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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주한미군 철수는 자해행위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대한민국의 운명을 혼돈에서 구할 수 있다. 2만8500명의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천기(天機)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친 언어로 누설되고 말았다. 그는 6월 1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올해 초 “주한미군 주둔에 35억 달러나 쓸 이유가 있느냐”며 철수를 주장했다.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반대한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번에는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에 반대하다 경질됐다. 트럼프는 “미국은 세계의 ‘호구’가 아니다”라고 소리친다.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9600억원을 50% 올리고, 협정 유효기간을 현재의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자고 한다. 매년 인상된 액수를 받아내겠다는 뜻이다. 이게 싫다면 철수시킬 것이다. 미국 의회는 주한미군을 최소한 2만2000명으로 유지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을 실증한다. 한·미 동맹은 1953년 전쟁 중인 약소국 이승만 대통령이 초강대국인 미국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쟁취했다. 북한의 침략을 저지해야 하는 한국에는 미국이 사활적 파트너였다. 그러나 일본이 더 중요했던 미국으로선 한국이 애매한 존재였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비대칭 동맹이며 미국이 비자발적으로 맺었다는 태생적 한계는 동맹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내 발목을 잡았다. 트럼프는 감세정책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의 악몽이 떠오른다.  
 
이하경칼럼

이하경칼럼

주한미군의 결정적인 용도는 북한의 오판을 막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한 억지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라는 세계 4강국의 전략적 이해가 교차하는 운명적인 지역이다. 영토적 야심이 없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한다면 다른 나라의 군사적 움직임과 군비 증강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막강한 화력과 정보력을 갖춘 미군의 주둔은 안보와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필리핀에선 1991년 격렬한 반미 시위로 미군이 철수했다. 그러자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빠져나가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결국 2001년 말 미군의 재주둔을 요청했다. 폴란드는 얼마 전 20억 달러를 들여 기지를 지어주겠다면서 미군 영구주둔을 요청했다. 팽창하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견제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한국은 핵과 장사정포로 무장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불과 48㎞다. 외국인들은 주한미군을 믿고 투자한다. 북핵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트럼프는 머지않아 주한미군이 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올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모두 나서 백악관과 행정부, 의회와 싱크탱크를 설득해야 한다. 북한도 미 상원 외교위원회 핵심 전문위원까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한반도는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요충지다. 일본을 축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의 무기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나라다. 해외 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인 평택은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의 코앞에서 심장을 겨냥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의 안보 지원 속에 빛나는 경제적 성취를 이뤘고, 미국의 자존심을 살려준 특별한 나라다. 돈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한다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한반도가 공산권의 영향력에 들어가면 일본과 대만도 안심할 수 없다. 아베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는 데 대한 의견을 구하자 “동아시아 군사 균형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일본은 핵무장을 고려할 것이다.
 
미국 NBC방송은 전문가를 인용해 2년 뒤 북한이 100개의 핵탄두를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북한에 맞선 우리에게 힘이 돼주는 건 주한미군과 미국의 핵우산이다. 그런데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 필요한 나라가 돼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모두에 자해행위다. 우리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소모전을 벌일 때가 아니다. 미국과 확실하게 북핵 공조태세를 갖춰야 한다. 중재자·촉진자가 아닌 당사자가 돼서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촉구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트럼프의 마음을 얻고,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을 지키고 평화체제 구축의 동력도 살려나갈 수 있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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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