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18)
<71> 7개월 만에 과기처장관 하차
안면도 사용후 핵연료 시설 논의
원자력연구소와 충청남도 양측이
주무부처 과기처도 모르게 진행
90년 11월 대규모 반대 시위 발생
장관실 찾은 대표들에게 설명해도
사태 악화일로…도의적 책임 사임
![1990년 11월 안면도 주민들이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시설 설치안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4/6aec6317-3175-4419-9cf9-5e1e6f5df222.jpg)
1990년 11월 안면도 주민들이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시설 설치안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중앙포토]
더 큰 문제는 일주일 뒤에 터졌다. ‘안면도에 핵 처리 시설이 들어온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지역 주민이 반발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몇몇 주민 대표와 지역 정치인들은 장관실에 찾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현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취급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며, 정부가 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려면 여러 단계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자 주민 대표들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진실한 대화를 하면 풀리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했다. 한 주민 대표는 “장관께서는 꼭 학교 선생님 같아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주민 대표단은 내게 들은 설명을 다른 주민들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며 떠났다. 하지만 이들은 시위대에 의해 격리됐고 사태는 더욱 격렬해졌다.
![1990년 11월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시설 설치안 반대 시위 현장의 모습.[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4/ac94caa3-babd-4386-95fa-91b41a51dd75.jpg)
1990년 11월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시설 설치안 반대 시위 현장의 모습.[중앙포토]
“원자력 주무장관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습니다.”
“정 장관 취임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주무장관이 모르는 사업인 건 맞지만, 국민은 책임지는 정부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이튿날 강 총리가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에서 내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취임 7개월 20일밖에 되지 않은 장관을 물러나게 한 이유는 청와대가 우선 시위부터 진정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성난 군중을 무마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던 셈이다.
![1990년 11월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 시설 설치안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진압에 나선 경찰을 향해 한 주민이 항의하고 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4/e5200ed4-4576-4bd6-8b95-f4992294c251.jpg)
1990년 11월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 시설 설치안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진압에 나선 경찰을 향해 한 주민이 항의하고 있다.[중앙포토]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