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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 명품 스톱…중국인, 가성비 따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8.1%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의 쇼핑몰 풍경. [EPA=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8.1%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의 쇼핑몰 풍경. [EPA=연합뉴스]

14만5000달러(약 1억6000만원)의 높은 연봉을 받는 중국 제약사 임원 왕샤오촨은 루이비통 같은 고가 브랜드를 고집하는 명품족이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에는 코치같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브랜드로 눈을 돌렸다. 회사 사정이 나빠져 수입이 쪼그라들자 소비지출을 줄인 것이다.
 
중국 경기 둔화에 중국인의 소비 심리가 바짝 위축되는 가운데, 필수품과 중저가 제품을 주로 구매하는 이른바 ‘알뜰 소비족’이 중국에서 늘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소비자들이 하나둘씩 소비 성향을 바꾸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에 따른 경제 성장 둔화 우려가 빚은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성별·소득 등 중국 소비자의 배경과 무관하게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명품 시장 고객층인 중국 여성 소비자들은 립스틱처럼 중저가 제품이라면 몰라도 값비싼 핸드백은 당분간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NYT 역시 “수입이 비교적 안정적인 중산층마저도 필요 이상으로 돈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애플의 매출 부진 역시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한 중국 현지 시장 분위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일 애플은 지난해 10~12월 매출 전망을 기존 890억~930억 달러(약 100조~105조원)에서 840억 달러로 5~9% 낮췄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경제 둔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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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국 소비자들은 고가 정책을 고수하는 애플을 외면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중국 남부 난닝(南寧)의 대학 강사 윌리엄 탄(30)은 한때 아이폰 5·6·7 모델을 연이어 사용한 ‘아이폰 마니아’였다. 그러나 최근 신형 아이폰XR보다 200달러가량 싼 화웨이 스마트폰을 샀다. 탄은 “기능만 멀쩡하면 굳이 비싼 제품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젊은 층은 “예전엔 아이폰 가격이 콩팥 한 개 값이었는데, 신형 아이폰을 구하려면 콩팥 두 개는 내놔야 한다”며 애플의 고가 정책을 비꼰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소비자의 변화에 수혜를 입는 기업도 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다. 이 기업의 지난해 4분기 중화권 지역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나이키가 도입한 온라인 저가 상품 판매 전략이 중국에서 통한 것”이라며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매출액 역시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필수품’과 ‘저가 브랜드’를 내세운 중국 내 외국 기업의 실적은 오히려 나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인의 소비는 둔화하는 추세다. 2013년 11월 13.7%에 달한 소매판매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11월 8.1%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8.8%)에 못 미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증가율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가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정체로 이어지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설’까지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세계은행이 제시한 중진국 함정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경제 신흥국의 1인당 GDP가 4000~1만 달러 수준에서 정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중국의 1인당 GDP는 8827달러 수준(2017년 기준)이다.
 
금융기업 알리안츠의 무하메드 엘 에리안 수석 경제 자문은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라며 “(90일간의) 휴전 시한인 오는 3월 1일까지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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