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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보름' 영등포 현장…"결제 안돼요, 난 잘 몰라요"

‘제로페이존’ 영등포역 지하상가 가 보니
“그거? 사장님이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희 가게는 (결제가) 안 돼요.”
 
제로페이 도입 보름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가 붙어있는 가게 스무 곳을 둘러봤다. 이 가운데 기자가 제로페이로 결제에 성공한 곳은 커피숍 한 곳뿐이다. 나머지 가게에서는 “한 번도 써본 일이 없다” “승인이 안 나서 결제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등포역 지하상가는 강남터미널 상가와 더불어 서울시가 선정한 ‘제로페이존’이다. 영등포역 지하상가 60곳 중 제로페이 가맹점은 53곳(88.3%). 영등포역 입구·계단은 제로페이존 광고가 가득하다. 안내 입간판도 곳곳에 눈에 띈다. 
제로페이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한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입구. [중앙포토]

제로페이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한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입구. [중앙포토]

가맹점 스무 곳 들렀지만 한 곳서만 결제
시행된 지 보름이 지났고, 이렇게 안내하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를 붙인 상가가 꽤 많았다. 하지만 상당수는 제로페이 스티커 위에 플래카드나 포스터, 상품을 진열해 놓아서 손님이 알아보기 어려웠다.
 
제로페이 가맹 스티커가 붙어있는 화장품가게에 들어갔다. 물건을 고른 뒤 제로페이로 결제할 수 있냐고 묻자 “아직 승인이 아직 안 나서 결제가 안 된다”고 했다.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묻자 “잘 모른다. 사장님이 아직 (제로페이를) 쓰지 말라고 하셨다”고 답했다. 현금으로 결제하고 가게를 나서자 직원들끼리 “또 기자인가 보다. (제로페이) 찾는 사람은 전부 기자”라고 수군거렸다.
 
바로 옆에 있는 가방가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제로페이로 물건을 살 수 있냐는 질문에 직원은 난감한 표정부터 지었다.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하더니, 기자를 매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 “저쪽에 가보면 그거(제로페이)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라며 건너편을 가리켰다. 추천을 받고 찾아간 가게에서 “제로페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사장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안돼요. 난 몰라요”라면서 말을 잘랐다. 옷가게, 모자가게도 들렀지만 제로페이 결제가 안 돼 전부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값을 치렀다.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에 입주한 점포 60곳 중 상당수가 제로페이 가맹점임을 알리는 스티커 위로 플래카드나 광고지 등을 붙여놔 소비자들이 이를 인지하기 어려웠다. [중앙포토]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에 입주한 점포 60곳 중 상당수가 제로페이 가맹점임을 알리는 스티커 위로 플래카드나 광고지 등을 붙여놔 소비자들이 이를 인지하기 어려웠다. [중앙포토]

로딩에만 30초, 알바생은 ‘재확인’ 거쳐야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유일하게 제로페이를 사용한 곳은 작은 카페였다. 제로페이로 결제해도 되냐고 묻자, 직원 이미선(36)씨는 깜짝 놀라며 “제로페이 찾는 사람은 두 번째”라며 “나도 방법은 잘 모르는데 손님이 알면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음료를 고른 뒤 스마트폰으로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연동하자 한참 만에 로딩이 완료됐다. 제로페이 버튼을 누르자 다시 로딩이 시작됐다. 30초 남짓 지나서야 제로페이 창이 열리고 가게에 비치된 QR코드를 촬영할 수 있었다. 결제창이 뜨자 음료 가격을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니 곧바로 송금이 완료됐다.
 
그러자 이번엔 이씨가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가맹점주가 아닌 이씨는 결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다. 기자가 다시 앱을 열고 거래내역을 조회해 영수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결제된 것 같다”면서 음료를 내줬다. 이씨는 “막상 써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한가한 시간이면 몰라도 손님이 몰리면 제로페이 결제가 어렵겠다”고 말했다. 
제로페이 영수증. 제로페이로 계산하자 직원은 "점주 휴대전화가 아니면 제대로 결제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중앙포토]

제로페이 영수증. 제로페이로 계산하자 직원은 "점주 휴대전화가 아니면 제대로 결제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중앙포토]

이날 가게 직원들이 “승인이 안 된다”며 제로페이 사용을 거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제로페이는 사용자가 은행 앱이나 간편 결제 앱을 사용해 매장 내 QR코드를 촬영한 뒤 구매 금액을 입력하면 계좌이체 방식으로 가맹점주 통장에 현금이 입금되는 시스템이다. 가맹점주는 스마트폰에 제로페이 점주용 앱을 깔고 입금 내역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직원은 사정이 다르다. 손님이 제로페이로 이체한 금액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직원의 스마트폰에 제로페이 가맹점주용 앱을 깔고, 점주의 인증을 받으면 되지만 다수의 점주는 이런 방법을 꺼린다. 이날 만난 가방가게 사장 김모(52)씨는 “직원이 언제 그만둘지 모르고,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 문제도 마음에 걸린다”면서 “남의 휴대폰에 결제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증해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제도 보완 중”이라며 실적 비공개  
손님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화장품가게에서 만나 박지영(22)씨는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쓰는 게 훨씬 편한데, 굳이 직원들 눈치 봐가며 ‘제로페이 써도 되냐’고 허락받아서 물건을 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하상가에서 옷을 구매한 전은미(21)씨는 “호기심에 한 번 사용해보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보가 전혀 없다”면서 “주변에서 제로페이 쓰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고 했다. 
영등포역 지하상가 곳곳에 서 있는 제로페이 입간판. 하지만 지난 4일 이곳 상점 20곳을 둘러보니 제로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 상점은 커피숍 한 곳에 불과했다. [중앙포토]

영등포역 지하상가 곳곳에 서 있는 제로페이 입간판. 하지만 지난 4일 이곳 상점 20곳을 둘러보니 제로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 상점은 커피숍 한 곳에 불과했다. [중앙포토]

서울시는 이날까지 가맹점 확보 현황와 결제 건수 등 실적을 알려 달라는 요청에 “아직은 제도를 보완·개선하는 단계”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 김형래 제로페이추진반장은 “소비자가 제로페이 가맹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늦어도 3월까지는 ‘제로페이 지도’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소비자가 가게에 들러 ‘제로페이로 결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것”이라며 “가맹점 확산과 소비자 홍보를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제로페이는…박원순 시장 공약, 소상공인 수수료 0원
스마트폰 앱으로 가맹점에 비치된 ‘제로페이’ QR코드를 인식해 판매자 계좌로 결제금액을 이체하는 모바일 직거래 시스템. 연매출 8억원 이하의 소상공인은 수수료가 0%여서 ‘제로페이’라고 부른다. 소비자는 올해 사용분부터 40%의 소득공제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으로,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서울에서 전국 최초로 시범 서비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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