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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모호한 말은 권력자의 무기, 논술선 안 통해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신부가 도망가지 않아요.” 거리에 붙은 광고는 그 사회를 보여준다.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이 광고는 도망 여부가 누군가에게는 신부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 여성들이 종종 도망간다는 사실 역시 알려준다. 그리고 도망 이외에 다른 통로가 막혀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도망쳐야만 하는 그곳은 좋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못 받은 돈 받아 줍니다”는 어떤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채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들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아낼 수 있냐고? 그 방법이 궁금한 사람은 ‘사채꾼 우시지마’라는 만화를 참고하면 된다.
 
후한 사례를 약속하는 광고는 어떤가. “지갑을 주워서 돌려준 사람에게 후사하겠습니다.” “이 사람에 관한 소식이나 거처를 아시는 분은 다음 주소로 연락 바람. 후사하겠음.” 이런 표현을 볼 때마다, 나는 후사(厚謝)의 내용이 궁금하다.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감사 표시를 한다는 것일까? 지갑을 주워서 돌려주면, 지갑 안의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후하다”라는 기분이 들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겠다는 말일까? 혹시 후사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서, 기분 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지갑을 되찾은 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영어로 “땡큐”라고 한마디 하고 사라진다면, 찾아준 이는 좀 허탈하지 않을까.
 
사례야 안 받으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호한 표현 한마디에 인생의 한 시기가 좌우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 걸려 있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지난 시절 청혼 과정이 그렇다. 요즘이야 청혼 과정에서 동등하게 각자의 경제 사정과 건강상태에 대하여 구체적인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지만, 예전에는 청혼의 언어가 훨씬 단순하고도 일방적인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오빠가(우웩) 호강시켜줄게. 오빠랑 살자.” 호강이라니. 어느 정도가 호강인 것일까. 매끼 소고기 반찬을 먹을 수 있으면 호강인 것일까, 아니면 대관령과 텍사스에 소 떼를 키우고 있어야 호강인 것일까. 호강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가지고는 도대체 상대가 어떤 수준의 윤택한 생활을 약속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예술의 모호함, 향수자 적극적 참여 불러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좀 더 구체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오빠가 돈방석에 앉혀줄게.” 옛 연속극에서 나왔을 법한 이 대사는 구체적으로 돈을 거론하기에 “호강시켜줄게”에 비해 훨씬 구체적인 말 같다. 돈방석이라니, 뭔가 집안에 처치 곤란한 지폐가 썩어 굴러다닐 것 같지 않은가. 이 사람하고 결혼한다면 평생 고생할 일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막상 결혼해보니, 지폐가 아니라 동전을 넣어 방석을 만들어주면 어떡하란 말인가. 동전 방석이 한여름에 시원하다면서.
 
모호함이 꼭 필요한 영역도 있다. 시인은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단순히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대신, 아침에 거실에 들어왔던 당신 허리를 닮은 잠자리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할 것이다. “보고 싶다”라는 말을 시적으로 하기 위해 당신 눈 흰자위를 닮은 구름에 대해서 오랫동안 묘사할 것이다. 시인은 독자가 모호한 뜻을 스스로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지, 나서서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이처럼 예술에서 모호함은 중요하다. 모호함이야말로 다양한 해석을 증폭시키며, 그 예술을 둘러싼 논의를 풍부하게 만든다. 예술의 모호성은 예술 향수자의 적극적 참여를 부추긴다. 관건은 그 모호함이 심미적인 차원을 가진 풍요로운 모호함이냐의 여부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과 군대의 명령은 정반대 관계에 있다. 시 구절과는 달리 군대의 어휘는 명료해야 한다. 전투에 임할 때 상관의 명령은 분명할수록 좋다. “발포하라!”라고 말해야 한다. “발포할까!”라고 명령해서는 안 된다.
 
시적인 모호함을 적극적으로 전유한 영역이 화두의 세계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던 선승이 남긴 이 한 문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아마도 그 문장은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겠지만, 그리하여 많은 승려가 그 뜻을 소중히 간직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도대체 이 간명한 말이 무슨 취지를 가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견 자명해 보이는 사실의 재서술이 저 문장의 특징이다. 그런데 왜 그 자명한 사실을 새삼 재서술할 필요가 있었을까? 자명한 사실을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태가 있기에, 그것에 경종을 울리려고 일부러 저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저 문장은 산이나 물에 대한 서술이라기보다는 사태를 그대로 직면하지 못하는 못난 인간들을 질타하는 말일까. 사람들이 A가 A라는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던지신 말일까. 질문은 끝이 없다. 그러나 수행 중인 선승들에게는 그 가늠하기 어려움이야말로 이 문장의 매력이자 가치일 것이다. 가늠하기 어려워야, 그 깊은 뜻을 곰곰이 음미해보고자 할 테니까.
 
반면, “피자 한 판 사와라” 같은 문장은 간명하며, 그 취지도 분명하다. 산 아래로 내려가 피자를 한판 사 오면 될 일이지, 그 문장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피자를 들고 산을 오르는 동자승은 귀여울 것이다.
 
예술가나 선승 못지않게 모호한 표현을 선호하는 이들이 정치인이다. “새 정치를 실현하겠습니다!” “새 정치란 뭐죠?” “제가 실현할 정치가 새 정치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새로워야, 새로운 정치란 말인가. 정치인들은 일단 선거에서 당선되고 봐야 하겠기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가질 만한 말을 던질 필요가 있다. 말이 구체적일수록 그 말의 청자(audience)는 제한되고, 말이 모호할수록 청자는 포괄적이 되는 법. 그래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말은 모호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야만 할 때가 왔을 경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무마해야 할 필요가 정치인에게는 종종 있다. 그러한 필요에 둔감했다가는 자칫 나중에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은 한층 더 막연하고 모호해진다.
 
이처럼 모호한 표현으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고자 할 때,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발화자가 아니라 청자이다. 표현이 모호하면, 발화자는 그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나중에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누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호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보아야 하는 책임은 청자에게로 넘어가기 일쑤다. 모호했던 말이 나중에 멋대로 바뀌었을 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청자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모호한 말들을 남발하면,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그 말뜻을 구체화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새 정치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선거가 끝난 다음에 하면 너무 늦을 수 있다. 결혼하고 나서, 동전 방석을 건네는 남편에게 “오빠가(우웩) 말한 돈방석은 지폐 방석이 아니었어?”라고 따지면 너무 늦은 것이다. “동전은 돈 아니야?”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동전 방석이라니, 세상에. 약속대로 빨리 지폐로 방석 만들어줘.”라고 거듭 요구하면, 베네수엘라 지폐로 방석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베네수엘라는 근년에 자국 통화를 95% 이상 평가절하했고, 베네수엘라의 최저임금 노동자는 월급의 3분의 1을 줘야 기껏 콘돔 한 상자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어느 나라 지폐로 방석 만든다고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있었나.”
 
 
연인 관계에선 덜 사랑하는 쪽이 권력자
 
사정이 이러하다면, 모호한 말은 종종 권력자의 무기이다. 얼버무린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청자의 몫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연인 관계에서는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자라고 했던가. 사랑의 권력을 가진 이가 “내일쯤 전화할게”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 말을 들은 상대는 하루종일 전화를 기다리게 된다. 전화할 시간을 특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성적을 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성적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을 명시해 놓지 않으면, 성적은 나중에 가서 자의적인 결정에 휘둘리기 쉽다.
 
가끔 학생들이 논술문을 쓰면서 그러한 모호함의 권력을 사용하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아마도 악마가”와 같은 모호한 문장으로 가득한 논술문을 제출했다고 치자. 선생은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낮은 성적을 줄 것이다. 그제서야 이 문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였어요, 라고 항변해봤자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순간 권력은 평가자에게 있지 피평가자에게 있지 않다. 권력을 쥔 정치인이나 예술가와는 달리, 논술문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명료한 표현을 통해 공적으로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논술문에서 모호한 표현을 자제하는 훈련은 민주주의의 덕목 함양과 무관하지 않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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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