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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열·이영호 게임 전설들 판교서 인생 2막…연수입 5~6억

 
판교는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다.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이곳에 1200여 개 기업, 7만여 명의 인재들이 한국판 구글ㆍ페이스북을  꿈꾸며 일한다. 한국 제조업은 휘청거리지만, 판교 기업들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미래를 바꾸려 한다. 판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중앙일보는 2019년 한해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디지털 시리즈를 통해 판교 테크노밸리 기업과 사람들의 꿈·희망·생활을 해부한다.
지난해 11월 16일 부산에서 열린 지스타2018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스타크래프트 BJ멸망전 결승전. 프로게이머 출신 BJ와 일반 게임BJ들이 4명씩 함께 팀을 이뤄 실력을 겨뤘다. [사진 아프리카TV]

지난해 11월 16일 부산에서 열린 지스타2018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스타크래프트 BJ멸망전 결승전. 프로게이머 출신 BJ와 일반 게임BJ들이 4명씩 함께 팀을 이뤄 실력을 겨뤘다. [사진 아프리카TV]

 


인생 2모작이란 용어는 50·60세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경기도 판교 테크노벨리에는 '1말 2초(10대 후반 20대 초반)'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제2의 인생을 일궈 나가고 있는 2말 3초 전직 프로게이머들의 ‘성지’가 존재한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세븐벤처밸리에 있는 인터넷 라이브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다.




스타크래프트 [중앙포토]

스타크래프트 [중앙포토]

 
 아프리카TV에는 현재 234명(지난달 19일 기준)의 은퇴한 프로게이머가 개인방송을 하고 있다. 현역시절 1157전 708승 449패라는 전적으로 '천재테란'이라 불렸던 이윤열(35), 월드사이버게임스·스타리그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최종병기' 이영호(27) 등 스타크래프트 1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다. 아프리카TV가 운영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ㆍLOL)팀 프릭스의 감독인 최연성(36)까지 합치면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5명의 프로게이머 중 3명이 이곳에서 활동 중이다. 
 
스타크래프트 뿐만이 아니다. 롤 프로게이머로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했던 ‘와치’ 조재걸(27), 배틀그라운드 1세대 프로게이머였던 ‘하얀눈길’ 배대혁(25) 등 스타크래프트 이후 등장한 게임 종목에서 활약했던 스타들도 속속 BJ(Broadcasting Jockey)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판교는 어쩌다 전직 프로게이머들의 성지가 된 것일까.
 
18.3세 데뷔, 27.9세 은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프로게이머의 직업적 수명은 짧다. 구름처럼 많은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한몸에 받으며 기발한 전략과 정밀한 유닛 컨트롤로 상대를 제압해 온 스타라 해도 10년 이상 현역으로 뛰기는 쉽지 않다. 한국 e스포츠의 아이콘이었던 황제 임요환도 1999년 데뷔해 2010년 은퇴하기까지 11년 남짓 선수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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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7년 e스포츠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프로게이머의 평균 데뷔연령은 18.3세이며 은퇴 예상 나이는 27.9세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현역 활동 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프로게이머들의 가장 큰 고민은 향후 진로다. 같은 조사에서 국내 프로게이머 74명을 대상으로 선수 활동 관련 어려움을 물었더니, 이 중 52.5%가 ‘불투명한 향후 진로’를 꼽았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 ‘피지컬(육체적 능력, 반응속도)’에 한계가 온다’는 업계의 통념이 결코 과장이 아니란 얘기다. 현직 프로게이머 중 최고령 층이 25~26세로 나타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초창기 프로게이머들은 은퇴 이후 프로구단 코치나 감독, 중계방송 해설위원 등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자리는 한정돼 있고 공급은 넘쳤다. 일부는 게임 개발사에 둥지를 틀었고, 누군가는 개인 사업을 했고 어떤 이는 직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년간 매일 12시간 이상 게임에만 전념했던 이들의 업종전환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러던 차에 서서히 개인방송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모바일 환경이 자리 잡았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도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콘텐츠진흥원이 일반인 1200명을 대상으로 e스포츠 이용행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5.1%가 '방송시청의 형태로 e스포츠를 즐긴다'고 답해 '직접 게임을 한다(54.5%)'는 응답보다 많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는 “2010년대 이후 야구 관람하듯 다른 사람의 게임을 지켜보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BJ들의 게임방송을 즐기는 저변이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스타크래프트 황금세대 줄줄이 BJ 전업
 전직 프로게이머들의 게임방송은 양적으로만 많은 게 아니다. 인기도 많다. 지난해 아프리카TV 게임방송 BJ 최대 동시 접속자 수 상위 20개 방송 중 프로게이머 출신 BJ의 방송이 13개로 총 65%를 차지할 정도다. 프로게이머 출신인 채정원 아프리카TV 인터랙티브 콘텐트 사업본부장의 설명이다.
“e스포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프로게이머의 수명도 짧아졌다. 하지만 은퇴한다고 해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실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월등한 기술력과 일반인은 모르는 프로게이머 경험을 섞어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시청자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이들이 수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버리지 말고 활용할 수 있게 해보자는 게 시작이었다.”
아프리카TV 게임BJ

아프리카TV 게임BJ

 아프리카TV는 2016년 스타크래프트 1 선수였던 이영호를 BJ로 영입한 것을 기점으로 프로게이머 출신 BJ들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렸다. 프로게이머 BJ를 따로 분류한 카테고리를 만들어줬으며 시청자들이 광고 없이 바로 방송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퀵 뷰)도 지원해 줬다. 이후 2005년 전후로 국내 게임리그를 제패해 황금세대로 불렸던 이윤열ㆍ이제동ㆍ박정석ㆍ김택용 등 스타 프로게이머들이 속속 아프리카TV에 개인방송을 열었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였던 신주영도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진행했었다.  
 
“죽기 전까지 계속할 수 있는 일”
실제 방송을 하는 전직 프로게이머들은 BJ로서의 제2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달 24일 판교 아프리카TV 본사에서 만난 ‘하얀눈길’ 배대혁은 “죽기 전까지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배대혁은 2015년과 2017년에 각각 LOL과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그의 방송을 즐겨 찾는 애청자 수는 9만3000명이다.  
아프리카TV 게임방송 BJ로 활동중인 전직 프로게이머 배대혁.                 [아프리카TV]

아프리카TV 게임방송 BJ로 활동중인 전직 프로게이머 배대혁. [아프리카TV]

 
왜 BJ가 됐나.
“몇 년 전만 해도 프로게이머 은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경력을 이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 종목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개인방송 시대가 열리면서 프로게이머 출신들의 직업적 수명이 크게 연장됐다”
어떻게 방송하나.
“매일 오후 1시쯤 방송을 시작해 새벽 1시 정도까지 하루 12시간가량을 한다. 배고프면 바로 먹방으로 전환한다. 롤과 배틀그라운드 말고도 좋아하는 게임을 섞어서 하루 3개 정도씩 골고루 한다. 나만 알고 있는 팁을 많이 공개하는 게 인기비결이다.”
부모님이 싫어하실 것 같다.  
“처음엔 싫어하셨는데 내 수입이 찍힌 통장을 보고 나선 믿어주신다. 현역 프로게이머 때보다 많이 번다.”
프로게이머 출신 BJ 이윤열

프로게이머 출신 BJ 이윤열

 
 스타크래프트 레전드였던 이윤열은 다양한 이벤트로 시청자들을 끌어모은다. 대구에 거주하는 그는 낮엔 모바일게임 제작사에 기획자로 출근하고 퇴근 후 게임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4일에 방송한 ‘생스타 이윤열·임요환·홍진호·박정석 vs 리쌍도뱅’ 방송은 레전드급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총출동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날 방송을 시청한 동시 접속자 수는 1만6389명이었다. 이 씨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은 시대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프로리그 결승전이 열리면 수십만명의 관중이 몰려들던 그 시기에 대한 향수가 있다. 팬들과 소통하며 나이 들어서도 계속 게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년배 직장인보다 많은 수입
 
 아프리카TV BJ들의 수입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시청자들이 BJ를 후원하기 위해 선물하는 ‘별풍선’이 있다. 두 번째는 아프리카 TV가 광고를 수주해 와서 방송 앞에 붙여넣어서 발생하는 광고수익이 있다. 마지막으로 유명세를 바탕으로 공개 행사 등에서 해설자 등으로 나서서 얻는 수익이 있다. 업계 안팎에선 많이 버는 프로게이머 출신 BJ들은 5억~6억원가량을 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인기 BJ들은 프로게이머 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LOL 프로게이머였던 조재걸은 “프로로 활동하던 때는 정기적으로 연봉을 받았고 대회 상금까지 있어서 보다 안정적이었던 반면, 지금은 내가 얼마나 방송을 많이 잘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천차만별로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말했다.
 
 전직 프로게이머 BJ들의 성지는 판교지만, 이들은 막상 판교에는 자주 오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집에 있는 방이 스튜디오라서다. 지방에 사는 BJ들도 많다. 대체로 방송은 일주일에 5~6번씩 하는 경우가 많다. 방송 시간은 제각각이지만, 꾸준히 하지 않으면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어려워서다. 길게는 10시간 이상 방송하는 BJ들도 있다. 하얀눈길 배대혁은 "불규칙하게 방송하거나 쉬면 시청자 수가 바로 떨어진다"며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면서 여유가 생길 때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무조건 방송 위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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