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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달라진 누나…이 야릇한 불안감은 뭘까

기자
심상복 사진 심상복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16화

 
"이제 며칠 뒤면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거네. 자유인에서"
"자유인요? 글쎄요……. 출근 안 하는 자유는 좀 누렸지만 사실 마음은 편치 못했죠. 무엇보다 누나를 만나면서요."
"내가 왜?"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에겐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난 직장도 없었으니까."
"나도 무직자인데 뭘…. 그리고 내가 한 번도 물어보거나 뭐라 한 적도 없는데…."
"진짜…. 근데 그거 무관심이에요, 배려에요?"
"글쎄 별로 생각 안 해 봤는데……. 굳이 말한다면 그 중간쯤 어디가 아닐까."
 
방안에는 아직 짙은 호흡 몇 조각이 낙엽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새해부터 출근하면 한동안 정신없겠네."
"대한민국 직장이라는 게 다 비슷하겠죠, 뭐. 사회초년병도 아니고……."
"전에 회사는 몇 년 다녔다 했지?"
"12년요."
 
누나는 새 직장이 전 회사와 업무 연관성은 얼마나 있느냐고도 물었다.
"별로 없어요. 전 회사는 핸드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초소형 렌즈를 만드는 제조업체였고, 이번은 무역회사니까요. 신진 디자이너 옷을 동남아나 중동 등으로 수출하는 게 주 업무래요. K팝과 한류 바람을 타고 매출은 꽤 좋다고 하더라고요."
 
질문이라곤 없던 누나인데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새 직장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하고 걱정해 주기도 했다.
"근데, 누나. 메일 마지막 대목이 무슨 말이에요? 지난 넉 달간 작문공부 빡세게 한 것 같은데, 본격적인 글쓰기는 이제부터라고 한 거요."
"아, 그냥 해본 소리야. 신경 쓰지 마, 이젠 그럴 시간도 없을 텐데, 뭐"
"내가 이미 말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은 그대로 할 거예요."
"글쎄, 근데 그게 어디 쉽겠어? 전혀 다른 회사에 들어갔는데 적어도 몇 달은 적응해야 하고 또 인정도 받아야 하잖아."
"아니에요, 누나. 새 직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나에겐 언제나 누나가 먼저예요. 어떤 상황에서든 영순위인 거 잘 알잖아요?"
 
새해부턴 새 직장에 전념해야지
누나는 내 말에 대꾸 없이 천천히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시계는 자정 직전이었다.
"나가시게요? 근데 지금 나가면 택시 잡기 힘들어요. 좀 더 얘기하다 나가요."
누나는 내 말에 개의치 않고 입던 옷을 마저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앉았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인데 잘해야지. 어머니도 그동안 걱정 많이 했을 텐데. 참, 어머니도 나처럼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시지 않을 분 같은데, 어떠셔?"
 
오늘은 참 다른 누나였다, 엄마와 비교까지 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누나도 내 걱정을 하긴 했어요?"
 
누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엄마는 무조건 절 믿어요. 지금 당장 누나를 데리고 가서 인사시켜도 좋아하실 거예요. 엄마는 지금까지 제게 뭐라 잔소리한 적도 거의 없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가 좀 일찍 철들었거든요."
 
누나의 재촉에 밖으로 나오니 예상대로 빈 택시를 찾기 어려웠다. 우리는 근처 카페로 들어가 라테 한 잔을 시켜 놓고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다. 역시 응답이 없었다.
"누나, 우리 다음 수업날짜 잡아야죠."
"지금 천이에게 중요한 건 새 직장이야. 출근해서 상황 파악한 뒤 해도 늦지 않아."
 
그날 누나는 진짜 누나가 어린 동생 챙기듯 했다. 이즈음에서 우리 관계에 쉼표가 필요할 것 같다는 뉘앙스도 몇 번 풍겼다.
카페에 들어온 지 30분쯤 되자 카카오택시가 왔다. 나는 누나를 먼저 집에 내려주고 귀가했다.
새벽 1시가 넘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이제 너무나 특별했던 2018년이 가고, 새해부터는 새 직장을 나가야 한다. 누나에게도 특별한 시간이었을까. 누나는 여전히 나를 작문수업 학생으로만 여기는 게 아닐까. 오늘 보니 그건 아닌 건 같았다.
 
"어머니도 나처럼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시지 않을 분 같은데…."
그중에서도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엄마를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엄마 마음도 자신과 같을 거라는 말이었다.
귓전을 맴도는 그 말은 내 입가에 절로 미소를 걸었다. 저녁 무렵 일었던 야릇한 불안감도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그동안 내 외로움은 날로 자라났다
사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누나였기에 만나면서도 난 얼마나 외로워했던가. 그 외로움의 두께는 족히 내 키를 훌쩍 넘었으리라. 메마르다 못해 뒤틀린 누나의 감정과 여러 번 대면하면서 상처도 적잖이 받았다. 수업 시간은 특히 심했다.
"야, 이것도 글이냐? 주어와 술어가 마구 엉킨 이게 글이냐고? 문제는 문장이 너무 길다는 거야. 그러니 이런 잘못이 생기는 거라고 몇 번 말했어?"
 
마흔이 내일모레인데 초등학교 학생도 안 받을 구박을 수태 받았다. 지적을 넘는 수모도 많았다. 창피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여기 봐. 이 문장은 앞에 있는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내용이잖아. 그리고 이 문구도 봐. 아름다운 미모가 뭐야? 아름답지 않은 미모도 있다는 거야? 이런 실수는 이제 용납할 수 없어."
 
중언부언이 많다는 이유로 그녀는 그날 내가 써온 글을 박박 찢어버렸다. 그럴 때는 그녀가 교사 시절 학생들을 거칠게 다뤄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한 것이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혼자 견디기 힘들어 '김동수 마음치유센터'를 여러 번 찾아가기도 했다. 심리상담을 업으로 하는 친한 대학 선배였다. 선배는 그녀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남에게 전했다고 하면 노발대발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을 그 선배에게 전했다. 긴 얘기를 축약하면 이렇다. 10대 시절 딸은 국어교사인 아버지에게 거의 강제로 작문수업을 받으면서 아픔이 많았다. 혼나거나 벌서는 건 예사이고 체벌도 잦았다고 한다. 자신도 나중에 국어 선생님이 됐지만 학생들을 거칠게 다루다 결국 교단을 떠나게 났다. 지금도 아버지가 제일 싫다는 말을 한다.
 
선배의 결론은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네가 진짜 그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녀의 거친 행동과 가시 돋친 말을 다 받아주는 게 좋겠어. 그게 그녀를 치유하는 약이 될 거 같으니까."
 
전문가의 처방도 그러했기에 나는 마음 굳게 먹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온전히 그 수모를 다 받아들였다. 처음엔 피할 생각을 전혀 못 했다. 그땐 보이지 않는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시종이라는 심리적 틀에 스스로 갇힘으로써 그녀의 공격으로부터 도망갈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러다 치유센터를 드나들면서 적극적인 자세, 다시 말해 내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그녀의 화살과 창을 다 나의 맨가슴으로 받아주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효험이 있었을까.
 
"어머니도 나처럼 걱정을……."
그동안의 모든 걸 응축한 이 한마디를 되뇌며 나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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