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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북송 영화’ 보고 알았다, 계속 되는 재일 코리안 차별

일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고교 무상화 제도 적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조선대학교 학생들.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고교 무상화 제도 적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조선대학교 학생들.

지난해 12월 도쿄 시부야(東京·渋谷)의 극장 ‘유로 스페이스’에선 ‘조선반도(한반도)와 우리’라는 주제의 영화제가 열렸다. 니혼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 학생들이 기획한 것이다. 주말에 가 봤더니 거의 매회 만석일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남북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일본에서도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상영 영화는 대부분 재일 코리안 관련 작품이었다. 재일 코리안이란 일본 식민지배하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출신자들과 그 자손들이다.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인이나 재일 한국인이라고도 하지만 여기서는 국적에 상관없이 재일 코리안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나는 현재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에서 재일 코리안 관련 영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 영화제는 그런 나에게 아주 반가운 이벤트였다. 특히 우라야마 키리오(浦山桐郎) 감독의 ‘큐폴라가 있는 거리(キューポラのある街)’(1962)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전에 DVD로 본 적은 있었지만 스크린으로 이 영화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인공은 중학생 준(ジュン)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73세인 지금도 주연으로 활약 중인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가 연기했다. 이 영화에선 재일 코리안이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준이 심리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는 친구가 재일 코리안이며, 그 계기가 되는 사건이 ‘귀국사업’이다.
 
 
차별 심해 먹고 살기 힘들어 북한행 선택
 
북송선을 타는 재일 코리안들. [중앙포토]

북송선을 타는 재일 코리안들. [중앙포토]

1959~1984년 사이에 약 9만3000명의 재일 코리안이 북한으로 이주한 귀국사업은 한국에서는 ‘북송사업’이라고 불린다. 귀국이라고는 하지만 재일 코리안 대부분은 남한 지역 출신이다. 남북 분단 전에 일본에 건너가서 남한도 북한도 모두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일본에선 재일 코리안에 대한 차별이 심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출신지도 아닌 북한행을 선택했다.
 
‘큐폴라가 있는 거리’가 만들어진 당시는 귀국사업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영화 속에서는 귀국이 기뻐할 일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행이 꼭 행복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차별이 심한 일본보다 더 힘든 생활이 기다렸던 것이다.
 
내가 아는 재일 코리안 중에는 학생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북한으로 이주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겼다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떠나기 전에 북한에 가서 편지를 쓸 때 ‘메릴린 먼로’라고 쓰면 ‘너도 오라’는 뜻이고 ‘가가린’이라고 쓰면 ‘너는 오지 마’라는 뜻이라고 약속을 하고 갔다고 한다. 편지가 검열을 당할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 그가 받은 편지에는 ‘가가린’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고 있다.
 
나는 ‘큐폴라가 있는 거리’의 귀국을 축하하는 묘사가 무책임한 것 같아서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스크린으로 봐서 그런지 주인공들의 표정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재일 코리안 친구 요시에(ヨシエ)가 처음으로 준에게 북한에 이주한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준은 밝은 표정으로 축하한다고 했지만 요시에는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요시에의 어머니는 일본사람인데 아버지와 별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가 북한에 같이 가줄 리가 없기 때문에 북한에 이주한다는 것은 어머니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준은 그런 요시에의 사정에 관심이 없었으며, 단지 자기 아버지가 일을 안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시에가 북한으로 떠나던 날 준은 어떤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표정을 보였다. 몰래 배웅하러 온 어머니를 본 요시에가 울면서 남동생한테 들키기 전에 사라져 달라고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모습이다. 겨우 북한에 간다고 결심한 남동생이 어머니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준은 요시에가 자신하고 차원이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요시에는 준의 어려운 상황을 걱정하며 격려하면서 떠날 정도로 성숙한 친구였다. 자포자기 상태였던 준은 이날을 계기로 씩씩하게 의욕적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신한다.
 
나는 준의 성장에 감동했다. 남의 아픔을 생각하는 것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는 게 감독의 메시지였다. 일본사람으로서 재일 코리안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식민지배라는 역사를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없었던 일처럼 하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과거를 피하면 사람은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가 성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아주 소중한 영화였다.
 
‘조선반도와 우리’라는 주제를 제안한 학생 또한 ‘큐폴라가 있는 거리’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귀국사업은커녕 재일 코리안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 역사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영화 속 준의 충격받은 표정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고 웃는 얼굴로 악수하는 모습을 보며 “‘조선반도와 우리’라는 주제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여기게 됐다”고 한다. 남북 관계가 한반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학생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다.
 
 
재일 한국인 자녀 고교 무상화 제외 논란
 
니혼대학에서 ‘조선반도와 우리’라는 주제로 열린 영화제에서 재일 코리안의 북송에 대해 증언하는 배우 아다치 마사오. [중앙포토]

니혼대학에서 ‘조선반도와 우리’라는 주제로 열린 영화제에서 재일 코리안의 북송에 대해 증언하는 배우 아다치 마사오. [중앙포토]

영화제의 또 하나의 재미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이다. ‘큐폴라가 있는 거리’의 우라야마 감독은 이미 돌아가셔서 안타깝게도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교사형(絞死刑)’에 출연한 배우 아다치 마사오(足立正生)가 게스트로 와서 귀국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아다치는 기타큐슈(北九州) 출신이다. 기타큐슈는 탄광 노동자가 많았던 관계로 재일 코리안도 많았다. “학교에서 운동을 잘하거나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반 정도는 재일 코리안이었다. 그런 학생들이 중학생이 되면 한두 명씩 사라졌다”고 한다. 북한으로 이주한 것이었다. “그 당시 북한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건너가는데 얼마나 괜찮은 나라가 만들어질지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며, 심지어는 “나도 재일 코리안이라고 하고 북한에 가려고 했는데 일본사람이라는 게 들켜서 못 갔다”고 한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때 분위기를 잘 몰랐다. 당시 우라야마 감독이 그렸듯이 귀국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던 것은 아다치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그런데 광복 73년이 지난 지금도 재일 코리안에 관한 문제는 끝난 게 아니다. 특히 재일 코리안 아이들의 일부가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노골적이다. 요즘은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고급학교가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되고 있는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고교 무상화 제도란 공립 고등학교의 수업료는 무상화하고 사립 고등학교는 공립 수업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받는 제도이다. 조선학교들은 일본 전국 5개 재판소에서 지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투쟁 중이다.
 
나는 지난해 4월 무상화 제도 적용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도쿄에서 만났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문부과학성 앞에서 모였다. 대학생 30명과 학부모나 지원자들 20명이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고 “문부과학성은 모든 아이에게 배울 권리를 보장하라” “조선학교 차별 반대” 등을 호소하고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한 여학생을 인터뷰 했다. “주변 재일 코리안 친구 중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조선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고 공립학교로 가는 경우가 많다. 후배들을 위해 이길 때까지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학교’나 ‘60만 번의 트라이’ 등 한국 감독들이 찍은 조선학교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그 여학생은 “한국에서는 재일 코리안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영화를 통해서라도 조선학교나 재일 코리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시면 기쁘겠다”고 했다.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에서도 재일 코리안 자료실을 만들어서 재일 코리안 관련 영화를 모으는 중이다. 영화제에 갔다 온 다음,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연구소에서도 재일 코리안 관련 영화 상영회를 적극적으로 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를 같이 보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만들어서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가 됐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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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