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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서 보낸 하룻밤, 아무나 못 보는 절경을 마주하다

깎아질 듯한 해안 절벽 끝, 뭍과 물의 경계에 서 있는 거문도 등대. 해 질 녘 풍경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김경빈 기자거문도 등대. 김경빈 기자

깎아질 듯한 해안 절벽 끝, 뭍과 물의 경계에 서 있는 거문도 등대. 해 질 녘 풍경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김경빈 기자거문도 등대. 김경빈 기자

 한해를 정리하기 분주한 이때,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고 거문도에 들어갔다. 거문도등대에 올라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보고 싶어서였다. 이틀을 등대에 머무르며 어렴풋이 알게 된 게 있다. 등대가 붉은 해로 빛나는 순간은 찰나였다. 태풍이 불고 파도가 들이쳐도 등대는 고깃배 한 척을 위해 늘 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우직한 불빛을 닮고 싶었다. 흔들리고 부침이 있는 삶에 등대처럼 스러지지 않는 등불 하나가 켜지길 바랐다.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새해, 등대 여행을 떠나야 할 진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여수 거문도등대 등대스테이
찻길 연결되지 않은 유일한 등대
동백숲 터널 끝 절벽에 등탑 있어

등대원 관사 여행객 숙소로 운영
우직한 불빛 보며 새 희망 품어

등대의 불빛이 어둑한 하늘을 가로지른다. 김경빈 기자

등대의 불빛이 어둑한 하늘을 가로지른다. 김경빈 기자

 우리나라에는 등대가 무려 1307기나 있다. 홀로 서서 망망대해만 바라보는 까닭에 등대는 ‘외로움’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 우리 등대 대부분은 사람의 온기가 없는 무인 등대다. 무인 등대는 원격 조종된다. 현재 등대를 지키는 등대원(정식 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이 상주하는 유인 등대는 28기뿐이다. 
 해양수산부는 GPS의 발달로 등대의 뱃길 안내 비중이 왜소해지자 유인 등대를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2006년 등대원 관사를 여행자 숙소로 개방한 ‘등대스테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거문도등대를 세밑 여행지로 낙점한 것도 거문도등대가 전국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등대스테이를 운영하는 등대이기 때문이었다. 등대 곁에서 보내는 낮과 밤이 특별하리라 기대했다. 
전남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30분 떨어진 거문도. [중앙포토]

전남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30분 떨어진 거문도. [중앙포토]

 각오는 했지만, 남녘의 섬으로 찾아가는 여정은 고됐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 다시 여수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거문도에 도착했다. 거문도는 여객터미널이 있는 고도와 서도·동도 등 3개 섬으로 이뤄졌는데, 거문도등대는 서도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얼른 여장을 풀고 싶은 마음에 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오솔길에 멈춰 섰다. 등대까지 연결된 찻길이 없어 1.5㎞는 제 발로 걸어가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벌써 다리가 풀렸다. 
 찻길이 이어지지 않은 거문도등대에 닿는 유일한 방법은 걷기다. 등대로 가는 길은 자연 암반을 지나 숲길로 이어진다. [중앙포토]

찻길이 이어지지 않은 거문도등대에 닿는 유일한 방법은 걷기다. 등대로 가는 길은 자연 암반을 지나 숲길로 이어진다. [중앙포토]

동백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등대가 나온다. 김경빈 기자

동백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등대가 나온다. 김경빈 기자

 하릴없이 짐을 지고 등대를 찾아 나섰다. 찰박찰박 파도가 들이치는 암반을 지나 200m 정도 고갯길을 오르니 평탄하고 그윽한 숲길이 드러났다. 벌써 꽃을 틔운 동백나무가 군데군데 터널을 이뤘고, 나무가 듬성듬성해지면 옥빛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평소 같았으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을 법했지만, 양손에 짐이 가득했다. 풍경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얼른 등대가 나타나 주기만을 바랐다. 
 30분쯤 걸었을까. 깎아지는 해안 절벽에 우뚝 솟은 하얀색 등탑이 드러났다. 거문도등대. 1905년 남해안에 최초로 들어선 등대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등대에 들어서는 여행자를 정진우(49) 등대원이 반갑게 맞아줬다. “요즘 같은 시대에 찻길이 뚫리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에 정 등대원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현재 3명이 근무하고 있는데요. 우리도 지게를 지고 1.5㎞ 숲길을 걸어 생필품을 나릅니다. 등대 오는 길이 불편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숲길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등대 중에서 차가 접근할 수 없는 등대는 거문도등대뿐이라고 합니다. 외롭고 힘들게 숲길을 걸어와야 거문도등대에서 보는 풍경이 더 귀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등대원의 관사를 여행자의 숙소로 개방한다. 김경빈 기자

등대원의 관사를 여행자의 숙소로 개방한다. 김경빈 기자

널찍한 등대스테이 숙소 내부. 김경빈 기자

널찍한 등대스테이 숙소 내부. 김경빈 기자

 관사에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너른 바다 풍경이 와락 품에 안겼다. 거문도등대에는 등탑 2기가 벗하고 있었다. 일제가 만든 6.4m 높이의 구(舊)등탑은 작동을 멈췄다. 현재 등대 기능은 2006년 세운 33m 높이의 신(新)등탑이 대신한다고 했다. 신등탑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바다를 내다보니 제주도 옆 우도까지 선명했다. 
 오후 4시 30분을 넘어서자 하늘이 붉어지면서 태양이 바다 아래로 잠길 준비를 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등탑에 달린 등명기가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등대의 눈이라 할 수 있는 등명기는 지름이 1.8m에 달하는데, 거문도등대 등명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프리즘 전구를 쓴단다. 거문도등대가 처음 불을 밝혔을 때의 전구를 여태 사용한다고 하니, 백 년도 넘은 불빛이다. 
지름 1.8m에 달하는 거문도등대 등명기. 김경빈 기자

지름 1.8m에 달하는 거문도등대 등명기. 김경빈 기자

 정 등대원은 거문도등대에 해마다 2만 명이 찾아오지만, 숲길을 걸어와야 하므로 저물 녘에는 외부인의 발길이 끊긴다고 했다. 어둠을 뚫고 바다 위 선박까지 닿는 등명기 불빛은 오직 등대스테이를 체험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장관이라고 생각했다. 거센 파도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등대는 제자리를 지켰고, 영롱한 불빛으로 바닷사람에게 한 줄기 위안을 주었다. 그 빛이 대견했다. 
여행정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 거문도행 배가 뜬다. 오전 7시 20분과 오후 1시 10분 출발한다. 거문도에서는 오전 10시10분과 오후 3시50분 여수행 배가 출발한다. 뱃길로 약 2시간 30분 거리다. 뱃삯 편도 어른 3만6100원, 어린이 1만8800원.   
등대스테이를 운영하는 등대는 모두 4곳이다. 거문도등대(여수지방해양수산청)·속초등대(동해)·간절곶등대(울산)·가덕도등대(부산) 직원 숙소에서 하룻밤 등대지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용 가능 인원은 7∼8명. 1월 1~8일 각 지방해양수산청 홈페이지에서 접수해야 2월에 이용할 수 있다. 가덕도등대를 제외한 3곳은 초·중·고교 자녀를 둔 가족만 이용할 수 있다. 무료. 다만 음식은 직접 해 먹어야 한다.
 
 
 거문도=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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