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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오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견공들, 왜?

기자
권대욱 사진 권대욱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20)
견공 없는 산막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견공이 나와 함께 산막에서 고락을 같이했다. 대풍이, 기백이, 순돌이, 금순이, 진순이, 은순이, 해랑이, 대백이, 샌드, 곰곰이, 누리…. 지금은 그 이름도 가뭇한 사랑스러운 나의 견공들이다. 서로 의지했고 정을 주고받았다. 때로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만큼 충직하고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줄잡아 50여 마리 이상의 강아지가 우리 집에서 태어났고 다른 집으로 분양되기도 했다. 그 많은 개 중 어느 놈이 먼저고 어느 놈이 나중인지 이젠 그 족보도 헷갈리지만, 그들 모두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저 세상이든 이 세상이든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행복하고 다음 생에도 반드시 내 곁으로 다시 오길 바란다.
 
이름도 다양하고 생긴 것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하나 그 모두 사랑을 주고받아 단 한 녀석도 범상하지 않으니 행복했을 뿐 다른 생각은 없다. 산막 스쿨을 닮아 순서도 체계도 없지만 이제 생각나는 대로 이들을 그려보기로 한다.
 
나와 살다간 50마리의 견공
사랑하는 산막의 개들. [사진 권대욱]

사랑하는 산막의 개들. [사진 권대욱]

 
화산 대백! 15년 전 사부께서 지은 대백이의 원래 이름이다. 오래전 한밤중에 산막 갔을 때 보이지 않아 마실 나간 줄 알면서도 어떤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이던가. 그 아이의 눈망울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본 건. 나의 예감은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으니 대백이 죽으면 어디다 묻을까 고민했었다.
 
독서당 옆 양지바른 곳, 그곳이라면 책 읽다 주는 눈길이 자주 머물 법했고 그 시선 너머에 머무를 녀석의 숨결과 눈빛을 자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랬는데 이 무정한 녀석은 내게 그런 호사를 허용치 않았구나. 이곳을 거쳐 간 많은 개처럼 이 녀석 또한 죽을 때 자취를 감추었다. 대풍이가 그랬고, 순돌이가 그랬고, 샌드와 금순이가 그랬다.
 
우리에 갇히지만 않았더라면 해랑이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곳을 거쳐 간 모든 개는 그랬다. 주인의 손에 묻히기를 거부한 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잊혔다. 대백이 역시 잊힐 것이다. 나도 그 누구도 다 잊힐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잊히기를 원치 않는가. 부질없는 짓이다. 산막에 올 때마다 대백이를 생각한다. 햐아! 요 어린 녀석(기백, 1세)이 벌써 춘정을 알고 사내 행세를 하려는구나. 이리되면 대백이(13세)는 어찌 되느냐. 한때 인근에서 젤로 잘 나가던 수컷이요, 모든 동네 암캐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던 몸이다.
 
곰곰이(7세)가 대백이 딸이고, 기백이는 업둥이 어린 수컷이니 기백이가 대백이 사위가 되려는 참인데, 곰곰이는 대백이 딸이면서 또한 대백이의 아내이기도 하니. 아, 복잡 완전 견판이로구나.
 
그나저나 대백이가 안 보인다. 젊은 녀석한테 딸과 처를 뺏기고, 이 견 같은 세상 늙으면 죽어야지 하며 집 나간 건 아닌지 모르겠네. 대백아 세상이 그렇고 그러하며 가는 세월 누가 막겠느냐. 늙고 병들면 만사가 소용없으니 어서 맘 풀고 빨리 돌아와 천수를 다하여라.
 
개에게는 개의 세상이 있고 사람에겐 사람의 세상이 있는 것이니 사람의 잣대로 개를 보면 견판이지만 개의 잣대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쓸데없이 개판, 견판 할 것 없이 그저 사람의 도리를 다함이 아름답다 할 것이다. 대백이는 그렇게 갔다. 이후 세 녀석을 기르던 중 곰곰이가 행불되고 기백이 또한 보이지 않아 기다리고 찾고 있었으나 행적이 묘연했다.
 
말 못하는 누리 붙잡고 물어봐도 그저 낑낑거리기만 할 뿐 갑갑하고 애통한 마음 그지없다. 대저 수캐들은 바람나면 집 나가 며칠씩 안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라 어느 집 장가가 사위 대접 잘 받고 있기만을 희망한다.
 
사람도 개도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인연 법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없으면 보고 싶고 만나지 못하면 애통함 또한 인지상정인지라 애써 누르거나 마음 써 없애려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그 늠름한 녀석 없으면 어찌하나 걱정하고 돌아올 녀석을 그리지만 마음은 이미 이별을 예감한다.
 
설경의 산막과 누리. [사진 권대욱]

설경의 산막과 누리. [사진 권대욱]

 
이른 새벽, 새소리에 깨어 밝아오는 아침을 맞는다. 누리와 함께 맞는 새벽은 장엄하며 또 애잔하다. 들리느니 계곡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뿐 모든 것이 그대로 자연이라 장엄하고, 늘 지키지 못하는 산막인지라 외로워 애잔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제부터 곰곰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전 중요한 일정 때문에 서울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를 그냥 보내면 너무 후회될 것 같았다. 그래서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읍내 동물병원에 긴급 연락해 김 원장 오게 하고, 나도 피곤한 몸 이끌고 산막으로 갔었다.
 
가 보니 상태가 정말 심각했다. 꼬리만 겨우 흔들 뿐 숨만 붙어 있어 가엽기 그지없다. 대백이도 자기 새끼 아픈 줄 아는지 옆에서 낑낑대며 애처로운 눈빛 보내고…. 그 사납던 녀석도 김 원장 손에 안겨 입원했고, 오늘 아침 김 원장 메시지 받았다. 수술 잘 되었다고. 나의 부처님 오신 날은 한 죽어가는 생명 살렸으니 나름대로 뜻깊었다. 내겐 곰곰이가 부처님이다.
 
많은 강아지가 태어났다. 줄잡아도 50마리는 넘을 듯싶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는가. 사랑과 평화 그 자체다. 보는 순간 그냥 미소가 지어지고 사랑으로 충만하니 이 또한 하늘의 섭리 아닌가 싶다. 생각 같아선 다 키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기름 넣으러 온 주유소집 아저씨에게도 주고, 인근 석산에도 주고, 동네 아저씨에게도 주고, 이곳저곳에 분양했다.
 
특히 누리는 매년 8마리씩 3년에 걸쳐 24마리를 낳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는데, 그 모두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SNS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는 일이 있으니 누가 가볍다 하겠는가. 분양 전후의 정겨운 대화들을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대풍이는 안성까지 멀미도 안 하고 잘 왔고요 ^^. 점심도 한 그릇 뚝딱! 하고요. 저희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녀요. 춥다고 집에 두고 아이들이 마당에 나가서 노니까 문에 붙어서 끙끙대고 있네요 ^^. 둘째 아이 배 위에 엎드려서 놀아요. ㅎㅎ”,“어젯밤엔 어머니 이불로 들어가더니 팔 배고 잤대요 ^^. 탁아견 대통이도 먹고 자고 놀고. 무한긍정^^ 대통이 상처받고 화풀이 중입니다”, “대백이는 마당에 내놓으면 밖에서 똥오줌을 본다고 합니다.
 
실내에서는 목욕탕 문을 열어놓으니 목욕탕 바닥에 일을 본 적도 있구요. 방바닥에 큰 걸 놓은 적이 지난 설날 한 번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먹고 자고 잘하고 있습니다”, “대풍이는 온 날부터 밖에서 일을 본답니다 ^^. 잠도 거의 일정한 곳에서 자고요. 말도 무척 잘 알아들어요”.
 
산막을 지키는 진돗개 두 마리
산막을 지키는 나의 맹공. [사진 권대욱]

산막을 지키는 나의 맹공. [사진 권대욱]

 
지금도 가끔 소식을 전해주시는 분 덕분에 입가에 미소가 가실 날이 없다. 지금 산막엔 진돗개 두 마리가 집을 지킨다. 갈 때마다 좋다고 길길이 날뛰는 녀석들 덕분에 그 길이 외롭지 않다. 앞으로도 이곳엔 늘 두세 마리의 견공이 함께 할 것이다. 외롭지 않고 정 주고 붙일 수 있어 좋고, 등산길 동무하며 아끼고 사랑하며 그렇게 지낼 것이다. 아니라면 산막의 적막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 무슨 인연인가 늘 생각한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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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