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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 직접 손으로 만든 거라고? 그건 아니지만…

기자
황지혜 사진 황지혜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7)
“수제 맥주는 정말 손으로 만든 것인가요. 다 공장제 아닌가요. 왜 ‘수제’라고 쓰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니 세상에 발로 만드는 음식이 있나요. 저도 수제라는 단어가 그동안 거슬렸어요.”

최근 내가 운영하는 비플랫 페이스북의 수제 맥주 관련 콘텐츠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맥주 양조장의 모습. 수제 맥주라고 해서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맥주는 엄연히 양조시설을 활용해 만든다. 수제 맥주 양조장 대부분이 자동화 설비를 다 갖추지 못해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수제라고 하기엔 영 어색하다. [사진 pixabay]

맥주 양조장의 모습. 수제 맥주라고 해서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맥주는 엄연히 양조시설을 활용해 만든다. 수제 맥주 양조장 대부분이 자동화 설비를 다 갖추지 못해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수제라고 하기엔 영 어색하다. [사진 pixabay]

 
맞는 말이다. 맥주를 수공예품처럼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맥주는 엄연히 당화조·발효조 등으로 구성된 양조시설을 활용해 만든다. 수제 맥주 양조장 대부분이 대형 맥주회사처럼 자동화 설비를 다 갖추지 못해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것을 수제라고 하기엔 영 어색하다.
 
크래프트 맥주와 수제 맥주
수제 맥주라는 말은 미국에서 유래됐다. 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밀러, 버드와이저 등 대기업과 차별화된 소규모 양조장이 전국적으로 생겨났다. 소규모 양조장들로 구성된 미국 양조자협회(Brewers Association, BA)는 자신이 만든 맥주를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맥주 양조장, 도소매상, 개인 등을 포함해 1만 명가량의 멤버가 가입된 BA는 양조장(크래프트 브루어, Craft Brewer)을 소규모이면서 자본 독립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먼저 크래프트 브루어는 연간 맥주 생산량이 600만 배럴(95만3400 Kl) 이하여야 한다.
 
600만 배럴은 2017년 국내 전체 맥주 출고량(182만3899Kl)의 절반 정도다. 국내에서 크래프트 브루어 기준 이상을 생산하는 업체(2017년 기준)는 오비맥주(133만5894Kl)뿐일 정도로 600만 배럴은 큰 규모다.
 
미국 양조자협회(BA) 홈페이지. [출처 미국 양조자협회(BA) 홈페이지 캡처]

미국 양조자협회(BA) 홈페이지. [출처 미국 양조자협회(BA) 홈페이지 캡처]

 
크래프트 브루어는 연간 600만 배럴 이하를 생산하면서 전체 지분 중 외부 자본의 비율이 25% 이하라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대기업이나 벤처캐피털 등 외부 자본의 지분이 25%가 넘어가면 해당 양조장의 맥주는 BA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집계에서 빠지게 된다.
 
실제 미국의 대기업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다수 인수하면서 BA가 내놓는 크래프트 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매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대기업에 인수당한 양조장들이 생산한 맥주가 크래프트 맥주 통계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BA에서는 외부 자본이 들어올 경우 크래프트 맥주의 철학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 맥주와 마찬가지로 비용 효율을 고려해 대규모 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BA는 ‘크래프트 브루어는 혁신적인 맥주를 지향해야 하고 자선활동·기부·자원봉사 등으로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맥주 양조와 경영상 독립을 통해 진실함을 지켜야 한다’는 등의 크래프트 브루어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즉 크래프트 브루어는 맥주를 만들고 다루고 서비스하는 전 과정에 대한 철학이다.
 
국내에는 2010년 이후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외국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펍 ‘크래프트 웍스’와 ‘맥파이’가 문을 열었고, 국내에 처음으로 미국의 인디아페일에일(IPA)이 정식 수입됐다. 이때 크래프트가 사전적 의미인 ‘수제’ ‘공예’ ‘수공예’로 번역되면서 국내에서 소규모 양조장 맥주가 수제 맥주로 통용된 것이다.
 
수제 맥주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이 있고 크래프트 맥주에 담긴 철학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에 2016년 맥주 전문잡지 비어 포스트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맥주 업계 전문가들이 수제 맥주를 다른 말로 바꿔 써야 한다며 논의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국내에 수제 맥주라는 말이 널리 자리매김한 마당에 굳이 바꿔 불러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소규모 양조장들의 단체인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는 2017년 한국수제 맥주협회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 [사진 황지혜]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 [사진 황지혜]

 
애초 이름 자체에 철학이 응집돼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을 두고 이름에 차차 이야기를 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제 맥주를 다른 표현으로 인위적으로 대체하기보다는 수제 맥주라는 말에 한국식 소규모 맥주의 철학이 담기기를 바란다. 고집스럽게 맥주의 품질을 추구하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양조장과 맥주를 키우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맥주가 수제 맥주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수제 맥주 철학 담긴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최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 이웃을 선정해 ‘우리 동네 히어로’라는 헌정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수제 맥주라는 말에도 조금씩 의미가 쌓여가고 있다. 언젠가 대기업이 아무리 다양하고 맛있는 맥주를 내놓더라도 그것을 수제 맥주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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