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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 혐의 양승태, 대법원장 직무 범위가 최대 쟁점

검찰이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을 소환조사하는 데 성공했으나 혐의를 입증해 내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여럿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기소하면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하고 특정 성향의 판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 비밀누설 등)를 공소장에서 밝혔다. 검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양 전 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모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둘 사이에서 직접 관련 내용을 보고받거나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혐의 중 하나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해 놓고서 이듬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이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자 법원행정처가 재판 지연 전략을 담은 문건을 만들어 재판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관계자를 수차례 독대하거나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시한 정황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양 전 원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공작 사건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에서도 임 전 차장 등과 공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직권남용 인정되려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하지만 양 전 원장의 혐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의 법리 적용이 간단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직무권한(직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적용 여부가 갈릴 수 있어서다. 당사자의 직권을 남용해야만 유죄로 인정되는데 이때 해당 지시가 당사자의 직권에 속한 게 아니라면 직권남용이 인정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검사 출신 김광삼 변호사는 “양승태 전 원장을 포함해 당시 사법부 핵심 관계자들이 공모 관계로 재판거래를 한 의혹이 직무에 포함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직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법원장의 직권의 범위 안에 일반 판사의 판결에 대해 지시·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된다면 이는 판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이런 권한을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해당 판사들이 재판 개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이는 직권남용 미수에 해당한다. 다만 직권남용 미수범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날 수도 있다.
 
양 전 원장 측도 이 부분을 짚고 갈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장의 직권 속에는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방식이다. 이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직권남용의 구성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양 전 원장은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시 자택 앞 기자회견에서도, 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도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이나 부당하게 간섭·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휴대전화처럼 강력한 물증이 없는 점도 난관이다. 당시 청와대가 검찰 수사 결과를 ‘사상누각’이라고 깎아내리자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취 파일을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검찰 수사팀은 현재까지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작성한 업무수첩과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검찰 진술, 김앤장·외교부 문건 등을 주요 물증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와 보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금까지 공개된 혐의를 보더라도 재판 거래 입증을 위한 ‘스모킹건’이 없어 보인다”며 “수사 후반부에 공개된 배당 조작 혐의에 대해서라도 검찰이 내부 전산기록 등으로 물증을 잡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가해자 측 대리인인 김앤장 변호사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거래’ 내역이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면 위법한 행위라고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강력한 물증 있나
 
문무일 검찰총장.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 [연합뉴스]

양 전 원장을 향한 다른 혐의인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서도 ‘공모’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열린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1심 재판이 양 전 대법원장 조사에 맞춰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은 최 전 차장은 이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최 전 차장이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혐의에 대해 유죄로 봤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공모는 무죄로 봤다. “다수 통화하기는 했지만 친분이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도 ‘공모’ 관계에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번 검찰 조사에서 “실무진이 하는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일회성 보고나 중요성 없는 보고는 금방 잊는다”는 취지로 답하고 있다.
 
검찰은 이르면 주말에 양 전 대법원장을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다. 격렬한 시위로 발생하는 안전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비공개로 이뤄진다. 앞으로의 조사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사건 형사 재판에 개입한 사건 등이 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민상·이후연·박태인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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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