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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꼭짓점’ 임금 왕, 무시무시한 도끼를 형상화한 글자

[한자 진면목] 王·皇·玉
한자는 본래 출발점이 생각보다 고즈넉하지 않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대로 드러나고, 사람사회의 권력을 비롯한 힘의 관계가 솔직하게 드러난다. 전쟁이 등장하고, 포로가 나온다. 주술(呪術)과 제례(祭禮)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신령의 힘을 빌려 삶의 윤택함을 높이려는 사람의 노력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논어』와 『노자』 등 동양의 경전과 성현의 좋은 말씀만으로 한자를 대할 일이 더 이상 아니다. 그런 한자의 본래 꼴과 뜻을 되새겨 우리 말 쓰임새의 한자 맥락을 새로 짚어 보고자 부산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소장 하영삼)와 중국인문경영연구소(소장 유광종)가 공동으로 ‘한자 진면목’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예전 동양사회 세속 권력의 꼭지는 아무래도 제왕(帝王)이고 임금이었다. 그 존재를 지칭하는 우선의 글자는 王(왕)이다. 이 글자를 오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선 거룩한 뜻풀이 때문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세 가로획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존재”라는 설명이 그렇다.
 
과거 제왕, 그리고 땅 위의 권력자 힘은 대단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생명, 즉 억조창생(億兆蒼生)의 살고 죽는 일을 줬다 뺏었다 할 수 있는 생살여탈(生殺與奪)의 힘을 지녔으니 말이다. 정말 그랬을까.
 
한자가 처음 만들어지는 시기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의 본래 생김새를 간과하거나 적어도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풀이라서 그렇다. 본래 한자 王(왕)의 글자꼴은 위에 보이는 그대로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거기에 갖다 붙여 보려고 해 봐야 그럴 틈이 전혀 없다. 이 글자는 명확하게 사물의 형태를 가리킨다. 그 가리키는 대상에 약간 이견이 있다. 혹자는 권력자가 머리에 쓴 모자라고 하지만, 큰 흐름에서의 풀이는 ‘도끼’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皇(황·임금·왼쪽)의 금문과 玉(옥·구슬)의 갑골문.

皇(황·임금·왼쪽)의 금문과 玉(옥·구슬)의 갑골문.

도끼는 왜 등장했을까. 권력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태곳적 임금은 제 권력의 무시무시함을 과시하기 위해 자리 옆에 항상 도끼를 두게 마련이었다고 한다. 그 도끼는 임금의 실제적인 권력, 나아가 무력(武力)을 과시하는 장치에 가까웠다.
 
그런 도끼는 斧(부) 또는 鉞(월) 등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병풍 등에 자주 등장했다. 그 원시의 모습이 바로 王(왕)이다. 이 글자의 초기 몇 꼴을 보면 도끼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왕에 비해 권력을 더 쥔 존재는 보통 황제(皇帝)라고 적는다. 앞의 皇(황)도 도끼에 해당하는 王(왕)의 요소를 지녔다. 단지 그 도끼 윗부분이 문제다. 빛으로 보이는 선 몇 가닥이 위를 향해 뻗치고 있다.
 
도끼에 더해 휘황찬란한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무시무시한 권력을 상징하는 도끼를 지녔고, 머리에는 금속으로 치장했을 번쩍거리는 모자를 얹은 꼴이다. 유일무이한 세상의 권력자를 상징하는 모습으로는 그럴듯하다.
 
王(왕)이라는 글자와 모습이 비슷해 많은 오해를 부르는 한자는 玉(옥)이다. 동양 최고의 돌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많은 함의를 붙이는 작업은 본격적인 중국 왕조시대에 들어온 뒤의 일이다. 본래의 모습은 왕이 지녔던 권력의 무게 또는 위엄과 관련이 없다.
 
본래 글자꼴은 여러 개의 옥돌을 실로 꿴 모습이다. 단지 나중에 글자가 간략한 형태로 자리를 잡으면서 王(왕)이라는 글자와 모습이 비슷해졌다. 두 글자 사이의 구분이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른쪽에 점을 남긴 玉(옥)이라는 글자 형태로 발전했다고 본다. 이 옥이라는 돌에 최고의 미덕을 부여했던 저작은 『설문해자(說文解字)』다. 저자 허신(許愼)은 옥을 최고의 덕목을 갖춘 물체로 추켜세웠다.
 
그는 옥을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덕을 지닌 완성체에 비유했다. 이를 통해 유가사상에서 지향하는 도덕과 행동 규범이 옥돌에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제대로 수양을 한 사람이라면 옥을 항상 곁에 두고 아끼고 숭상하면서 옥이 지닌 인(仁)·의(義)·지(智)·용(勇)·결(潔)의 오덕(五德)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돌을 상징하는 부수가 들어가는 한자는 그래서 대개 고결하다. 珍(진)처럼 단순한 보석을 넘어선다. 더없이 보배로운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드러나다’ ‘나타나다’의 새김을 나중에 얻은 現(현)이라는 글자는 본래 옥이 드러내는 맑은소리와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가리켰다.
 
이 때문에 옥은 몸에 걸치는 장신구는 물론 신분의 상징이자 권위를 대신하는 나라의 도장이라는 ‘옥새’의 璽(새)라는 글자에도 등장한다. 때로는 노리개, 심지어 시신의 구멍을 막는 마개로도 쓰였다.
 
이 글의 본래 주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지상의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王(왕)이라는 존재는 예전 동양세계에서는 거대한 담론의 중심이었다. 왕이 지닌 권력은 왕권(王權), 그가 행하는 철학은 왕도(王道), 거처하는 공간은 왕궁(王宮), 내리는 명령은 왕명(王命)이다. 주변의 다른 세력을 압도하면 패왕(霸王), 현명함을 갖췄으면 철왕(哲王)이다. 왕궁으로부터 바깥으로 1000리의 지역은 왕기(王畿)라고 해서 경기(京畿)라는 명칭의 유래가 됐다.
 
이제 그 도끼와 휘황찬란했던 모자로서의 권력은 사라졌다. 왕이 존재한 뒤부터 동양사회는 그 권력을 또한 어떻게 견제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은 한 군데에 몰리게 마련이고, 그를 제어할 ‘견제와 균형’의 맥락은 인류사회의 커다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던 까닭이다. 민주와 공화의 정치가 펼쳐지는 요즘에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하영삼·유광종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장·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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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