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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국 첫 위성 ‘우리별’ 아버지 최순달, 과학재단 바통 넘기다

아주대 에너지학과 특임 석좌교수로 일하던 1987년, 한국과학재단의 최순달(31~2014년) 이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최 이사장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공대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일하다 귀국했다. 금성사(현재 LG전자) 중앙연구소장으로 일하다 81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대 소장을 맡아 전전자 교환기(TDX) 개발사업을 펼쳐 ‘한국 정보통신의 선구자’로 불렸다. 82~83년 체신부 장관을 지냈고 85~87년 한국과학기술대학(현재 카이스트 학사과정) 학장으로 일하다 87~89년 과학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으로 일하며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1호를 개발할 당시의 최순달 박사. [중앙포토]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으로 일하며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1호를 개발할 당시의 최순달 박사. [중앙포토]

다채로운 경력만큼 업무 추진력도 강한 최 이사장은 “미국과학재단 고위간부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우리 과학재단이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정책을 구상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아주대 에너지 문제연구소(ESRC)를 기반으로 전문가팀을 구성해 ‘한국 대학계의 연구 활성화를 위한 정책연구’를 수행했다. 최 이사장은 내게 과학재단 정책자문위원장도 맡아 연구결과를 시행해달라고 부탁해 이를 받아들였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13)
<66> 대학연구 활성화 착수
정보통신 시대 이끈 TDX 개발 추진
체신부 장관 거쳐 과학재단 이사장
대학 연구기능 활성화에 시선집중
일해재단 경력 때문 청문회 선 뒤
과학재단 그만두고 교육연구로
카이스트에 인공위성연구센터 창설
한국 첫 인공위성 우리별 1 2호 발사

당시까지 정부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정부 출연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당시 고급 과학기술자의 84%가 근무하는 대학은 연구개발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교육 기능에 머물러야 했다. 미국 과학재단(NSF)이 설립 초기부터 대학 인재를 연구개발에 활용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던 것과 비교가 됐다. 한국이 과학기술 두뇌 활용도를 높이려면 대학 인재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연구 풍토에 새 바람을 일으켜야 했다. 아울러 대학이 집단·대규모·장기 연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연구체계도 혁신해야 했다. 나는 미국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소나 매사추세츠 공대(MIT) 전자연구소처럼 정부의 장기지원을 받으며 교수·학생이 대규모 집단 연구를 수행하는 체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고 최 이사장과도 의기투합했다. 
소형 인공위성시대를 연 우리별 제작팀이 우리별 실물크기 모형을 중심으로 위성지구국에 함께 모였다. 모형 바로 오른쪽이 최순달 인공위성센터 소장이다.[중앙포토]

소형 인공위성시대를 연 우리별 제작팀이 우리별 실물크기 모형을 중심으로 위성지구국에 함께 모였다. 모형 바로 오른쪽이 최순달 인공위성센터 소장이다.[중앙포토]

그런데 최 이사장이 88년 11월 5공 비리 조사특위의 청문회에 출석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구공고 동문인 그는 83년 일해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을 당시 기금 모금의 강제성 여부가 논란이 되자 증인으로 소환됐다. 그 뒤 최 박사는 과학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고 카이스트 교수가 돼 96년 정년까지 재직했다. 그동안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세우고 초대 소장을 맡아 한국 과학사의 전설이 된 업적을 남겼다. 92년 첫 한국 국적 위성인 우리별 1호를 발사해 한국을 22번째 위성보유국으로 만들면서 ‘인공위성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93년 최초의 국내 제작위성인 우리별 2호를 발사했고, 퇴임 뒤 2000년까지 명예소장을 맡아 최초 독자위성인 우리별 3호 발사까지 챙겼다. 
1977년 한국과학재단 현판식 모습.[중앙포토]

1977년 한국과학재단 현판식 모습.[중앙포토]

공교롭게도 최 이사장 후임에 정책위원장인 내가 선임됐다. 아주대 특별석좌교수직을 휴직하고 자리를 맡으면서 내가 제안한 대학연구 개선방안을 직접 실천에 옮기는 입장이 됐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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