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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뭘 했습니까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아래에 발언록 세 개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입니다. 모두 ‘혁신적 창업’에 대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 누구의 말인지 맞춰 보십시오. 그리고 내용의 차이를 생각해 주십시오.
 

오바마 연설과 비교되는 문 대통령 혁신·창업 스피치
1970년대 식의 ‘산업 역군론’에 젊은이들 공감할까

① “창업은 여러분에게 잠재력을 발휘할 길을 열어줍니다. 기존 질서의 틀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는 힘을 줍니다. 공동체에 공헌할, 사회를 이끌어 갈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혁신과 창조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듭니다. 그 문화는 당연히 그렇다고 여겨져 온 많은 일에 ‘꼭 그렇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런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함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봅시다.”
 
② “혁신 창업은 국가 경제를 도약시키는 길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많이 말하는데 지금도 어려움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큽니다. 우리 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활발한 혁신 창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혁신을 통해서 신기술과 신산업을 창출해야만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 정부는 혁신 창업을 통해 새로운 미래 동력을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혁신 창업의 길을 앞서서 걷는 여러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③ “조금 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즉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하고 혁신하고 그래서 창의적 기술로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하고 성공하는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사회만이 아니라 내일의 사회에서도 계속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장을 주도하면 그 사회는 또 달라질 것입니다.”
 
①은 2016년 6월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스탠퍼드대에서 ‘글로벌 창업가 정신(entrepreneur ship) 정상회의’ 개막 축사로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②는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라는 곳에서 청년 창업가와 스타트업 종사자들을 앞에 두고 한 말입니다. ③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에 벤처 기업인들 앞에서 한 강연의 한 대목입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오바마 전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도전과 창조를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공헌, 변화를 이끄는 리더십을 강조했습니다. 창업가 정신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빈곤·기후변화 등의 지구촌 난제에 대한 도전을 주문하며 ‘담대한 미래’를 그렸습니다.
 
문 대통령은 어려움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혁신 창업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신기술과 신산업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키운다고 했습니다. 혁신적 창업의 가치가 ‘국가 경제 활성화’로 치환됐습니다. 혁신 창업이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제 활성화에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이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했을지 의문입니다.
 
문 대통령의 말은 1970년대의 ‘산업 역군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는 국가 지도자가 스타트업이 모인 곳이 아니라 제조업체가 밀집한 공단에 가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릴 듯한 대통령 스피치가 4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감동을 주었을까요? 과연 ‘우리가 국가 경제의 주역이구나’ 하며 뿌듯해했을까요? 12년 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내일의 사회’를 말하며 변화를 얘기했습니다.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국가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청와대 참모가 문 대통령 발언을 이렇게 준비했다면 그는 시대 변화와 혁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만약 대통령 스피치가 ‘애드립’이었다면 그것 역시 문제입니다. 지도자의 메시지에는 단어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아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권력과 돈으로 통치하던 시대는 끝났다. 오직 가진 것이라곤 말과 글, 그리고 도덕적 권위뿐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언어를 몰라도 쓸 수 있는 컴퓨터를 개발할 때,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 때 국가 경제 활성화를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관심·재미·의미·필요·가치(사회적 공헌이든, 개인적 성공이든)를 좇아 새로운 길을 걸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미국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청와대에 계신 분들께 이참에 한 말씀 드립니다. 지난해 자유한국당에서 ‘출산주도성장’을 얘기해 청년들의 냉소를 샀습니다. 정부가 평창올림픽에서 일부 선수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남북 단일 아이스하키팀을 만들자 젊은이들이 화를 냈습니다. 2030들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의 신화를 믿지 않습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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