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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헤이세이 끝나기 전에 결혼하자" 5월 연호 변경 앞두고 술렁이는 일본

‘헤이세이점프(Hey! Say! JUMP)’라는 일본 아이돌 그룹이 있습니다. 2007년 데뷔 당시, “모든 멤버가 헤이세이(平成) 시대 출생”이란 걸로 화제가 됐었죠. ‘헤이세이’란 현 아키히토(明仁·86) 일왕이 즉위한 1989년 1월부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일본의 연호(年號)입니다.(2019년은 헤이세이 31년). ‘헤이세이점프’는 가장 나이 많은 멤버가 1990년생인, 데뷔 땐 14~17살의 멤버들로 이뤄진 ‘소년 그룹’이었던 거죠. 
일본아이돌그룹 '헤이세이점프'의 2007년 데뷔 앨범. [사진 쟈니즈 홈페이지]

일본아이돌그룹 '헤이세이점프'의 2007년 데뷔 앨범. [사진 쟈니즈 홈페이지]

 
이 헤이세이 시대가 곧 막을 내립니다. 오는 5월 1일 나루히토(德仁ㆍ59) 왕세자가 생전 퇴위하는 부친의 뒤를 이어 제126대 일왕으로 즉위하면서 일본의 연호 역시 바뀌기 때문입니다. 각종 공문서는 물론 운전면허증 등에도 ‘2018년’이란 서력(西曆) 대신 ‘헤이세이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인들에게 연호의 변화란 큰 사건이죠. 그래서 요즘 일본에선 헤이세이 시대를 추억하는 상품이 속속 등장하는 등 ‘헤이세이 마케팅’이 인기라고 합니다. 
 
“나의 시대가 끝나기 전 결혼하고 싶어요”
‘헤이세이점프’란 그룹 이름도 요즘 색다른 의미로 회자되고 있는데요. NHK에 따르면 헤이세이 이전 쇼와(昭和) 시대(1926~1989년 1월)에 태어난 30대 이상의 미혼 남녀들이 헤이세이 시대를 지나는 동안 결혼을 하지 않고 싱글로 남았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을 ‘헤이세이점프’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헤이세이를 건너뛰었다”며 자조하는 거죠. 
'헤이세이' 막바지 결혼 열풍을 다룬 NHK 뉴스의 한 장면.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헤이세이' 막바지 결혼 열풍을 다룬 NHK 뉴스의 한 장면.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반면 이제 20대의 끝자락에 들어선 헤이세이 초반 세대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끝나기 전 결혼을 하겠다며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오는 4월 27일 결혼하는 가쓰베 나오리(28)는 NHK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이세이엔 학창 시절 추억이 서려 있고, 회사에선 선배들에게 ‘헤이세이 출생이군’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새 연호가 시작되기 전 결혼하는 것으로 이 시대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 웨딩업계는 뜻밖의 호황을 맞았습니다. 요코하마(橫浜) 시내의 한 호텔은 헤이세이 마지막인 31년을 기념해 예식 비용을 31% 할인해 주는 ‘헤이세이 막차 플랜’을 내놓아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한 호텔도 ‘헤이세이 마지막 결혼식’을 내걸며 4월까지 예식을 신청한 커플에게 웨딩드레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는데요. 예약 건수가 전년보다 2~3배 늘었다고 합니다.  
 
日,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쓰는 나라
일본에서는 ‘겐고(원호·元號)’라고 불리는 연호는 중국이 기원입니다. ‘왕이 시간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왕이 바뀌면 연호도 바뀌었죠. 기원전 140년 중국의 한 무제가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후 아시아 인접국들은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롭던 바다 건너 일본은 서기 645년 다이카개신(大化改新) 때 ‘다이카’란 독자 연호를 지어 247번째 ‘헤이세이’까지 이를 이어왔죠.  
고종이 '광무'라는 연호를 짓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장소인 서울 중구 원구단. [중앙포토]

고종이 '광무'라는 연호를 짓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장소인 서울 중구 원구단. [중앙포토]

한반도에선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죠. 조선 26대 왕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 ‘광무(光武)’라는 독자 연호를 지어 자주국임을 천명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은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 등 일본의 연호를 사용해야 했죠. 
 
메이지 이전엔 한 명의 왕이 연호를 여러 번 바꾸는 경우가 많았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1대(代)의 연호는 하나로 한다’는 원칙이 정착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일본의 연호는 사라지는 듯 했죠.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79년 ‘원호법(元號法)’을 제정해 다시 이를 공식화합니다. 
 
최근 산케이 신문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연호와 서력 중 무엇을 많이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일본인 응답자의 55%가 “연호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의 전통이기 때문에”, “익숙하니까” 등이 이유였습니다. 
 
새 연호는 ‘잔업’ or ‘스시’? 
5월부터 사용될 일본의 새 연호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원래 연호는 왕이 맘대로 지었지만, ‘원호법’ 발효 후인 ‘헤이세이’부터는 내각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내각이 공개한 연호의 기준은 6가지로 1)국민의 이상에 걸맞는 좋은 의미를 가질 것 2)한자 두 글자 3)쓰기 쉬울 것 4)읽기 쉬울 것 5)지금까지 연호로 사용되지 않았던 단어 6)지명이나 회사명 등 널리 쓰이는 이름이 아닐 것 입니다. 
4월 말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 부부. [교도=연합뉴스]

4월 말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 부부. [교도=연합뉴스]

이런 글자를 찾는 게 쉬울 리 없겠죠. 실제로 그동안 일본 연호에 쓰였던 한자는 겨우 72자였고, 그 중 ‘길 영(永)’이 29회, ‘하늘 천(天)’, ‘으뜸 원(元)’은 27회나 사용됐다고 합니다. 
 
지난 해 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새 연호는 일본인의 생활 안에 깊이 뿌린 내린 단어로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그렇다면 ‘잔업(殘業)’이나 ‘과로(過勞)’”, “‘스시(寿司)’나 ‘흰쌀(白米)’은 어떤가” 등의 우스개가 떠돌기도 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각계 전문가들에게 연호 추천을 받고 있는데요. 이 중 2~5개 정도의 후보를 추려 국회의 의견을 수렴한 후, 전체 각료회의에서 확정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5월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왼쪽)와 딸 아이코 공주. [AP=연합뉴스]

5월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왼쪽)와 딸 아이코 공주. [AP=연합뉴스]

“발표 늦어지면 큰 혼란 벌어질 것”
또 하나의 관심은 새 연호의 발표 시기입니다. 연호가 빨리 공개되지 않으면 행정 업무에 쓰이는 연도 프로그램을 변경할 수 없어 세금이나 사회보장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보수파들은 “현 왕이 퇴임하기 전 연호를 발표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두 개의 연호는 하늘 아래 두 왕을 허용하는 것” 등의 이유를 들며 반대해왔습니다. 
 
정부 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에서도 새 연호의 공개 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요구가 계속되자, 일본 정부는 새 왕의 즉위 한 달 전인 4월 초 연호를 공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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