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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김정은의 체스터필드 의자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는 달팽이관을 진동시킬 뿐 좀처럼 대뇌로 나아가지 못했다. 더 압도적이었던 시각정보 때문이다. 소파였다. 두툼한 등받이를 중간중간 버튼으로 박음질한, 팔걸이와 등받이 높이가 같은 의자 말이다. 바로 체스터필드 스타일이다.
 
둘은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왜 그런가 싶을 터인데, 역사적 맥락이 있다. 체스터필드 의자는 18세기 영국의 4대 체스터필드 백작(필립 스탠호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대 내로라하는 신사였던 그는 앉을 때마다 옷에 주름이 잡히는 걸 저어해 새로운 가구를 주문했다고 한다. 체스터필드의 원형(原型)이 만들어진 계기였다. 여기엔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구전도 있다. 임종 무렵 지인이 찾아오자 집사에게 “의자를 내드려라(Give Mr Dayrolles a chair)”고 했다는데 집사가 지시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 의자를 줬다는 게다. 이후 의자가 런던 상류층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체스터필드가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이 된 건 1800년대 중반이다. 디자인의 개량이 이뤄졌고 상류층이 대거 샀다. 지배계층 남성 전용 클럽들도 완비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엔 대영제국의 진출 경로를 따라 체스터필드도 퍼져나갔다.
 
김정은 2019년 신년사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사진 YTN]체스터필드 백작[사진 YTN 캡처]
폐쇄적인 반제의 공산국가에서 그것도 최고지도자의 내밀한 공간에서 체스터필드를 만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유다. 여기에 벽난로 선반에 놓인 시계, 귀족 선조들처럼 그려진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까지 곁들여졌다. 대단히 귀족적 인테리어였다. 김 위원장은 양복에 넥타이 차림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19세기 영국 귀족 서재의 벽난로 앞에서 나누던 대화의 김정은식 버전”(사이먼 데니어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이란 비유까지 나왔겠는가.
 
스타일이 메시지이긴 했다. 정상적인 지도자, 더 나아가 서구 유력 가문(실제론 왕조) 출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처럼 보이려 했다. 대단한 노력이다. 하지만 메시지의 본질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핵 시험·사용·전파를 안 하겠다고 했으나 기왕의 핵 보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시금 “비핵화”를 말했으나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위협이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게끔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거짓말을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것”(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에 충실했던 게다.
 
어쩌면 30여 분간 신년사 연설 동안 가장 진실 됐던 건 ‘벽난로’였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모양이 그랬을 뿐 불을 지필 수 없는 구조였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처럼 말이다.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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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