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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살아있는 지혜 설파한 시교를 아시나요?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18)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 이건 전문가 앞에서 제 지식 자랑을 하는 이에게 하는 비아냥이다. “쌍권총은 두 자루다 .”이건 동어반복으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일컫는다. 
 
이런 비유가 또 있다. “공자님 같은 말씀”이다. 굳이 입 밖에 내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극히 옳지만, 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말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인(仁)을 앞세워 이상적 국가를 만드는 법을 설파하고 다녔지만 정작 그 뜻을 펼칠 자리에 앉지 못했던 이상주의자 공자를 두고 나온 이야기다.
 
공자의 초상. '공자님 같은 말씀이다'는 굳이 입 밖에 내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극히 옳지만 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말을 가리킬 때 쓰인다. [중앙포토]

공자의 초상. '공자님 같은 말씀이다'는 굳이 입 밖에 내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극히 옳지만 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말을 가리킬 때 쓰인다. [중앙포토]

 
그렇다 해도 공자님 같은 말씀은 필요하다. 연초인 만큼 더욱 그렇다. 비록 전부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바람직한지 알아두면 나쁠 게 없다. 자기가 또는 자신이 속한 조직이 어디쯤 서 있는지 알게 되어 깁고 보태는 데 도움이 될 터이니 말이다.
 
‘공자님 같은 말씀’을 찾자면 말할 것도 없이 중국 고전이 보고(寶庫)다. 사서삼경이며 제자백가 등엔 문자 그대로 공자님 말씀이 지천이다. 그중 이번에 고른 책은 『시자(尸子)』(신용철 옮김, 자유문고). 책 이름을 처음 접한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어지간한 중국사에서도 언급되지 않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용이 탁월해서라기보다 ‘난 이런 책도 읽었다우’하는 지적 허영과 베스트셀러와 고전이라면 일부러 피해 가는 편벽됨이 반영된 선택이다.
 
책을 지은이는 중국 전국시대 진(晉)나라 사람 시교(尸佼)다. 대략 2500년 전 인물인데 진(秦)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룩한 재상 상앙(商鞅)의 식객 혹은 스승이었단다. 한데 상앙이 제자백가 중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것과는 달리 시자는 형벌보다는 인의(仁義)와 덕치를 강조하고, 형벌에서도 공정무사를 강조한 것이 유가(儒家)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자』, 신용철 저, 자유문고

『시자』, 신용철 저, 자유문고

 
시교는 20편 6만여 자에 이르는 『시자』를 남겼는데 현재에 전하는 것은 상하권 15편뿐으로 그나마 10분의 2 정도 남은 것이라 한다. 내용은 도(道)나 덕(德) 같은 이론적·추상적 것을 다룬 것이 아니라 치국이나 처세 등 실용적인 술(術)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비유를 동원해 꽤 설득력 있는, 21세기에도 통할 만한 지혜를 만날 수 있다.
 
“말을 살 때 말의 발힘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피지 않고 희고 검은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반드시 잘 달리는 말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옥을 살 때 그 옥의 아름답고 거친 것을 살피지 않고 옥이 크고 작은 것으로만 기준을 삼는다면 반드시 좋은 옥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영화 '곡성'의 '뭣이 중헌디?' 장면. [사진 jtbc]

영화 '곡성'의 '뭣이 중헌디?' 장면. [사진 jtbc]

 
이건 한때 유행했던 어느 영화의 대사 “뭣이 중헌디?”의 중국판이라 할 수 있다. 일을 도모할 때 비용만 따지거나 사람을 쓸 때 학연 등 친분만 눈여겨보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말이다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은 살찌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한 끼니를 먹고 남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살이 쪘느냐고 묻는다면 듣는 사람들이 다 웃을 것이다. 대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다 한 끼니를 먹고 살이 쪘느냐고 묻는 것과 같이 금방의 효과를 바라고 있다.”
 
“용맹이라는 것은 때에 따라 겁쟁이가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주장할 수도 있어야 제대로 발휘했다 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최후의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구절은 어떨까. 요즘 이른바 정치를 한다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알다시피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지식이니 정보니 하는 것이 그야말로 정신없을 정도로 커지고 변하는 세상에선 어쩌면 지식보다 지혜에 매달리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새해 벽두, 사금을 캐듯 그런 지혜가 그득한 동양 고전을 뒤적이는 것은 어떨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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