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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길 잠적직후 韓美 공조···2차 북미회담 악재 차단"

북한의 조성길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근무했던 북한대사관은 로마 도심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주말 이른 아침인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곳은 정문 옆에 붙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는 현판이 없으면 대사관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관과 살림집을 겸하는 대사관 외부에 CCTV가 있고, 3층짜리 건물 창문과 출입구 등에 철제 방범시설이 모두 설치돼 있었다. 벤츠 승용차와 밴 등 차량 세 대가 주차돼 있었다. 내부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고 3층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걸어봐도 반응이 없었다.
 
이탈리아 로마 교외 주택가에 위치한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의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 교외 주택가에 위치한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의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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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을 찾은 시간에 본지 취재진만 있었는데, 기자들이 없다고 여겼는지 건물 안에서 한 여성이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뜰의 낙엽을 치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날 대사관 쪽을 촬영하다 갑자기 휴대전화 배터리가 급격히 떨어지며 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전날 기자들이 많았을 때는 사진 촬영을 하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은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평소에도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조 대사대리와 친분이 두터운 안토니오 라치 전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현지 언론에 “며칠 전 북한대사관에 전화했는데 전(前) 대사대리가 평양에 귀국했다고 둘러대더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이날 지난해 11월 잠적한 조성길 북한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제3국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 당국이 특수요원들을 로마에 급파했지만 조 대사대리 체포에 실패했다고도 전했다. 북한 특수요원들은 남은 공관원들의 동요를 막고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로마 남쪽 외곽의 북한대사관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말 아침 북한대사관에선 남성 특수요원들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기자가 방문한 5일(현지시간) 불은 켜져있었지만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은 없었다. [김성탁 특파원]

기자가 방문한 5일(현지시간) 불은 켜져있었지만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은 없었다. [김성탁 특파원]

이탈리아 현지 외교 소식통은 6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해 조성길의 잠적이 불거지면 더 큰 논란이 일 수 있다”며 “사전에 알려져 북·미 정상회담의 악재가 감소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앙일보 보도 이후 국정원이 국회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준 것은 한·미 당국이 이미 협의를 거쳤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조 대사대리는 지난해 9월 귀임 통보를 받았고, 후임자에 대한 인수·인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외교부가 대사대리 교체를 위한 마지막 절차를 수행하려고 11월에 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사라진 상태였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외교부가 정보당국에 알렸고, 정보당국은 제3국에 피신해 있던 그를 찾아 데려온 뒤 미국 정보기관에 연락해 공조에 나섰다는 보도다. 현지 언론 라 레푸블리카는 이탈리아 해외정보국(Aise)과 국내정보국(Aisi)이 합동으로 조 대사대리 사안을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대사관에서 한 여성이 잠시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낙엽을 치웠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북한 당국이 특수요원들을 로마에 급파했다고 보도했다. [김성탁 특파원]

이날 대사관에서 한 여성이 잠시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낙엽을 치웠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북한 당국이 특수요원들을 로마에 급파했다고 보도했다. [김성탁 특파원]

현지 외교 소식통은 이탈리아 정보당국이 조 대사대리를 보호하고 있으면 북한 측이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역량은 매우 뛰어나다”며 “조 대사대리가 노출되면 망신이기 때문에 이 문제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탈리아 정보당국이 미 당국과 정보를 공유한 뒤 미국을 통해 이를 한국 정부에 통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조 대사대리의 행방이 묘연하자 현지에선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망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관측과 미국이나 영국으로 이미 망명한 것 아니냐는 얘기 등 다양하다. 로마 일간 일 메사제로는 북·미 간에 2차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조 대사대리가 유럽 국가, 그중에서도 보안 유지 등에 유리한 영국에 이미 망명했을 가능성도 설득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조 대사대리의 잠적 과정과 대처에 이탈리아와 미국, 한국과 북한 외에 독일이나 영국 정보기관이 관련돼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국정원 제1차장과 노무현 정부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텔레그래프에 “이탈리아 정보기관이 조 대사대리를 보호하다 미국 측에 넘겼고, 미국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미군 공군지지를 통해 이미 미국으로 데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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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