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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소리 대신 침묵···첫 공실 생긴 '낙원상가' 가보니

새해 첫 영업일인 지난 2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상점 집결지인 이곳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각종 악기 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건반을 두드리고, 색소폰을 불어보고, 기타 줄을 퉁기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지면서 열지 않은 가게의 장막도 하나둘씩 걷혀간다.
 
하지만 요즘 낙원상가에선 이런 악기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있다. 낭만적인 악기 연주를 컴퓨터가 대신해 주는 시대가 오고,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낙원악기상가 상인들. [임성빈 기자]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낙원악기상가 상인들. [임성빈 기자]

이곳 상가 관리 업무를 37년째 맡고 있는 낙원상가주식회사 최난웅(68) 부장은 “경기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발길이 끊기는 곳이 악기 상가”라며 “먹고살기 바쁘니 음악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상가 2층에는 3곳의 공실이 생겼다. 상권이 쇠퇴해 매출이 줄어들자 오랫동안 해온 장사를 접은 것이다. 새로 생긴 공실에 들어가겠다는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최씨는 “빈 점포가 나온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35년째 낙원상가에서 기타 판매점을 운영하는 손창기(66)씨는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도 지금처럼 낙원상가를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며 “최근에는 2칸(약 13㎡)짜리 점포를 한 칸으로 줄이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매출이 계속 줄고 비용이 증가한다면 나도 점포를 줄일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상가 2층에만 3곳의 공실이 생겼다. 빈자리는 화분을 놓아 임시로 꾸며놓았다. [임성빈 기자]

지난해 상가 2층에만 3곳의 공실이 생겼다. 빈자리는 화분을 놓아 임시로 꾸며놓았다. [임성빈 기자]

낙원상가가 악기 전문 상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80년대다. 70년대 통기타 붐이 일고, 나이트클럽ㆍ카바레 등에서 종사하는 전문 악사들이 상가를 찾아오면서 호황을 누렸다. 우리나라 악기 거래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가수나 연주자 등 전문 음악가들이 공연장에 설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인력시장이기도 했다. 한때 낙원상가 지점 은행의 현금보유액이 전국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돈이 몰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자악기와 노래방의 대중화로 악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각종 음악 학원들이 사라지면서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져 갔다. 피아노 판매점을 운영하는 오영미(61)씨는 “2000년대와 비교하면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며 “과거에는 음악을 취미로 하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손님의 대부분이 음악 전공자들”이라고 아쉬워했다.
 
판로가 달라진 것도 낙원 상가를 내리막으로 이끌었다. 우선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상거래가 활발해졌다. 간단한 악기는 번거롭게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주요 온라인 쇼핑몰의 악기 가격은 최저가 바닥을 찍었다. 그러나 오프라인 중심인 낙원상가 매장은 점포 운영비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음향 장비 업체를 운영하는 국민순(56)씨는 “온라인에서 팔아도 이윤은 거의 없고 매출만 늘어나 세금 부담만 커진다”며 “오랜 세월 쌓아온 고객과의 신뢰 관계와 세심한 수리 서비스로 차별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고 피아노를 판매하는 오영미(61)씨가 혼자 가게를 지키며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임성빈 기자]

중고 피아노를 판매하는 오영미(61)씨가 혼자 가게를 지키며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임성빈 기자]

중국에서의 중고 악기 수요가 늘어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중고 피아노의 경우 악기상이 이를 매입하면 2~3일이 걸리는 수리ㆍ조율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매물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일감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중고 피아노를 취급하는 고길오(68)씨는 “90년대 말에는 한 달에 20대 정도의 중고 피아노를 팔았는데, 지금은 채 10대를 팔지 못하고 있다”며 “매물이 순환돼야 일감이 생기는데, 국내 판매만 하는 우리에게는 매물이 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의 흐름만큼이나 유행의 변화 역시 낙원상가에 충격을 줬다. 낙원상가 초창기부터 영업해온 강정호(63)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힙합 등 전자 음악으로 대변되는 ‘쇼미더머니’ 세대”라며 “‘어쿠스틱’에 익숙한 이른바 ‘쎄시봉’ 세대인 중년층 이상만 이곳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즘 낙원상가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낙원상가 통합 쇼핑몰을 통해 차별화한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구축하고, 미디(MIDI, 악기와 컴퓨터를 연결해 디지털 사운드를 만들고 합성하는 장비), 런치패드와 같은 각종 전자 음향기기를 진열하는 등 20ㆍ30대의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을 위한 악기 강습 프로그램을 여는 등 어쿠스틱 악기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손창기(66)씨와 새 기타를 산 어린 손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성빈 기자]

손창기(66)씨와 새 기타를 산 어린 손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성빈 기자]

손창기씨는 “악기를 한 번 사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꼼꼼히 관리해줄 수 있는 곳은 낙원상가뿐”이라며 “아무리 온라인 시대라지만 악기는 반드시 소리를 들어 보고 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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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