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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재미’의 미학…엄숙주의 벗은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진 쇼노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진 쇼노트]

단순한 재미로 승부했다. 심오한 자아 성찰도, 권선징악 류의 교훈도 없다. 뭉클한 가족애도, 지고지순한 짝사랑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유쾌하게 웃고 즐기는 볼거리로 무대에 올라왔다. 연말 공연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과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얘기다. 지난달 개막해 각각 95%, 80%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지킬 앤 하이드’), 자유와 죽음 사이의 비극(‘엘리자벳’) 등 형이상학적 주제를 내세운 작품들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국내 공연계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두 작품 모두 토니상ㆍ올리비에상 등 영미권의 권위 있는 공연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들이다.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진 쇼노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진 쇼노트]

‘젠틀맨스 …’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가난한 주인공 몬티 나바로는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몬티 나바로가 막대한 재산과 백작이란 지위를 상속받기 위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들을 제거하는 ‘연쇄 살인’ 과정을 따라간다. 바람에 날아가 죽고, 얼음구멍에 빠져 죽고, 벌에 쏘여 죽고…. 사람이 죽는 일이 이토록 흥미진진해도 될까 싶을 만큼 작품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한 명의 배우가 1인 9역으로 다이스퀴스 가문 아홉 사람을 연기하는 설정도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아무런 메시지 없이 감동과 여운은 오직 웃음으로만 남지만, 관객들은 “완벽한 공연” “행복을 만끽했다”며 호평 일색이다 (인터파크 관객 평점 9.6점). 공연은 다음달 27일까지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사진 신시컴퍼니]

다음달 5일까지 공연하는 ‘더 플레이 …’은 전형적인 슬랩스틱 코미디다. 작품의 외형은 한 대학 드라마 연구회가 미스터리 연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 사건’을 공연하는 형식의 극중극이지만, 중요한 건 살인 사건이 아니다. 공연 도중 벽에서 소품이 떨어지고, 배우가 문에 부딪혀 기절하고, 급기야 무대 세트가 내려앉는 엉망진창 대소동의 과정을 보여준다. 
2012년 영국 런던 외곽의 공연장 올드 레드 라이언 시어터&펍에서 코미디 단막극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입소문에 힘입어 2014년 웨스트엔드에 진출했다. 지금까지 미국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세계 37개국 무대에 올라 200만 명 넘는 관객들을 만났다.  
 
두 작품의 선전을 두고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내 공연계가 철학적ㆍ미학적 깊이를 강조하는 계몽주의적 사고, 고급문화ㆍ대중문화를 구분하는 고루한 엄숙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가볍게 즐기는 대중적 오락으로서의 공연 콘텐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원 교수는 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공연장에서 구현해낸 무대 기술, 한국 관객 정서에 맞는 번역 등도 주요 성공 요인”이라며 “이는 국내 공연계가 얼마나 성숙하고 발전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사진 신시컴퍼니]

두 작품 모두 정상급 제작진ㆍ출연진이 참가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유연석ㆍ한지상ㆍ오만석ㆍ이규형ㆍ김동완 등이 출연하는 ‘젠틀맨스 …’의 무대 디자인은 뮤지컬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을 만든 오필영이 맡았다.  ‘더 플레이 …’의 한국 공연은 뮤지컬 ‘맘마미마’ ‘시카고’ ‘마틸다’ 등을 만든 신시컴퍼니가 오리지널 연출과 무대를 그대로 구현하는 ‘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했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김호산ㆍ선재 등 11명의 배우는 5주 동안 실제 무대 세트를 연습실에 설치하고 배우와 배우 사이, 배우와 무대 사이의 코미디 호흡을 맞췄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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