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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부자도 역사의 평가는 두려웠다

책 속으로 
자본가의 탄생

자본가의 탄생

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부키
 
비교정치학·정치이론·정치철학과 더불어 정치학의 주요 분과인 국제관계학에서 핵심 단위, 행위자(actor)는 국가다. 유엔·국제통화기금·국제포경위원회 같은 국제기구나 국제사면위원회·국경없는의사회·그린피스 같은 비정부기구(NGO)의 중요성은 이차적이다. 개인은 끼일 틈이 없다. 예외적으로 국제정치를 주물럭거린 ‘1인 국제관계 행위자’가 있다. 『자본가의 탄생』의 주인공인 야코프 푸거(1459~1525)다. 축적한 부의 규모나 역사에 미친 영향력 면에서 메디치·로스차일드·록펠러를 능가하는 푸거가 독일어권 바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이자 증권분석가 출신인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자본가의 탄생』의 원제는 ‘역사상 세계 최고의 부자: 야코프 푸거의 인생과 시대(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이다. 푸거의 인생 못지않게 당시 시대상이 흥미진진하다.
 
푸거의 할아버지는 농민이었다. 할아버지는 도시로 이주해 직물업으로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왕족도 귀족도 아닌 평민인 푸거는 유럽·중남미·인도·중동을 아우르는 ‘돈의 대제국’ 황제가 됐다. 대부업·광산업·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가 세상을 뜰 때 남긴 재산은 오늘 기준으로 4000억 달러. 당시 유럽 GDP의 2%에 해당했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그린 야코프 푸거의 초상화. [사진 요크프로젝트]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그린 야코프 푸거의 초상화. [사진 요크프로젝트]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를 너머 근대를 연 역사의 현장에 푸거는 ‘약방의 감초’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본가 푸거는 황제와 교황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킹메이커였다. 푸거는 유럽에서 B급 왕실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에 돈을 꿔주어 두 명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등극시켰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탄생시켰다. 교황 레오 10세를 움직여 1515년 4월 4일 꾼 돈에 이자를 붙이는 것을 합법화시켰다(이슬람권 금융에서는 푸거가 없었기에 오늘날에도 이자 금지가 원칙이다).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규칙 자체를 바꿨다. 오늘 세계 양대 강국의 우두머리인 트럼프도 시진핑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을 와해시켰다. 독일 농민전쟁(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맞붙은 전쟁이라는 해석도 있다)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도 푸거가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마젤란의 세계 일주에도 물주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금 부정적인 의미에서, 푸거가 없었다면 종교개혁도 없었다. 푸거의 주요 고객은 왕실과 황실, 그리고 바티칸이었는데 바티칸은 푸거에게 꾼 돈을 갚기 위해 면벌부(免罰符, indulgence)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면벌부는 ‘천국행 티켓’이 아니라 고해성사로 용서받은 죗값을 연옥에서 면제받기 위해 필요한 여러 항목 중 하나였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푸거를 맹렬히 비난했다.
 
푸거는 항상 이기는 쪽에 줄을 섰다. 아니 그가 선택한 줄이 이겼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3대 성공비결은 과감함·신중함·무자비함이었다. 또한 푸거는 정보전의 승자였다. 세계 최초의 경제 정보지를 만들었다. 유럽 각지 특파원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푸거는 고래등 같은 저택에 살았다. 그는 오로지 돈만을 추구했다.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빈민들을 위해 ‘사회적 주택 사업’을 펼친 자선 사업가였다. 푸거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붕이 있는 거처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가 남긴 노동자·빈민 주거시설인 푸거라이(Fuggerei)에는 오늘도 사람이 살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관광명소다.
 
푸거처럼 돈·권력·명예의 측면에서 원도 한도 없는 삶을 산 사람들은 무엇이 두려울까. 아마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후의 평가, 자신이 남길 역사적 유산(legacy)을 두려워할 것 같다. 푸거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는 것, 연옥에 오래 머무는 게 두려웠다. 성당을 건설하고 수도원을 후원했다. 푸거라이 입주의 조건 중 하나는 푸거를 위해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것이었다.
 
푸거가 세상을 뜰 때 그가 정략결혼한 아내는 젊은 남성과 바람피우느라 그 자리에 없었다. 신부와 간호사가 그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무자비한 사람이었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기 힘들다.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김환영 대기자/중앙 콘텐트랩 infor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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