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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 열 채 주고 산 청자, 아궁이에서 건진 겸재 화첩

간송 전형필이 1935년 일본인 골동품상에게서 거금 2만원을 주고 사들인 고려 ‘청자상감운학문매병’(13세기). [사진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이 1935년 일본인 골동품상에게서 거금 2만원을 주고 사들인 고려 ‘청자상감운학문매병’(13세기). [사진 간송미술관]

1936년 간송이 1만4580원에 사들인 백자(18세기). [사진 간송미술관]

1936년 간송이 1만4580원에 사들인 백자(18세기). [사진 간송미술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일본 골동계 인사들이 하나같이 군침을 흘리는 매물이 있었다. 이른바 고려청자 ‘천학매병(千鶴梅甁)’. 개성 근교에서 발굴된 이 청자는 골동 거간들의 손을 거쳐 시장에 나왔는데, 가격이 몹시 높았다. 총독부박물관에서도 가격이 너무 높아 손을 대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데 일본 상인들이 큰 충격을 받은 일이 벌어졌다. 이 청자를 나이 서른도 안 된 식민지 청년이 이만원의 대금을 치르고 사들인 것이다. 이 청년이 간송 전형필(1906~1962)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빼어난 안목으로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지켜낸 문화재 수집가이자 보성중고등학교 동성학원 설립자다.
 
당시 이만원은 서울 장안에 쓸 만한 기와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이 청자를 놓친 일본인 아마이케는 간송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그 물건값의 몇 배를 지불하겠소.” 그러자 간송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 천학매병보다 더 좋은 물건을 저한테 가져다주시고 이 매병을 본금에 가져가시지요. 저도 대가는 남만치 치를 용의가 있습니다.” 청자를 절대로 내줄 수 없다는 옹골찬 다짐이었다. 이 청자가 국보 68호, 고려 상감청자의 ‘백미’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1년 뒤인 36년 간송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또 한 번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다. 매물로 나온 조선 도자기의 대표 명품 백자(국보 294호)를 1만4580원이라는 거금을 불러 일본인 거상들을 물리치고 낙찰받은 것이다. 당시 명동 한복판에 자리한 경성미술구락부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매매기관으로, 합법적 문화재 반출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간송에게 이곳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매번 전쟁을 치르는 ‘최전선’이었다. 간송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듬해엔 영국인 수집가 ‘존 개스비’로부터 고려청자 20점(개스비 콜랙숀)을 인수했다. 서울의 기와집 400채를 사들일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간송이 지켜낸 이 청자와 백자, 개스비 콜렉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여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다.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최경란)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함께 여는 전시로, 국보 6점과 보물 8점 등 총 6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간송 전형필. [사진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 [사진 간송미술관]

‘수집 히스토리’에 초점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전시에 나온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가리켜 “고려 상감 청자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 굽까지 내려오는 유려한 곡선, 화려하면서 정교한 문양이 탄성을 자아낸다”며 “요즘 도자 장인들도 고개를 저으며 이를 재현해내기 어려워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귀하기로는 백자(국보 294호)도 마찬가지다. 백 연구실장은 “이 화병은 조선 백자기술의 총 집약체”라며 “다른 백자에서 보기 드문 코발트색 난과 붉은 색, 갈색 꽃의 빼어난 발색을 눈여겨 보라”고 주문했다.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12세기, 국보 ㅈ[270호). [사진 간송미술관]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12세기, 국보 ㅈ[270호). [사진 간송미술관]

청자오리형연적(12세기, 국보 제74호). [사진 간송미술관]

청자오리형연적(12세기, 국보 제74호). [사진 간송미술관]

백자희준, (17세기,1934년 9월 13일 경매 낙찰). [사진 간송미술관]

백자희준, (17세기,1934년 9월 13일 경매 낙찰). [사진 간송미술관]

‘삼일운동 100주년’의 정신을 살린 이번 전시는 수집을 둘러싼 비화를 공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품 하나하나가 일본인 손에 넘어가거나 세상에서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던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친일파 집에서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인『해악전신(海嶽傳神)』도 그중 하나다. 오래전 골동계의 원로이던 장형수가 1933년 남의 집 아궁이 앞에서 이를 극적으로 구해낸 이야기가 아찔하다. 당시 그는 경기도 용인군의 한 친일파 집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밤에 변소에 가다 보니 군불을 때던 머슴이 문서 뭉치를 아궁이에 넣고 있었단다. 그 안에 땔감으로 끼어 있던 책자가 겸재 정선의 화첩이었다. “그 시각에 변소에 가지 않았거나, 한 발짝만 늦었어도 영원히 아궁이에서 사라졌을” 터다. 정선이 금상산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의 명승지를 그린 이 화첩은 후에 간송 손에 들어갔고, 이번 전시에 나왔다.
 
개스비 콜렉션을 인수한 사연도 인상적이다. 고려청자 수집가였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간송은 일본으로 달려가 20점을 인수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충남 공주 일대 땅 만 마지기를 팔고 그 대가로 얻은 ‘우리 보물’이었다.
 
DDP에서의 마지막 전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 1940년 4월 7일 간송이 경매에서 낙찰받은 것이다. [사진 간송미술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 1940년 4월 7일 간송이 경매에서 낙찰받은 것이다. [사진 간송미술관]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하 간송재단)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여는 열 세번째 전시이자 마지막 전시다. 그동안 간송재단은 DDP에 수장고를 마련하고 지난 5년간 서울디자인재단과 협력하며 전시를 이어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1938년에 지어진 서울 성북동 보화각(간송미술관)이 낡고 협소해 그동안 그곳을 떠나 DDP에서 대중적인 전시를 해왔다”며 “앞으로는 다시 성북동으로 돌아가 빠르면 이번 가을, 늦어도 내년 봄부터 관람객을 다시 맞겠다”고 말했다. 최경란 서울디자인재단 대표는 “간송 컬렉션은 간송이 ‘문화보국’ 정신으로 지킨 것들”이라며 “삼일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뜻깊은 전시를 함께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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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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