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좋은 책은 뼈아픈 인식의 충격을 준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말하는 독서, 글쓰기의 의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한겨레출판사
 
풍요로울 것만 같은 돼지띠 새해. 문학·출판계의 표정은 어떨까. 문학평론가 신형철(43,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씨는 지난해 누구보다 풍성한 가을을 보냈다. 공동체에 그만큼 슬퍼할 일이 많았다는 뜻일까. 공감을 시사하는 제목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단순히 문장이 아름다워서는 아닐 게다. 그의 평론과 산문은 흐릿한 문학작품의 의미나 우리 내면, 어지러운 세상을 설득력 있게 해명해내는 경우가 많다.
 
올해 신씨는 두 번째 평론집을 묶어 낸다. 첫 번째 평론집 이후 10년을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신씨를 만나 이 시대 읽기와 쓰기의 의미, 문학·출판 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명쾌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쓰는 신형철. ’문학에는 인식적 가치가 있어, 읽고 나면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명쾌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쓰는 신형철. ’문학에는 인식적 가치가 있어, 읽고 나면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인터뷰를 위해 2008년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구입했는데 22쇄본(刷本)이더라.
“불과 10년 전인데도 남의 책 같다. 현학성을 걸러내지 못한 부분도 있고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부분도 많다. 이번에 낸 책도 십년이 지나고 보면 또 부끄럽겠지.”
 
이전에 비해 달라진 생각이란.
“문학은 문학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경제 등의 영역과 얽혀 있다. 이 상식을 점점 더 강하게 실감한다. 공부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조바심을 자주 느낀다.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과제를 더 긴밀하게 일치시켜 나가고 싶다.”
 
문학이 그런 실제적인 일을 할 수 있나.
“문학이 사회적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세상을 직접 바꿀 수는 없어도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조금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답 아닐까. 나는 문학에 인식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작품을 읽고 나면 인간과 인생에 대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배우게 되고 그로 인해 달라진다. 내가 그랬다.”
 
문학 이외의 책도 읽나.
“언제나 문학과 비문학의 독서 비율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좋은 책은 언제나 인식적 충격을 준다. 내가 이걸 몰랐구나, 이걸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각성은 뼈아프다.  요새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얘길 자주 한다. 구체적 정보가 있고 생생한 현장성이 있으며 감정적인 설득력도 강력했다. 이런 책을 문학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문학만큼 구체적이면서도 문학이 놓치는 영역에서 당대에 대한 관찰과 발언을 훌륭히 해내는 책들이 적지 않다. 『이상한 정상가족』 『감옥의 몽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같은 책들이 그렇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반응이 좋다.
“이전 책들은 (『몰락의 에티카』, 2011년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2014년 영화 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 각각 2만 부 정도 팔렸다. 그런데 『슬픔을…』은 출간 한 달 만에 2만 부를 넘겨 당황했다. 짧은 글 모음이라 접근이 쉽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동시대인들의 내적 관심사와 만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평론가로서 행하는 이론적 작업도 구체적인 삶의 고민과 결합되지 않으면 결핍감을 느낀다. 인문학의 객관적 진리가 나의 주관적 체험을 관통하는 순간에 관심이 많다. 내 고민이 자신의 고민과 관련 있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내 책을 읽는 듯하다.”
 
어려운 얘기를 쉽게 쓴다는 평인데.
“내가 추구하고 또 선호하는 표현은 ‘정확하게 쓴다’인데, 그걸 잘 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하게만 쓰면 글이 이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 스킬이 부족하거나 혹은 다른 욕망이 가세해서 전달이 어려워지는 경우들이 있지 않은가 한다.”
 
자신만의 글쓰기 요령이 있다면.
“가독성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짧게 끊어 쓰기만 하면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숙련성이랄까, 그런 것은 분명히 있을 텐데, 결국 독서로 습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글의 장점은 써놓고 고칠 수 있다는 건데 제1 독자가 중요하다. 배우자도 문학평론을 하는데, 아내가 먼저 읽고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있다고 하면 내가 잘못 쓴 것이라 생각하고 고친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독자가 많다.
“글도 교환의 산물이다. 잘 쓰려면 무언가 주어야 하는데 줄 수 있는 건 결국 시간뿐이다. 일주일 고민한 글에서는 일주일만큼의 깊이가 나온다.”
 
독서도 비슷한가.
“그렇다. 평론을 쓰기 위해 어떤 작품을 읽었는데, 다른 사람이 읽어낸 것과 다른 생각이 안 떠오른다면 덜 읽은 것이다. 그럼 나올 때까지 읽는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지난해 누적판매 100만 부를 넘겼다. 각종 통계와 기사를 많이 인용해 기존 소설 문법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기존 작품과 비평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 가치가 있다. ‘문학성’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다급한 시의성과 무관한가, 성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것인가, 등을 자문하게 하는 기회가 됐다. 근래의 변화들이 역편향 현상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보다는 기왕의 편향에 대해 더 돌아봐야 할 때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 등 외국 작가의 한국소설 점령 현상이 심하다.
“당연한 일이다. 2018년 흥행순위에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가 여러 편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예술로서의 문학’을 추구하는 한국 작가들의 경쟁 상대는 영화로 치면 ‘어벤져스’가 아니라 ‘팬텀 스레드’일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라 맨부커상 수상작과 경쟁하고 비교돼야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문학’을 추구하는 한국 작가들이 경쟁하면 된다. 각자의 트랙에서 달리는 것이다. 이쪽 작가들도 많이 나와 주면 좋겠는데 저변이 좁다.”
 
문단이 지나치게 예술성을 강조해 한국문학이 왜소해졌다는 비판도 있는데.
“평론가들의 존재 이유가 본래 예술성 옹호 아닌가. 영화평론가들이 ‘신과 함께’가 아니라 ‘죄 많은 소녀’와 ‘소공녀’에 주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품적 가치는 시장에서 온당하게 평가받는다. 한국문학이 상업적으로 왜소해지는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평가의 몫은 한국문학이 예술적으로 왜소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데 있다.”
 
새해 바라는 일이 있다면.
“오래 묵힌 평론집을 낼 예정이다. 목표는 높은데 역량은 부족해 고심이 크다. 우리 출판계에는 훌륭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김승섭·정혜신 선생 같은 분들의 책을 많이 읽고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형철=1976년생.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 편집위원이다. 네 권의 책을 냈고, 아내 신샛별씨도 문학평론가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