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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 있던 가시가 목으로 넘어와 응급실 왔다는 여성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1)
목에 가시가 걸렸다며 응급실로 찾아온 환자가 있었다. 엑스레이와 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가시를 찾을 수 없었다. 환자는 그 가시가 그 전엔 배에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가 잠든 사이 달빛을 타고 난쟁이들이 내려왔고 가시를 배에 심어둔 채 떠났다고 했다. [중앙포토]

목에 가시가 걸렸다며 응급실로 찾아온 환자가 있었다. 엑스레이와 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가시를 찾을 수 없었다. 환자는 그 가시가 그 전엔 배에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가 잠든 사이 달빛을 타고 난쟁이들이 내려왔고 가시를 배에 심어둔 채 떠났다고 했다. [중앙포토]

 
한 아주머니가 응급실에 왔다. 목에 가시가 걸렸다고 했다. 엑스레이와 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가시는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주머니는 응급실을 또 찾았다. 이번엔 눈에 가시가 들어가 불편하다고 했다. 안과 진료를 했지만, 오늘도 가시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딱히 이상이 안 보이니 별수 없었다. 환자는 빈손으로 퇴원했다. 하지만 집에 가서도 불편이 계속되었다. 별수 없이 다음 날 또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입구에서 의사가 가로막았다. 더는 검사할 게 없다고. 진료해줄 게 없다고 돌려세웠다. 아주머니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증상이 계속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무책임한 의사에게 화가 났다. 문전박대하는 의사가 미웠다. 그는 응급실이 떠나갈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든 말려야 했다. 환자의 팔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조금 진정되자 그는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첫날 목에 걸린 것과 다음 날 눈을 불편케 한 건 같은 가시였다. 목에 있던 가시가 눈까지 올라간 것이라 했다. 그 전엔 어디 있었냐고 물었더니, 배에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가 잠든 사이 달빛을 타고 난쟁이들이 내려왔고 가시를 배에 심어둔 채 떠났다고 했다. 그게 며칠째 떠돌아다니는 바람에 몸 여기저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이야기였다. 몽롱하고도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해 눈을 바라보았지만, 장난치는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말없이 끝까지 들었다. 굉장히 힘들었겠노라 다독여주었다. 그리곤 검사 결과를 직접 눈에 보여주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를 조심히 권유하였다. 하지만 그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자기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거냐며 화를 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응급실을 떠났다.
 
그는 매일 밤 응급실에 왔다. 나는 물었다. 왜 맨날 이 시간에만 오느냐고, 낮에는 아프지 않으냐고. 그는 낮에는 직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퇴근하면 저녁이라 응급실로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상태로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거듭된 내 질문에 그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했다.
 
그녀는 매일 밤 응급실에 와서 여러 의사와 돌아가며 싸웠다. 그 모습이 답답해 어느 날 나는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신과 명찰을 떼고 일반 의사인 척 환자를 인터뷰해 보기로 했다. 사진은 전남대 응급실 모습. [사진 조용수]

그녀는 매일 밤 응급실에 와서 여러 의사와 돌아가며 싸웠다. 그 모습이 답답해 어느 날 나는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신과 명찰을 떼고 일반 의사인 척 환자를 인터뷰해 보기로 했다. 사진은 전남대 응급실 모습. [사진 조용수]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대답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저런 상태로 어린아이들을….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누구부터 누구까지를 걱정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신과 명찰을 떼고 일반 의사인 척 환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과는 심각했다.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안정 병동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어놓았다.
 
우리는 수차례 완곡한 표현으로 접근해 보았지만, 환자는 정신과 진료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보호자에게 전화해도 소용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정신과 기록을 남기면 나를 고소하겠노라고 했다. 자기 딸을 미친년 취급하지 말라며 수화기에 거친 말을 퍼부었다. 어떻게든 치료받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환자의 인권 앞에 의사의 전문성은 솜털보다 가벼웠다. 원하지 않는 치료를 강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정신과 환자는 어디에나 있다. 머리가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일 뿐이다. 치료만 잘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문제는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그를 지속해서 관찰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가족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내버려 두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정신 보건과 관계있는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본인이든 가족이든 한쪽이라도 동의를 받아달라고 했다. 그래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법이 그렇다고 했다. 막막했다.
 
정신과 영역에서 환자의 인권은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악용을 막기 위해서다. 나는 그 기조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회적 균형도 함께 고려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최소한의 해결 루트는 만들어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없었다. 나는 절망했다.
 
그렇게 그는 발길을 끊었다. 벌써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세상은 지금도 변함없다. 진료실에서 유명을 달리한 정신과 의사의 소식을 듣고 나는 마음에 가시가 박혀 있던 그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쯤은 누군가가 그에게서 가시가 뽑아내 주었기를 간절히 바라기만 할 따름이다.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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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