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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원 그림 찢더니 집값 500배 올렸다…뱅크시 역설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사람' [사진 뱅크시 인스타그램]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사람' [사진 뱅크시 인스타그램]

 
그는 산타처럼 당신이 잠든 사이에 찾아옵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지난 18일 아침, 영국 웨일스의 남부 철강도시 포트 탤벗의 주민들은 벽에 그려진 그림 하나를 선물로 받았죠. 
 
한 철강노동자의 집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속에는 한 소년이 하늘 향해 팔을 벌려 흩날리는 눈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너를 돌면 불이 붙은 통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가 보입니다. 소년이 눈처럼 반긴 것은 사실 불에 탄 재였던 거죠.   
지난 18일 영국 웨일스의 남부 철강도시 포트 탤벗의 담벼락에 그려진 뱅크시의 그림. [AP=연합뉴스]

지난 18일 영국 웨일스의 남부 철강도시 포트 탤벗의 담벼락에 그려진 뱅크시의 그림. [AP=연합뉴스]

포트 탤벗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영국에서 가장 오염된 곳’이라고 발표했을 정도로 극심한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엔 철강 공장에서 발생한 검은 먼지가 마을의 집과 자동차를 뒤덮어 뉴스가 되기도 했죠. 한없이 서정적으로 보이는 벽화를 통해 이 지역의 심각한 환경 문제를 고발한 사람은 바로 세계적인 그래피티(graffiti) 화가 뱅크시(Banksy)였습니다. 뱅크시의 작품임이 알려지면서 수천 명의 인파가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결국 지역위원회가 나서 그림 주변에 철제 펜스를 설치해야했습니다.   
#얼굴 없는 거리의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당하다
뱅크시, 그의 정확한 신상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영국 거리 곳곳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한 인상적인 그림을 남기며 알려졌는데, 그래피티가 기본적으로 다른 이의 재산을 훼손하는 범죄 행위로 규정되는 탓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 인적 사항을 철저히 숨겨야 했습니다. 
 
이 얼굴 없는 화가는 2018년 미술 역사상 초유의 도발적인 이벤트를 벌여 더 유명해졌습니다. 지난 10월 5일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104만 2000파운드(약 14억 9000만원)에 팔린 자신의 그림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를 낙찰 직후 액자에 설치해 둔 장치로 갈갈이 찢어버린 거죠.
지난 10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낙찰 직후 내장된 분쇄기에 의해 찢어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낙찰 직후 내장된 분쇄기에 의해 찢어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뱅크시는 사건 하루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액자에 분쇄기를 설치하는 동영상을 올려 자신이 이 소동을 직접 기획했음을 밝혔습니다. 심지어 그림 전체를 파쇄하려 여러 번 연습까지 했는데, 당일 장치에 문제가 생겨 절반밖에 잘리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행위의 이유를 간결히 적었습니다. “파괴의 욕구는 창조의 욕구이기도 하다(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피카소.” 
 
그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파괴한 이유는 아마 이런 것일 테죠. ‘돈 있는 사람들끼리 경쟁해 미술품의 가치를 올리는 경매라는 행위, 나는 반댈세!’ 길거리 화가에서 시작해 설치미술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뱅크시는 늘 이런 예측 못한 사건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요. 이에 대한 당혹감과 경의를 표현하는 말로 ‘뱅크시당하다(Banksy-ed)’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경매가 끝난 후 소더비의 수석 디렉터 앨릭스 크란크칙도 말했죠. “음. 우리가 뱅크시당했군요(We’ve been Banksy-ed).”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에 얼굴을 가리고 나온 뱅크시. [사진 배급사 조제]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에 얼굴을 가리고 나온 뱅크시. [사진 배급사 조제]

2008년 최초로 뱅크시와 인터뷰를 한 가디언지에 따르면 뱅크시는 1974년 영국 남부 브리스톨 태생의 백인 남성입니다. 본명이 로버트 뱅크스라고 밝혔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열 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브리스톨 지역의 그래피티 집단 멤버로 ‘프리핸드 그래피티’(스프레이로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를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체포를 당하면서 그는 짧은 시간에,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궁리하다 ‘스텐실 그래피티’를 시작했다고 하죠. 스텐실이란 종이 등에 그림을 그려 구멍을 낸 후,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완성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정교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스텐실 그래피티는 금세 알려졌고, 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런던과 브리스톨에서 주목받는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됐습니다. 
 
당시 유럽에서의 그래피티는 이미 60~80년대의 에너지를 잃고 거리를 더럽히는 아마추어들의 일탈행위로 취급 받고 있었는데요. 의미 없는 그림에 자포자기의 낙서를 남기는 기존 화가들과 달리, 뱅크시는 사회 이슈의 중심으로 들어가 자신의 생각을 폭발력 있게 전하는 도구로 그래피티를 이용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그려진 장소는 경찰서, 관청, 난민 쉼터 등이었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반전(反戰), 반자본, 반권위주의, 반소비주의 등입니다. 그의 그림엔 비판 정신이 생생하지만, 동시에 허를 찌르는 위트와 은유, 휴머니즘이 넘칩니다. 
 
2005년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그림으로 거대한 구멍을 뚫어버렸죠. 지난해에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도버항의 한 건물 벽에 유럽연합(EU) 깃발에 있는 별 12개 중 1개를 깨부수는 사람의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쇼핑 카트를 미는 원시인 #경악의 놀이공원
사람들의 위선에 ‘빅엿’을 날리는 그의 시도 중엔 이런 것이 있죠. 2005년 영국 대영박물관과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 들어가 자신이 대충 그린 그림을 몰래 걸어 놓았습니다. 대영박물관에는 고대 석조미술 사이로 쇼핑 카트를 밀고 있는 원시인을 그린 돌을 놓아두었는데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이 돌이 이상하단 걸 눈치챈 사람은 없었죠. 작품은 제대로 보지 않으면서, 그저 감정적 허영을 위해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을 조롱한 겁니다.
2005년 뱅크시가 대영박물관에 몰래 전시한 작품. [AP=연합뉴스]

2005년 뱅크시가 대영박물관에 몰래 전시한 작품. [AP=연합뉴스]

2013년에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 노점에서 자신의 그림 25점을 한 점 당 60달러(약 6만 7000원)에 판매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들이 뱅크시의 ‘진품’일 지는 꿈에도 몰랐고, 겨우 7점이 팔려나갔죠. BBC에 따르면 실제론 한 점 당 3만1000달러(약 3478만원)의 가치였다고 하는데요. 이 그림을 산 사람들은 뜻밖의 횡재를 한 거죠.
 
2015년 만든 ‘디즈멀랜드(Dismaland)’는 더 충격적입니다. 영국 휴양지인 웨스턴 슈퍼메어 해안에 한 달만 개장했던 이 놀이공원은 ‘디즈니랜드’의 악몽 버전이었죠. ‘꿈과 환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과 고통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는데요. 
 
입구에 들어서면 무너져 가는 으스스한 신데델라의 성이 등장하고요, 사고로 뒤집힌 호박 마차에서 튕겨 나온 신데렐라가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이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패러디한 작품이죠). 범퍼카에는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고, 신밧드가 있어야 할 보트에는 슬픈 얼굴의 난민들이 타고 있는 식이었습니다. 
'디즈멀랜드'에 설치된 뱅크시의 작품. 새에게 습격당하는 사람을 형상화했다. [AP=연합뉴스]

'디즈멀랜드'에 설치된 뱅크시의 작품. 새에게 습격당하는 사람을 형상화했다. [AP=연합뉴스]

이곳에 놓인 놀이기구들은 모두 뱅크시와 데미언 허스트 등 17개국의 유명 작가 50명이 만든 설치미술 작품이었습니다.  
 
#뱅크시를 찾아라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
이렇게 종횡무진 활약하는 예술가가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긴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의 숨가쁜 행보를 봤을 때 뱅크시는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작가 집단’이라는 설도 있죠. 
 
현재로서 뱅크시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두 명으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2008년 영국 데일리메일은 “브리스톨 출신의 거리예술가 로빈 거닝햄(45)이 뱅크시다!”라는 보도를 합니다. 런던 퀸 메리 대학 범죄학자들이 연쇄 범죄자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거닝햄의 이동 경로와 뱅크시의 작품 위치가 상당 부분 겹쳤다는 거죠. 또 하나는 브리스톨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닉 밴드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52)가 뱅크시라는 설입니다. 델 나자는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We are all Banksy)!”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죠.
뱅크시로 추정되는 브리스톨 출신 예술가 로빈 거닝햄. [사진 데일리메일 캡처]

뱅크시로 추정되는 브리스톨 출신 예술가 로빈 거닝햄. [사진 데일리메일 캡처]

뱅크시로 추정되는 일렉트로닉 밴드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 [사진 위키피디아]

뱅크시로 추정되는 일렉트로닉 밴드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 [사진 위키피디아]

#쓰레기통의 사랑 #500배 오른 집값
 
뱅크시는 돈으로 환산 되는 예술을 비판하기 위해 ‘사건’을 벌이지만, 그럴수록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올라갑니다. 영국 노퍽 지역 뱅크시의 그림으로 뒤덮인 이동 주택은 구입 당시보다 500배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고 합니다. 10월 소더비에서 찢어진 그림 역시, 소동 덕분에 가치가 더욱 치솟을 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습니다. 찢어진 그림은 ‘쓰레기통 속의 사랑(Love is in the bin)’이라는 새 작품명을 얻었고, 낙찰 받은 여성은 훼손된 그림을 그대로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쇼핑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풍자한 뱅크시의 작품. [사진 뱅크시 인스타그램]

쇼핑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풍자한 뱅크시의 작품. [사진 뱅크시 인스타그램]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는 이들에게 “쓰레기를 사는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독설을 퍼붓는 뱅크시와 그럴수록 그의 작품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 뱅크시의 저항은 결국 자본의 힘에 패배하고 만 것일까요. 아니면 일부의 비판처럼 뱅크시란 인물은 유행에 민감한 힙스터(hipster)들의 허영심을 교묘하게 자극해 돈을 긁어모으는 위선자에 불과한 걸까요. 
 
분명한 건 누구도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시대를 고발하는 그의 이벤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고 있다는 겁니다. 2019년엔 누가 또 어떤 방식으로 ‘뱅크시 당할’ 지, 기대됩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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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 그의 정체를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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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 지난 10월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 직후 찢겨나간 뱅크시 작품의 제목은?

정답 : 2번 풍선과 소녀 ( 약 15억원에 낙찰된 이 그림의 제목은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입니다. )

Q2 : 뱅크시가 2005년 대영박물관에 몰래 갖다 놓은 돌에 그려진 그림은?

정답 : 3번 쇼핑카트를 미는 원시인 ( 이 작품은 대영박물관의 로마관 석조 미술품들 사이에서 발견됐습니다. )

Q3 : 2015년 뱅크시가 '디즈니랜드'의 악몽 버전으로 만든 놀이공원의 이름은?

정답 : 4번 디즈멀랜드 ( 디즈멀랜드(Dismaland)는 '음울한' 이라는 뜻의 'Dismal'과 'Disney land'의 합성어입니다. )

Q4 : '진짜 뱅크시'로 거론되자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은?

정답 : 2번 밴드 ‘매시브 어택’의 로버트 델 나자 ( 로버트 델 나자는 브리스톨 출신의 뮤지션인 동시에 그래피티 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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