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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한·일 관계 돌파구는?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한·일 관계는 최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달리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에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에 대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한·일 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의 분석대로, 한국은 이번 판결을 양국 관계의 일부분으로 보는 반면 일본은 두 나라 사이의 전부가 걸린 것으로 본다. 양국 간 시각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번 판결이 한·일 관계의 기초가 된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한·일 국력 격차 크게 좁혀지면서
중국에도 역전당한 일본 피해의식
미·중 대립기에 한·일 갈등 부적절
공통의 이익을 키울 지혜 모색해야

최근 터진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소동은 한·일 관계에서 계속되는 일련의 마찰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2015년 12·28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의 해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지난 10월 한국인들이 ‘일본 침략’의 상징이라 여기는 욱일기 게양 논란에 따른 일본 해상 자위대의 제주 관함식 불참, 이달 초 한국 해군의 독도 해상 훈련 등을 둘러싼 날 선 대립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연이어 터지는 한·일 간 외교 마찰의 근원적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한·일 간 국력의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이다. 심히 염려되는 부분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된 1965년의 한·일 간 국력 격차(GDP 기준 약 1 대 100)는 현재 극적으로 좁혀지고(약 1 대 2.5로 축소)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경제적 열등감에서 벗어난 지금이야말로 정의에 근거해 그동안 억눌려 왔던 것을 당당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2010년 경제 규모 면에서 아시아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준 일본은 심리적으로 다급해지고 ‘피해자 의식’이 나타났다. 급기야 한국이 바짝 추월하자 한국인들의 일제 침략 피해자 주장을 이전처럼 세심하게 헤아려 반추할 여유가 사라졌다. 역사에서 피해자·가해자라는 한·일 관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동아시아 판도 변화와 맞물려 일본인들의 의식 변화에 한국이 둔감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시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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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의 변화다. 최근 한국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계기로 한국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산업화 세력이 물러나고, 그 협정에 격렬히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이 한국 정부의 중추를 담당하게 되면서 변화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탈냉전 이후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국제 환경에 대한 인식의 괴리로 인해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점점 악화해왔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미·중 관계를 바라보는 한·일 인식의 괴리다. 미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고 북한에 큰 영향력을 지닌 대국이다. 따라서 한·중 관계를 잘 유지해 중국을 ‘내 편’으로 유지하는 게 한국에 중요하다. 한국에는 대미 관계와 대중 관계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반면 일본은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냉전 종식으로 중국이 대국화함에 따라 일본이 단독으로 중국에 대응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미·일 동맹 강화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일본은 동북아 지역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양호한 미·중 관계에서 이익을 찾지만, 일본은 미·중의 긴장 관계에서 이익을 찾는다. 그만큼 한·일의 괴리가 두드러진다.
 
셋째, 아베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상반된다. 아베 총리는 일본 최대 보수정치가이자 ‘역사 수정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역사 인식 때문에 아베는 한국인에게 가장 비판받는 일본 정치가일 것이다. 반면 일본 언론은 문재인 정부를 ‘좌파 정권’으로 치부하고 자꾸 비판적으로 보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미국·중국을 향한 외교에 중점을 두면서 일본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 ‘일본 패싱(Passing·배제) 론’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경쟁 관계인 중·일이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 트럼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미·중 무역 전쟁이 낳은 산물이다. 한·일 양국은 미·중 무역 전쟁이 가속되는 엄중한 현실을 인식하고 서로를 ‘패싱’하는 소모적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양국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2019년에도 갈등 요소가 있겠지만 한·일 관계가 더는 악화하지 않도록 하고, 정상 궤도로 복원하려는 노력과 지혜가 절실하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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