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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절필(絶筆)

절필(絶筆)             
―이근배 (1940∼)
 
 
시아침 1/15

시아침 1/15

아직 밖은 매운 바람일 때  
하늘의 창을 열고
흰 불꽃을 터뜨리는  
목련의 한 획
또는  
봄밤을 밝혀 지새우고는
그 쏟아낸 혈흔(血痕)들을 지워가는  
벚꽃의 산화(散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단풍으로 알몸을 태우는
설악(雪嶽)의 물소리  
오오 꺾어봤으면
그것들처럼 한 번  
짐승스럽게 꺾어봤으면
이 무딘 사랑의  
붓대
 
 
피는 목련과 지는 벚꽃과 타는 단풍이 어떻게 다 절필의 비유가 될까. 생명의 탄생과 시듦이 모두 절정이고 신비여서다. 피우는 데도 떨구는 데도 혼신의 힘이 들어가는, 낯선 이행의 장면을 붓이 옮겨 적을 수 있을까. 시인은 그 애타는 몰입과 포착의 순간을 꺾음이라 말한다. 형언할 수 없는 걸 형언해내는 그 순간에 붓은 떨어져 뒹굴고, 시인은 기진맥진해 쓰러지리라.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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