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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직격 인터뷰] 이대로 방치하면 충돌 코스로 간다…공공외교로 풀어야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가 보는 한·일 갈등 해법
‘관계가 악화돼도 우리는 답답할 게 없다.’ ‘관광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잘되고 있지, 경제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일본의 분위기다. 최근 한·일 간에는 종군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한국 내 일본기업 자산 압류 공방, 레이더 조준 공방 등 대립이 꼬리를 물고 있다. 갈등 속에도 이런 기류가 감지된다는 것이 이종원(65) 일본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의 직관적 시각이다. 1982년 일본에 건너가 36년간 한·일 관계를 연구한 이 교수는 “일본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는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북핵 문제를 비롯해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조 관계가 절실한 시점에서 두 나라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극단적 갈등을 벌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학술연구차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머무르고 있는 이 교수를 10일 찾아가 타결책을 들어봤다.

 
이종원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은 ’갈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정부 간 처리가 안 되는 게 문제“라며 ’한·일 간 채널과 신뢰 기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김동호 기자]

이종원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은 ’갈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정부 간 처리가 안 되는 게 문제“라며 ’한·일 간 채널과 신뢰 기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김동호 기자]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나.
“1965년 한·일협정이 불완전한 데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일본은 그 협정으로 빚 청산이 전부 끝났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건 난폭한 결정이다. 일본은 식민지는 합법이라고 보고, 한국은 불법이라고 본다. 그래서 애매한 해석을 가져 왔고 한·일협정이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서로 노력하는 시도는 있었다. 그런데 협조적으로 컨센서스를 만들어 왔어야 했는데 서로 책임회피적으로 문제를 더 크게 만들어왔다.”
 
위안부 문제가 그런 경우 아닌가.
“2015년 12월 타결된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보면 밀실합의처럼 강행됐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시민단체와 상의하면서 추진해 왔는데 마지막 단계에 청와대 주도로 너무 서둘렀다. 피해자가 생존하기 때문에 동의와 설득을 거쳐 협력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막판에 서둘러서 반발을 산 부분이 있다.”
 
그 앞 정부에서도 애를 쓰긴 썼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종군위안부, 사할린 동포, 한국 거주 피폭자 세 가지는 한·일협정 때 논의도 안 됐다고 새롭게 정리했다. 위안부는 일본의 불법행위에 따른 구제 필요가 있다고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유효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니까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2011년 헌재에서 판결이 나왔다. 이때 정부가 일본에 문제를 제기해야 했는데 표면화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였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에서 서둘다가 문제가 커졌다.”
 
징용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징용 문제도 2005년 논의가 됐다. 한·일협정 때 청구권 자금을 받았으니 청구권에 포함됐다고 정리를 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별도 입법을 통해 태양양전쟁 피해자에 대해 구제를 했다. 그런데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국가로선 그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개인 청구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던 논란이지 않나.
“한·일협정 때는 없었던 민주화 여파다. 한국이 민주화가 되면서 개인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피해자들이 권리 찾기에 나섰다. 한·일 정부는 공동으로 실질적인 구제 조처를 해줘야 한다. 독일에서도 2003년부터 기금을 염출하고 재단을 만들어서 2차 세계 대전 때 강제 징용됐던 주변국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고 피해를 배상했다. 우리도 그런 방식을 써야 한다. 양국 정부가 협력하고 관련 기업이 재단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되겠지만 지금 가능하겠나.
“한·일 정부 간 신뢰관계가 없고 민간 차원의 양국 사회 여론마저 괴리돼 있다. 일본 정부가 조금 성의를 가지면 한·일협정은 그대로 둔 채 보완하면 되는데, 아베 신조 총리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 일본 여론도 비판적이라 어렵다는 얘기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9일 일본 정부가 ‘외교적 협의’를 요청해 왔다. 한국은 “면밀히 검토한다”고 했다.
“대화 이외에는 탈출구가 없다. 앞서 말한 대로 한·일협정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부족하면 보충하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 대화를 통해 풀지 않고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거쳐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는 것은 정면충돌 코스다. 사법적 해결은 이기고 지는 것밖에 없다.”
 
사사건건 이렇게 갈등을 벌여야 하나.
“결국 화해를 통해 절충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다. 예컨대 위안부 합의문을 보자. 그 안에 기본 취지는 지금도 살릴 수 있다. 2015년 당시 아베 총리의 이름으로 ‘고노담화’의 키워드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일본은 10억 엔을 화해치유재단에 냈다고 반대급부로 더 이상 과거를 언급하지 않고 소녀상 철거만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명예와 존엄을 짓밟는 것이다. 합의문 취지대로 인내심을 갖고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추가 조치를 한·일 양국 정부가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양국 지도자들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먼저 일본을 보자. 아베가 2012년 12월 집권한 배경과 그 이후 우경화 과정을 봐야 한다. 자민당이 2009년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주면서 일본은 한국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추구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이 3년 만에 실패로 끝나면서 한·일관계도 더 타격을 받았다. 일본 민주당은 궁내청에 있던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는 등 역사 문제를 전향적으로 처리하면서 한·일 관계를 한 단계 높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뒤뚱거리면서 정권이 다시 자민당으로 돌아갔다.”
 
그때 아베가 다시 집권한 것 아닌가.
“제2기 아베 정부는 민주당 실패에 대한 반동도 있어서 역사 인식이 역사수정주의로 되돌아왔다. 일본의 과거 책임을 덮거나 미화하고 보수우경화 경향으로 갔다는 얘기다. 이 무렵은 2010년 일본 경제가 중국에 추월당하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데다 민주당 정권이 우왕좌왕하고 일본의 기류가 일거에 보수 역사수정주의로 가면서 아베가 단숨에 컴백할 수 있던 시기였다. 민주당의 변주곡이 끝나자마자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됐다.”
 
한국에서도 빌미를 줬다고 본다.
“2010년 중·일 경제가 역전되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에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던 터에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부터 한·일 관계가 급격히 손상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냉랭한 관계가 유지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 냉각되고 있다. 레이더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갈등을 벌일 사안도 아닌데 불거진 지 열흘이 넘었는데도 해결을 지향하기보다는 사태가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양국 정부가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안 보인다.” 
 
양국이 국내 정치적으로도 이용하나.
“그런 측면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도 어떻게 보면 정치 전체가 민주화돼 있어서 여론의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마침 일본은 올해가 선거의 해다. 4월 지방선거에 이어 7월 참의원 선거가 있다. 선거의 계절이 되면 대립적인 언사를 쏟아내기 쉬워진다. 한국은 내년 4월이 총선이다. IT 발달에 따라 네트워크상에서 일반 시민이 논의하기 때문에 여론이 바람을 타기 쉽다. 일본 방송에는 연일 레이더 문제를 돌리면서 한국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있다.”
 
혐한(嫌韓)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일본이 2010년 이후 상대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힘의 약화를 느끼면서 내향적으로 되고 반발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러시아·중국에 대해서도 영토·역사문제를 안고 있고 마찰과 위협도 훨씬 더 크지만 중·러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중·러는 어쩌지 못하는) 힘의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로 인해 쌓인 불만을 한국을 향해 발산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혐한이란 말은 한국에만 쓴다. 반중 감정도 크지만 절제돼 있다. 싫다는 뜻의 ‘혐’은 쓰지 않는다.”
 
욘사마붐까지 불었던 일본 아닌가.
“1990년대 이후 한국과는 사회문화적으로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 불만은 커지고 있다. 급격한 한류 흐름에 대한 ‘백래쉬’(반발)도 있는 것 같고, 한국에 대한 복합적 감정이 있다. 더구나 지금 젊은 일본인은 과거 빈곤하고 못 살던 한국을 알지 못한다.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정학적 전략 마찰도 있지 않나.
“한·일간 불신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 신북방정책에 따라 한반도의 탈냉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에 일본은 신냉전에 무게가 실려 있다. 중국에 대한 경계감 때문이다. 중국의 확장 대국주의 대응 체제가 전략의 중점이라서 일본의 눈은 남방에 가 있고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남북한이 가까워질수록 한반도 상황을 견제의 눈길로 보게 되면서 알력의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소외감을 없애려면 일본도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대일 정책의 큰 그림이 필요하겠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서라도 주변국과 친화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 통일의 사례가 보여주듯 주변국의 도움과 협조가 없으면 평화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일본을 창조적으로 관여시키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긴 어렵다. 정부는 상대방에게 입장을 설명하는 ‘퍼블릭 디플로머시’(공공외교)를 강화하고 언론·시민사회 역시 함께 진지하게 관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 이대로는 충돌 코스로 갈 수밖에 없다.” 
 
이종원은 …
1982년 일본으로 건너가 36년째 한·일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일본 국제기독교대(ICU)를 졸업한 뒤 도쿄대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도호쿠대 법학부 조교수와 릿쿄대 교수를 거쳐 2012년부터 와세다(早稲田)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2년부터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을 함께 맡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현재도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의 관계를 읽어내는 것이 연구의 초점이다. 저서로는 『역사로서의 일한국교정상화』 등이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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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