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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의 한반도평화워치] 검증 없는 북한 비핵화 협상,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한반도 냉전 종식
새해 벽두부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2차 회담을 얘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이런 대형 이벤트의 시동을 건 셈이다. 우리가 이러한 과정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를 통해 한반도 냉전 종식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해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숙제가 있다. 이 숙제는 지난 30년 동안 풀지 못한 난제이다.
 
실상을 보면 북한은 악착스럽게 핵 개발에 매달렸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별로 존중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유화정책 또는 강경정책이 북한 핵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틀린 답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포기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해도 개의치 않았다. 핵 개발로 인해 주민들이 굶주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북한의 핵 개발 의지는 강렬했다. 반면, 북한 핵을 저지해야 할 나라들은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고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만큼의 큰 힘을 쏟지 않았다. 결과는 북한의 핵무장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은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2018년 4월 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 군축, 핵 선제 불사용, 비확산 등 핵 정책을 발표했다. 그것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신년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핵보유국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대화할 준비가 됐다며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 남북한은 지난해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과 북한도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정상회담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당연히 우리는 한반도 냉전 해체를 기대한다. 지난 역사의 경험을 볼 때 한반도 냉전 해체는 북한 핵 문제가 해결돼야 가능하다. 지금 북한이 대화에 나온 것이 냉전 종식을 위한 전략적 결단인지,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하기 위한 ‘미소(微笑) 외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관련국 정상들이 모두 나선 이상 이 기회에 북핵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더 위험한 상황이 기다릴 것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그런 입장을 밝혔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비핵화 약속이 진정성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말이 아닌 행동과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만의 비핵화를 의미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 개념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이미 명확히 합의한 바 있다. 남북한이 핵무기를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하지 않고,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사찰을 통해 검증한다는 것까지 포함한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이를 비준하고 이행을 약속했다. 우리는 이 약속을 지켰다. 이를 지키지 않은 북한이 이를 이행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완성된다. 이를 9·19공동성명에서도 확인했다. 지난해 미국의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여러 차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했다.
 
북한이 핵을 실제로 포기하기로 결단했다면 해법은 분명하다. 북한과 관련국들이 북한의 핵무기·핵물질·핵시설·핵연구 현황을 밝히고, 이를 중단·폐기하는 계획을 내놓으며, 관계 정상화와 안전 보장, 경제 협력 등 상응 조치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의하는 것이다. 일부의 우려대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한미동맹 해체나 핵 군축을 시도한다면 그러한 협상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비핵화가 먼저냐, 신뢰 구축이 먼저냐의 논쟁도 공허하다. 지금은 서로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선후를 따질 수 없다. ‘일괄 타결, 일거 해결’의 대담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과거처럼 핵심 문제는 뒤로 미루고 찔끔찔끔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면 또다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불신의 안경을 낀 채 상대의 행동을 평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도 일종의 신화이다. 진정 비핵화를 결정했다면 핵무기를 해체하고 핵물질을 해외로 반출하며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일은 시간을 길게 끌 이유가 없다. 김 위원장도 1년 이내에 비핵화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는 해법이다. 핵시설을 해체하고 오염을 처리하는 것이나, 연구 인력의 평화적 활동 전환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핵심 사항은 조기에 끝낼 수 있다.
 
비핵화의 가장 중요한 국면은 신뢰성 있는 사찰·검증이다. 과거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제네바합의, 9·19공동성명이 파기된 원인은 모두 사찰·검증 방법의 이견 때문이었다. 북한이 허용하는 시설을 참관하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는 사찰이라고 할 수 없다. 국제사회가 정하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의 첫 조치는 핵 리스트 제출이다. 북한이 이를 군사 공격 표적을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한다면 1단계로 핵무기·핵물질의 총량과 우라늄농축시설의 수량과 규모를 신고하고, 그 소재지는 검증을 시작할 때 2단계로 신고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이미 약속한 대로 조속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완료하고 핵확산금지협정(NPT)에 복귀하면, 북한은 국제 협력을 통해 비약적 경제 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외면한 해법은 뒷날 반드시 탈이 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북한의 비핵화가 안 됐는데도 정치적 이유로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것이다. 지금 그럴 위험성도 있다. 그런 협상이라면 어떤 것도 무의미하고 우리에게 해롭다. 2019년에 그것이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벤트나 말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날카롭게 봐야 한다.
 
초장에 놓친 냉전 종식의 기회, 꼬여버린 북한 비핵화
1980년대 말 세계 냉전 질서가 흔들리면서 한반도 냉전 종식의 기회가 열렸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소련·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목표로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북한도 그해 12월 북경에서 미국과 참사관급 외교관 접촉을 시작했다.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을 요구했고,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과 ‘핵 개발 의혹 해소’가 먼저라는 입장이었다.
 
북·미 간 외교 접촉이 시작된 이후 남북관계도 활발해졌다. 남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했다. 91년 8월 소련에서 보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북한이 회담을 거부하기도 했으나 쿠데타가 실패하고 소련 공산당까지 해체되자 태도가 돌변해 남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91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5차 고위급회담은 예상을 뛰어넘는 급진전이었다. 협상 현장은 실무자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갔고 12월 13일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다.
 
그때 북한의 핵 의혹 해소와 남북관계 발전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 5차 고위급회담에서 당시 정원식 총리는 북한이 핵기지라고 비난했던 군산기지 사찰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사찰을 압박했다. 예상치 못한 제의에 북한 대표단은 워커힐 회담장의 침묵이 깨질 정도로 화들짝 놀라 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해 12월 31일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도 합의됐다. 냉전이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서둘러 정리하고 곧바로 92년 1월 김용순 당 국제부장을 뉴욕에 보내 미 국무부 캔터 차관과 관계 개선을 협의했다. 회담 후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92년 5월 임시 사찰을 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 남북한도 상호 핵 사찰을 협의했다. 정부는 불시 특별 사찰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IAEA의 사찰 결과 중대한 불일치가 발견되자 IAEA도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 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면서 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른바 1차 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미국의 군사 조치 동향에 위기를 느낀 김일성 주석이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섰다. 그는 핵 문제를 해결하고 대미 관계 정상화를 실현하며,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해 경제 문제까지도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구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사를 전달받은 김영삼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했으나 김 주석이 회담을 17일 앞두고 갑자기 사망하면서 무산됐다. 김 주석 사후인 94년 북·미 간 제네바기본합의가 타결됐다. 그러나 당초 문제가 됐던 미신고시설은 건드리지도 못한 불완전한 타협이었다. 그것이 파기됐고, 이후 핵 합의들도 연속 파기됐다. 북한은 국제체제에서 이탈했고,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새로운 협상을 하고 있다.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진 2019년이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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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