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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통해 번진 ‘노란 조끼’ 쉽게 뭉쳤지만 중심을 잃다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이곳 저곳에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을 본다. 그것이 어떤 대변화를 나타내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져오는 기제(機制)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말은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삶의 테두리가 되는 여러 체제-사회, 정치 제도 그리고 삶의 기본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느낌은 여러 작은 증상들의 집적에서 온다.
 
사람이 삶을 꾸려 나가는 데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여러 잔일을 보살피는 일이 있어야 하지만, 그에 더하여 삶을 테두리 짓고 있는 여러 틀의 안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틀은 물질적 생물학적인 것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것이기도 한데, 정치적인 차원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가 거기에 크게 작용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삶의 바탕으로서의 평화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관계의 안정 또한 우리의 삶의 중요한 테두리가 된다. 이러한 보다 큰 삶의 테두리는 현실이면서, 이념이나 개념에 의하여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의 힘이 약화된 것이 오늘의 실상의 한 측면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큰 뉴스의 하나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사표를 제출한 사건이다. 그의 사임 결정은 대통령과의 정책 판단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주둔군의 수를 줄이겠다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매티스는 대통령의 이러한 결정에 동조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의 판단으로는 시리아의 내전에 관여하고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동의 없이, 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미국의 동맹 관계를 약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토를 약화시키고, 러시아와 중국의 세계적 진출을 방관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매티스는 이러한 의견을 발표하였다.
 
 
국제 관계도 이념보다 실리가 우선
 
이러한 국제관계의 이해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느 쪽이 옳든지 간에, 매티스 장관의 견해는, 국가이든 개인이든, 타자와의 관계를 존중하는 문명된 행동 양식을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것은, 국가간의 관계를 동맹이나 이념의 틀 안에서 파악하는 전통적 사고 속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냉전시대의 국제관계의 이해 속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여기에 대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간의 관계에 대한 접근 방법은 동맹이나 연합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협상이다. 이것은 미국의 많은 언론에서 그 조야(粗野)함으로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국계로서 예일 대학 법학대학원장을 지낸 고홍주 교수도 최근의 그의 저서에서 이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접근 방법이 북미 관계에서 냉전 이데올로기를 넘는 거래, 즉 유화(宥和)와 협상을 포함하는 접근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이념 없는 행동주의가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전략적 허수(虛數)를 포함하면서도 일정한 정치적 이상을 내포하는 정치 이념의 약화가 오늘의 시대의 특징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동맹, 연대, 유대 등은 전략과 함께 그런대로 이상을 함축한다. 실질적으로 별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는 국제연합이 그러한 이상을 시사한다. 유럽연합(EU)과 같은 것은 그보다는 더 실질적인 국가 연합이다. 수 백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반복해온 유럽 여러 나라의 역사로 보아 이것은 특히 커다란 발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 시점에서는 그러한 이념적 구성이 약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브렉시트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된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바탕에 있는 것은, 오래 동안 유럽 대륙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해 온 영국의 역사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에서 영국이 EU 시장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은 쉬울 수가 없다. 유럽경제공동체(EC)에서 시작한 유럽 국가와의 유대 관계는 영국 현실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 중에도 영국의 영토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와 브렉시트 이후에도 EU에 남아 있을 아일랜드와의 국경선에 국경 경비소를 설치하는 것은 극히 복잡한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한다.
 
 
유류세 인상이 빈부 격차 문제로 번져
 
이러한 문제들에 추가하여, 주의하게 되는 것은 EU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협상 결과가 간단히 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충분히 강한 것이 되지 못하여, 메이 정부는 자신을 가지고 브렉시트의 절차를 추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여기에서 느끼는 것은, 국민이 정부 결정에 간단히 승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권력 주체로서의 국가의 의미가 손상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가 권력은 하나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국민을 단합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정세에 대한 최근의 보도에서 주목을 끌었던 것은 프랑스의 ‘노란 조끼’ 데모이다. 그것을 촉발한 것은 정부에서 디젤유 세금을 올린 것이다. 약간의 세금 인상이 어떻게 20만 명 이상을 동원하게 된 데모를 유발했는가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유가 인상은 더 많은 불만의 표현에 촉발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젤유는 당초에 환경 친화적인 것이라고 권장 되었던 것인데, 이제는 반대로 더 많은 환경 오염을 가져 온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정책도 사람들의 분노를 산 것이겠지만, 디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파리 교외의 저소득층이었고, 이것이 데모를 촉발하였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빈부 격차의 문제에 이어진다.
 
그러나 처음에 데모를 촉발한 원인에 관계없이 데모는 저절로 다른 불만을 표현하는 수단-폭력을 수반하는 항의의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데모를 장기화한 가장 중요한 원인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감세정책의 혜택이 주로 상류층에 돌아갔다는 사실이라고도 이야기된다. 어떤 논평자는 프랑스인에게 프랑스 혁명의 평등 사상, 특히 루소의 평등 사상은 아직도 실현되어야 할 프랑스의 이상이기 때문에 많은 정치적 저항 사건은 쉽게 이 큰 이상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지난 11월에 시작하여 12월 중순까지 계속된 노란 조끼 데모는 1968년 이후의 가장 큰 데모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주동자가 없이 주로 디지털 매체들을 통하여 동원된 집단 행동이었다.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하여, 민중 일반이 직접적으로 쉽게 정치 행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정치와 사회의 발달을 생각할 때 민주주의과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중요한 현상은 바로 이러한 인터넷 매체의 발달이다. 파리의 노란 조끼 데모에 쉽게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조금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인터넷 통신망 덕택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확산되어 있는 이러한 통신망은 사람을 모으는 힘, 구심력(求心力)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적 열정과 행동을 확산하면서 분산시키는, 원심력(遠心力)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원심력은 정치 쟁점을 확산하면서 동시에 그 중심을 희석화하고 다변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리하여 집중과 지속을 어렵게 한다. 파리의 데모가 집중된 목표를 가지지 않고, 지도자 집단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통신 수단의 복합적인 성격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인 삶의 여러 발전은 많은 것들-물질, 지식. 정보, 인력-을 확장하면서 그것이 조성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분산하고 포화상태에 이르게 한다. 위에서 주목한 여러 사건들도 집단 의식에 일어나는 바 그러한 확산과 분산 그리고 분열 현상의 증후였다. 이러한 변화에서 인터넷의 발달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팀 오라일리는 인터넷 통신에 쓰이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자이면서 이론가이다. 그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왜 그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는가(2017)』에서, 디지털 통신의 발달로 하여 경제나 정치의 성격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것은 삶과 사회의 깊은 바탕을 전적으로 다른 것이 되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과 물자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간격을 좁힌 것이다. 수요자와 공급자의 빈번한 정보와 의견 교환은 결국 생산자와 공급자 그리고 소비자로 하여금 다 함께 그 전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그러면서 재정적으로도 그 관계를 비교적 평등한 것이 되게 한다.
 
 
국가와 개인 모두 이익 추구에만 몰두
 
오라일리는 정부 조직과 정책 수행에 있어서도 이러한 소통 관계가 강화됨으로써 정책 수행의 능률과 민주주의적 의의가 크게 강화됨을 실험함 수 있었다고 하고, 이것을 더 크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서 그는 통치자와 피치자(被治者)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하는 민주화 프로그램을 ‘Gov 2.0’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오라일리가 말하는 바 간단없는 소통과 상호 교환 그리고 그것을 통한 편의와 이득의 보다 균등한 확보가 참으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일이 되는 것일까? 고려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진전의 궁극적인 목적과 한계의 문제이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균등하게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여, 그것을 한없이 지속 확장하는 일이 참으로 인간의 인간다움에 보탬이 되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바 국가권력 그리고 국제적 연대의 희석화는 좁은 의미의 이익 사회의 일반화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테두리 안에서 국가는 오로지 이익 추구의 실행 기구가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개인의 삶도 그 테두리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현실적 이해관계를 넘어 도덕적으로 자기 정당화를 일삼는 국가가 좋은 국가일 수는 없다. 집단으로서의 공동선, 개인으로서의 자기완성, 이러한 이상을 포용하는 삶의 테두리는 많은 인간 공동체에게 주어진 다른, 보다 중요한 역사적 과제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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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