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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새해 덕담으로 “복 많이 받으세요”가 쏟아지는 가운데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말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양갈래 머리 소녀가 절을 하며 해맑게 외치는 모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줄임말로 ‘적일많버’라고도 한단다. 2002년 모 카드사의 광고문구로 히트친 “부~자 되세요” 같은 주문이다.
 
똑같은 문구를 지난해 가을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봤다. 판교 벤처밸리에서 일하는 ‘판교지엥’들의 일과 일상을 재구성한 단편소설이다. 정보기술(IT)업계 출신의 1986년생 장류진 작가가 포착한 이들의 삶은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는 것이다. 상사의 영어 닉네임엔 ‘~께서’를 붙이는 역설과 적립 포인트로 받는 임금 같은 모멸감도 ‘월급날’ 덕분에 견딘다. 서로에게 건네는 최고의 축원도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다.
 
한국인들은 많이 일한다.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2052시간, 2016년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미국(1787시간)은 물론 과로사(かろうし)라는 말이 유행했던 일본(1724시간)도 앞지른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배경이다.
 
그런데 다 똑같이 오래 일하는 건 아니다. 1998년 이후 소득과 노동시간 관계를 분석하면 시간당 임금이 높을수록 표준 노동을 하고, 중위임금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자는 초장시간 노동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해 유행한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이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의 전유물이라는 비판도 이 때문에 나왔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덕담은 이런 양극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덜 일한다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진 않는다. 적게 일하면 적게 벌기 때문이다. 많이 버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시간당 임금을 많이 받거나 내가 놀아도 돈이 돈을 버는 것. 전자는 소위 ‘선망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고 후자는 불로소득에 대한 열망이다. 둘 다 노동을 최소화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부자 되세요’가 마법을 바라는 주문이듯, ‘적일많버’도 대부분에겐 불가능하기에 건네는 덕담이다. 산업역군, 일의 보람, 천직 같은 단어로 자부심을 북돋던 평생직장과 성장시대는 끝났다. 촘촘히 계층화된 노동시장에서 열정페이와 갑질에 이골이 난, 일의 기쁨보다 슬픔을 먼저 깨우친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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