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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문에 쓰인 ‘개조심'…위트 있는 집주인의 경고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1)
손글씨에 대한 감성을 깨우쳐 준 바로 그 ‘개조심’. [사진 박헌정]

손글씨에 대한 감성을 깨우쳐 준 바로 그 ‘개조심’. [사진 박헌정]

 
개조심! 동네 골목의 녹색 철문에 큼지막하게 쓰인 손글씨가 인상적이다. ‘그렇지. 사나운 개가 갑자기 덤벼들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며 약간 느린 마음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볼수록 멋들어지게 잘 썼다. 주의를 당부하거나 경고할 목적일 텐데, 인간적인 배려와 약간의 위트가 엿보이고 워낙 크게 써놨으니 혹시 어떤 불상사가 있어도 약간은 면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글씨체도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전에 우리 땅에 누가 자꾸 들어오길래 경고문을 써 붙였는데, 미대 출신인 동서가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써주었다. 같은 종이에 같은 펜으로 썼어도 각도를 살려 삐쭉 빼쭉 써놓으니 한 발 들였다가는 지뢰라도 터질 것 같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그 손으로 쓴 ‘개조심’도 어쩌면 ‘CCTV 작동 중’의 완곡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정말 개가 있었을까.
 
인간의 체취가 살아 있는 손글씨
우리 동네가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개조심’ 말고도 곳곳에 손으로 쓴 글씨가 자주 보인다. 간판이나 벽에 손으로 쓴 상호는 아무래도 아크릴 간판의 내구성에 비할 수 없어 탈색되거나 지워진 것이 많다. 그리고 아무리 글씨에 자신 있더라도 손으로 용감하게 쓸 정도면 주변이 이미 어수선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수록 글씨에서는 세월의 묵은 때가 느껴진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썼을 두 가게의 상호. 아크릴 간판에 비할 수 없는 내구성이라 많이 탈색되고 지워졌다. [사진 박헌정]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썼을 두 가게의 상호. 아크릴 간판에 비할 수 없는 내구성이라 많이 탈색되고 지워졌다. [사진 박헌정]

 
깔끔한 프린트물에 익숙해져 있다가 손글씨를 발견하고 보니, 이게 그냥 힐끗 보고 지나칠 것이 아니다. 손글씨 속에서 활자와는 다른, 인간의 체취와 기운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나 할까. 새로운 발견이었다.
 
손글씨가 갖는 힘은 무엇일까.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서류를 본 적 있다. 반듯반듯한 펜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정자체로 쓴 글씨가 곧 실력이었고, 조직의 권위이자 신뢰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임명장이나 상장의 권위도 궁서체 글씨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다이어리에 정리해놓으신 조상님 제삿날과 산소 위치, 가족사항. 이제 아버지에 대한 느낌을 글씨를 통해 기억해내야 한다. [사진 박헌정]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다이어리에 정리해놓으신 조상님 제삿날과 산소 위치, 가족사항. 이제 아버지에 대한 느낌을 글씨를 통해 기억해내야 한다. [사진 박헌정]

 
글씨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다. 연애편지는 그 상투적이고 오글거리는 내용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향기 때문에 읽게 된다. 객지에서 받아든 어머니 편지의 옛날 맞춤법 글씨도 알 수 없는 큰 힘을 지녔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쓰인 ‘그랬구나! 참 잘했네’라는 선생님의 글씨가 오늘날 나를 이렇게 성장시켰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여기 차를 세우셔서 제가 곤란했어요’라는 포스트잇의 얌전한 글씨가 사람을 더 미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손글씨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도 아파트 경비 선생님의 글씨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글씨는 곧 ‘톡’과 ‘손가락’이다. 컴퓨터 사용 때문에 글씨체가 엉망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대입 논술시험 외에는 글씨를 많이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빠르고 편하고 깨끗하고 보기 좋은 컴퓨터 타이핑에는 사람의 마음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원고지에 글을 써봤기 때문에 안다. 한번 잘못 쓰면 쭉 긋거나 지우고 다시 써야 하고, 더는 고치기 힘들 정도면 구겨 던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래서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얼개를 짜야 했다.
 
요즘은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하고 ‘Ctrl+C, Ctrl+V, 일명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이 거의 일반명사화 되다시피 했다. 나 역시 노트북 앞에서 되는대로 지껄일 때가 많다. 다시 쓰거나 이리저리 잘라 붙이면 되니까. 마음이 들어갈 틈도 없이 글 한 편이 완성될 때도 잦다. 글자를 양산하기 쉬우니 쓸데없이 내용이 길어지는 ‘컴퓨터 수다’ 현상도 생긴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길을 걷다가 크메르어 손글씨가 너무 예쁘고 멋스러워서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촬영했다. [사진 박헌정]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길을 걷다가 크메르어 손글씨가 너무 예쁘고 멋스러워서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촬영했다. [사진 박헌정]

 
『모비 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필경사(筆耕士) 바틀비』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하던 19세기 중반 뉴욕,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된 바틀비는 변호사의 법률서류를 온종일 그대로 베껴 사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산업사회 한쪽에서 방직기계가 천을 만들 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글씨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복사기를 대신해 인간의 근육이 움직여 만들어낸, 사람의 마음이 들어갈 틈이 없던 그 글씨는 같은 시대에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을 써내려간 글씨와 같지만 같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소외된 노동의 벽에 갇힌 바틀비는 월스트리트의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정보 외엔 더 가질 게 없는 복사기
잠깐 엄청난 양을 찍어낼 수 있는 컴퓨터와 복사기가 인간의 수고를 덜어준 것은 고맙지만 그런 글씨에서는 정보 외에는 더 가질 게 없다. 동네 골목길에서, 시골 장터에서, 아버지의 오래된 노트에서 발견한 손글씨는 비록 거칠고 촌스럽지만 뭔가 인간의 힘과 마음이 느껴진다. 손으로 쓴 글씨는 모양이 어떻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 명필이 따로 있을까. 명창이 노래로 심금을 울리듯, 글씨로 사람 마음을 움직이면 명필이지.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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