노후해 재개발은 불가피한데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를 놓고서 서울시의 정책과 철학이 충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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