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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로마 北대사관 굳게 닫힌 철문…초인종·전화에 아무 대답없어

 
정적에 휩싸인 로마 북한대사관에서 한 여성이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정적에 휩싸인 로마 북한대사관에서 한 여성이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 대리가 잠적한 가운데 북한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조 대사 대리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여전히 근무 중인 로마의 북한대사관 표정은 어떨까요. 주말을 맞은 5일(현지시간) 이른 아침에 찾아가 봤습니다.
 
 북한 대사관은 로마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있습니다. 당초 북한대사관은 로마 도심 한복판인 테르미니역 근처에 있었는데, 수년 전 외곽으로 옮겼습니다. 런던과 스웨덴의 북한대사관도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 있고, 일반 주택입니다.
 
로마 북한대사관 정문 옆 현판 [로마=김성탁 특파원]

로마 북한대사관 정문 옆 현판 [로마=김성탁 특파원]

 정문 옆에 붙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는 작은 현판이 없으면 대사관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사관 외부에 CCTV가 설치돼 있고 평소 사진이 붙어 있던 게시판도 텅 빈 상태였습니다. 부지는 컸지만 낡아 보이는 3층짜리 건물은 창문과 출입구 등에 철제 방범 시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해외에 있는 북한 대사관은 공관을 겸해 외교관 가족들이 살림집을 겸하고 있습니다. 주재 비용을 아끼는 목적도 있지만, 이탈을 막기 위해 서로 감시하는 조치입니다.
로마 북한대사관의 뒷편. 3층 방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로마 북한대사관의 뒷편. 3층 방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주말 이른 아침에 대사관 내부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사관 뒤편으로 가봤더니 3층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걸어봐도 반응은 없었습니다.
 
 대사관 내부에는 대사용으로 보이는 벤츠 승용차와 밴 등 차량 세 대가 주차돼 있었습니다. 대사관을 찾은 시간에는 중앙일보 취재진만 있었는데, 기자들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건물 안에서 한 여성이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뜰의 낙엽을 치우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전날 기자들이 많았을 때는 사진 촬영을 하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기도 했습니다. 
로마 외곽 북한대사관 외부에 CCTV가 설치돼 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로마 외곽 북한대사관 외부에 CCTV가 설치돼 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이날 대사관 내부를 촬영하다 갑자기 휴대전화 밧데리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꺼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평소에도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조 대사 대리의 이탈 이유에 대해 그와 친분이 두터운 안토니오 라찌 이탈리아 전 상원의원은 자녀들 때문일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습니다. 조 대사 대리는 대사관 근무 이전인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연수했다고 태영호 전 주 영국대사관 공사가 전했습니다. 요트와 와인 등 사치품 조달을 담당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외교관이 나갈 때 자녀가 여럿이면 한 명만 데리고 가게 하면서 탈북을 막는데, 조 대사 대리는 좋은 가문 출신이어서 두 자녀를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본인도 원래 자녀 한 명만 데려갈 수 있는데 2명을 동반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태 전 공사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의 잠적을 다룬 현지 신문 [로마=김성탁 특파원]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의 잠적을 다룬 현지 신문 [로마=김성탁 특파원]

 조 대사 대리는 해외 생활 경험이 풍부한 외교관입니다. 그만큼 서구 생활에 익숙했겠죠.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 국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솅겐 조약 가입국입니다. 수년 동안의 해외 생활 동안 자녀들을 동반하고 여행 등 견문을 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라찌 전 상원의원은 조 대사 대리가 북한으로 복귀하기 전 이탈리아 여행을 갈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대사관을 빠져나갈 때 여행을 다녀올 것이라고 했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장래 등을 고려해 이탈했을 것이라는 라찌 전 상원의원의 전언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조 대사 대리를 만났던 현지 신부는 교황에게 북한이 초대장을 보낸 데 대해서도 조 대사 대리가매우 열린 자세를 보였고, 개방을 지지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성향이 그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은 배경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11월 초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잠적한 조성길 대사 대리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초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잠적한 조성길 대사 대리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그의 형 김정철 등을 스위스 유학 시절 돌봤던 이모 고영숙과 그의 남편 이강은 1998년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이들을 인터뷰하며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거처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김정은 등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데려갔다고 밝혔습니다. WP 취재진은 김정은 등이 스위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거나 프랑스 지중해 해변에서 수영하는 사진, 이탈리아 유명 레스토랑에서 식사히며 찍은 사진 등이 고씨의 앨범에 가득하다고 전했습니다. 자유로운 생활의 맛을 본 조 대사 대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로마=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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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