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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가서 마음껏 창업하라…스타트업이 비빌 언덕 있다

판교는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다.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이곳에 1200여 개 기업, 7만 여 명의 인재들이 한국판 구글ㆍ페이스북을 꿈꾸며 일한다. 한국 제조업은 휘청거리지만, 판교 기업들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미래를 바꾸려 한다. 판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중앙일보는 2019년 한해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디지털 시리즈를 통해 판교 태크노밸리 기업과 사람들의 꿈·희망·생활을 해부한다.  
 
알바비 5000만원으로 만든 회사 들고 카카오 품에
 
 아파트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모빌’을 창업한 서대규(31) 대표는 최근 카카오페이에 회사 지분를 넘겼다. 모빌은 고지서와 민원 처리 등 아파트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기술(IT)서비스를 제공한다. 2014년 창업해 약 200개 아파트, 30만 가구의 입주민이 이 회사 앱을 쓴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은 1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어서다. 회원 수도 꾸준히 늘고 기술력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서비스를 유료화하자니 기존 회원들의 이탈이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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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5000만원을 모아 모빌을 창업한 서 대표는 “그동안은 직원들 월급 주는 일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카카오페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연구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매각으로 자금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카카오와 모빌의 플랫폼을 연계해 생활금융 서비스 등 그간 하기 힘들었던 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분 등을 넘겼지만, 서 대표는 여전히 모빌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CEO)다. 카카오페이와도 이미 약속된 부분이다. 모빌의 다른 직원들이 카카오페이에 회사를 넘기는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던 이유다. 이번 딜로 모빌은 안정적 성장 발판을, 카카오페이는 새 사업 기회를 얻었다.

 
카카오페이에 최근 인수된 아파트 관리 앱 개발업체 '모빌'의 임직원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창업자인 서대규 대표다. [사진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에 최근 인수된 아파트 관리 앱 개발업체 '모빌'의 임직원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창업자인 서대규 대표다. [사진 카카오페이]

  
판교 기업들, 스타트업에 ‘키다리 아저씨’ 역할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인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이스라엘식(式) 창업모델이 뿌리 내리고 있다. ‘이스라엘식 창업모델’이란 자금력이 약한 초기 스타트업이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이나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받아 성장을 지속하는 모델을 말한다. 창업자는 투자를 받고 지분을 넘겨도 CEO나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금력이 약한 스타트업이라도 ‘될성 푸른’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꿈을 펼칠 수 있다.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가 눈에 띄면 제 값을 내지 않고 베껴 자기 것으로 했던 일부 기업들의 관행과는 정반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스라엘과 차이점도 있다. 이스라엘에선 정부와 기업이 조성한 ‘요즈마 펀드(Yozma Fund)’ 같은 스타트업 펀드가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반면 판교에선 카카오나 네이버처럼 이미 성장한 ITㆍ바이오기술(BT) 기업들이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준다. 실제 네이버는 2017년 말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총 23건의 인수합병이나 투자를 했다. 카카오도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23개의 스타트업 등에 인수합병·투자했다. 스타트업 전체 투자액이 커지는 마중물 효과도 있다. 3일 중소기업벤처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벤처기업 등에 새로 집행된 투자금액은 3조1217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7년 전체(2조3803억원)보다 31% 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판교식 M&A로 반년새 회원 900만명 '뚝딱'
 
판교식 인수합병은 고만고만한 스타트업이 다투는 시장을 재편하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국산 데이팅 앱 시장이 그렇다. 지각변동은 지난해 5월 바이오ㆍ헬스케어 플랫폼 업체인 메타랩스가 국내 최대 데이팅 앱인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의 운영사(넥스트매치)를 97억원에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데이팅 앱은 ‘돈 되는 시장’이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업체 간 서비스 베끼기가 빈번해 탄탄한 자본력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일쑤다.   
 
사정이 이러니 해외 데이팅 앱 업체도 더 큰 업체에 합류하는 그룹화를 꾸준히 추진한다. 한 예로 세계 최대의 데이팅 앱 업체인 미국 ‘매치그룹’은 ‘틴더’와 ‘오케이큐피드’ 등 40여 개의 데이팅 앱을 거느린다. 매치그룹의 한 해 매출은 4조5000억원 선. 신상훈(39) 아만다 대표 역시 이런 글로벌 흐름을 냉정하게 읽고 메타랩스의 우산 아래로 스스로 들어갔다. 아만다 회원 수를 430만 명까지 불렸지만, 단일 브랜드 만으론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메타랩스의 아만다 인수 사실을 알게 된 직후 경쟁 데이팅 앱 ‘너랑나랑’ 측도 메타랩스에 자신들을 인수해 줄 것을 제안해 왔다. 현재 메타랩스는 ‘아만다’와 ‘너랑나랑’에 더해 자체 출범한 ‘그루브’까지 총 세 가지 버전의 데이팅 앱을 운영 중이다. 세 앱의 회원을 합하면 900만명에 이른다. 아만다를 인수한지 6개월 여 만이다. 이 회사 하지성 홍보ㆍIR 담당이사는 “아만다는 미국의 매치그룹처럼 멀티 브랜드 전략을 펼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하게 됐고, 메타랩스 역시 대규모 회원을 확보한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결) 분야의 중요 플랫폼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인수·합병 뒤 '점령군' 안보내
 
인수한 스타트업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도 판교식 인수합병의 특징이다. 인수합병 뒤 ‘점령군’을 보내 기존 경영진을 내쳤던 기존 관행과도 큰 차이다. 판교 기업에 지분이나 경영권을 넘긴 스타트업의 창업자 등은 그대로 회사에 남아 성장에 기여한다. 스타트업이 현재 보유한 기술은 물론, 그 기업의 미래 가능성까지 확보하기 위해서다. 바이두나 알리바바, 텐센트 등 BAT로 대표되는 IT거인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해 키워내는 중국의 창업 시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투자액이 반드시 큰 것 만도 아니다. 카카오는 2017년 자율주행 트럭업체인 마스오토에 4억 원을 투자했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그 가능성을 높게 본 때문이다.  

  
스톡옵션 행사로 한방에 200억 넘게 벌기도
 
판교 기업도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만만찮은 이익을 누린다. 우선 큰 부담 없이 새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 게임업체인 넥슨은 지난해 7월 PC방용 솔루션 업체인 ‘십년지기’를 인수해 단숨에 PC방 게임 런처(PC방 시스템 구동 프로그램) 업계의 선두권에 올라섰다. 주요 수입원인 PC방에서 자사의 게임을 상단에 배치하는 등 PC방 장악력을 키운 것이다. 네이버는 2017년 말 명함 관리 앱 ‘리멤버’의 개발사인 드라마앤컴퍼니를 인수한 덕에 관련 시장에 손쉽게 진출했다. 리멤버는 200만이 넘는 누적 가입자를 자랑한다.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등으로 충분히 보상하고, 이를 자연스레 인정하는 분위기도 스타트업 창업자의 판교행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실제 판교에선 소속 임직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부를 거두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대기업에서 그랬다면 ‘배신자’소리를 듣거나, ‘곧 퇴사할 사람’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 장봉재 카카오 API플랫폼 담당리더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49억80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중 49억500만원이 스톡옵션 행사로 벌어들인 돈이다. 같은 회사의 윤위훈 AI서비스 기획담당은 같은 기간 스톡옵션으로 13억8800만원을 벌었다. 소셜카지노 업체인 더블유게임즈의 박신정 부사장은 지난해 상반기 스톡옵션으로만 225억6500만원을 벌었다.    
 
판교식 모델은 인수합병을 통해 기존의 사업을 키우려는 대기업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겉으로 보이는 판교의 모습을 배끼기 보다는 판교의 기업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 나가는지 그 방식(Way How)를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광호 서울대 교수(개방형혁신학회 부회장)는 “판교 기업들이 스타트업의 ‘핵우산’이나 ‘양육자’ 역할을 해주자 많은 창업자들이 그 아래서 ‘트라이얼(Trial·시도) & 에러(Error·실패)’를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됐다”며 “능력 있는 개발자와 창업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고 판교로 향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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