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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배신정치" MB땐 "강도"···文 '3년차 징크스'는 원전되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원전 건설 재추진” 발언이 여권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당의 당권 경쟁에도 뛰어들었던 중진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배치되는 입장을 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14일 “추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재개된 신고리 5ㆍ6호기 외 추가 원전 건설은 더이상 없다고 일축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선 당·청 사이의 이같은 불협화음을 집권 3년차 징크스의 전조로 보기도 한다. 역대 정부의 전례를 봐도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 항상 내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3년차인 2015년엔 ‘배신의 정치’ 바람이 휘몰아쳤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이 그해 4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비판한 게 발단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
 
이후 줄곧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던 당청 관계는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결국 폭발했다.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ㆍ변경 요구 권한을 강화한 개정안이 5월 말 본회의를 통과하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유 의원을 겨냥해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비판했고, 결국 유 의원은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기정치 한다”는 친박계의 공세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소신 정치인이라는 간판을 달아줬다. 당청 갈등은 이후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유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는 ‘유승민 찍어내기’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잘되는 집안은 강도오면 싸우다 멈춰”
 
이명박 정부에선 집권 3년차였던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한나라당내 친이계와 친박계가 충돌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부처를 이전시켜 행정도시를 만들려던 당초 계획을 수정해 기업을 입주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친박계는 당시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며 원안을 고수했고 박근혜 전 대표가 2010년 6월 국회에서 직접 수정안 반대토론에 나서며 부결을 끌어냈다. 결국 정부 의도대로 수정하지도 못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공방은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박 전 대표가 “일 잘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는 이 대통령 말엔 “그런데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고 반문하는 등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3년 차인 2005년 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노 대통령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3년 차인 2005년 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노 대통령 [중앙포토]

 
“대통령이 신이냐”
 
노무현 정부도 2005년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 등을 계기로 당내에서 쓴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일부 초선 의원은 다른 곳도 아닌 여당 홈페이지에 대통령을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비판 글을 올렸다.
 
특히 당 회의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신이냐”, “당이 왜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고 청와대만 따라가느냐”, “청와대가 당정 분리 원칙을 지킨다고 강조했지만 진짜 중요한 사안은 전부 청와대의 결정을 따랐다”는 등 청와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이어 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대연정이라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으나 야당은 물론 여당마저 등을 돌리면서 심각한 권력누수 현상에 직면했다.
 
악수하는 한화갑, 권노갑 최고위원 [중앙포토]

악수하는 한화갑, 권노갑 최고위원 [중앙포토]

 
집권 3년 차부터 권력 투쟁 조짐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집권3년차 징크스를 깨보려 했지만, 3년차 후반기 ‘양갑(兩甲)’으로 불린 권노갑ㆍ한화갑 최고위원간 갈등 등 동교동계 내부의 패권다툼에 발목이 잡혔다. 이후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1995년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같은 시기 차남인 김현철씨에게 권력이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집권 후반기 여권내 권력 투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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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