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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문재인 정부의 내부자들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되길 바란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탄절 메시지가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썰렁한 대접을 받자 청와대는 섭섭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의 덕담조차 덕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바우 같은 인색한 모습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세상인심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 보다는 걱정부터 앞서는 게 서민들의 삶이다. 유시민 작가의 분위기 전환용 발언이 ‘20대 남성 비하’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집권층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섭섭함과 실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실없는 소리를 한 대가가 아닐까.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 본 적이 있냐”는 일 년 전 시민들의 호소는 아마 내년 이맘때도 틀리지 않을 것이란 슬픈 예감으로 다가온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경제난과 각종 정치적·사회적 위기에 대처하는 이 정부 인사들의 언행이 윤똑똑이(저 혼자만 잘나고 영리한 척하는 사람)를 연상케 한다. 헛똑똑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내력 게이지도 그만큼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김태우 검찰수사관 사건에서 비롯된 민간인 불법 사찰과 현 정부 인사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청와대 인사들의 반응과 대응은 “역시 사람들은 변하나 봐!”라는 자조를 토해내게 한다. 권력의 힘에 취한 걸까, 아니면 법전과 교과서의 활자를 진실로 이끄는 마력으로 느낀 걸까. 현실감 없는 청와대 참모진들의 토설(吐說)과도 같은 언어의 유희는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꿈꿔왔던 정의로운 사회도 결국 미몽에 불과했다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해 준다. “촛불정신을 구현하고 국가의 모든 제도를 정의의 원칙에 따라 다시 짜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민이 주인인 정부와 더불어 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권위주의와 소통 부재의 상징이던 박근혜 정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맞을 수 있다는 희망이 고문에 불과했음을 아는데 일 년 반이면 족했던 것이 우리의 아픔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절차적 정의도, 분배적 정의도, 교정(矯正)적 정의도 정의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이명박 정부 때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선 그토록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미꾸라지와 DNA를 동원해 은근슬쩍 빠져나가고 있다. “민간인 사찰은 대통령 탄핵감”이라던 외침이 아직도 귓전을 생생하게 때린다. 현 정부 초기 민정수석실 자리를 재배치하면서 캐비넷에서 적폐를 상징하는 문건들이 발견됐다며 대변인이 생방송까지 자처해 공개한 것과 김태우 사건은 뭐가 다른가.
 
불법과 합법의 차이는 권력 실세와 급이 낮은 공무원과의 간격인가. 재판 막판에 문건을 쏟아내는 행위야말로 재판 개입이요, 정치의 사법화일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움켜쥔 검찰은 결과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없다. “심사숙고 중”이라는 말밖에 없다. “형사고발을 당해 묵비권이 있어 국회에 출석할 수 없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그렇듯한 법 논리에 고개를 끄덕일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이들이 진실을 원하는 것인지, 정의를 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혹시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진실로 만들고, 이를 통해 정의를 말하려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청와대와 검찰이 정국을 뒤흔들면서 사법부도 갈팡질팡하긴 마찬가지다. 내부의 여론을 듣겠다며 고법 부장판사들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비판적 발언이 나오자 “앞으론 법원 내부 얘기는 하지 말자”는 수장의 대응은 어떻게 봐야 하나. “(법원이 여론에 휘둘리면) 나쁜 대법원장 소리를 듣게 된다”는 후배 판사의 충언도 못 받아들이면 거대 사법부를 지휘하기 어렵다. 그러니 “너는 누구 편이냐”는 과거의 발언이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는 것 아닌가. 정의의 여신이 경계했던 것은 권력과 편견이었는데도 말이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많은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정의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권력자나 재력가가 아닌 일반 서민들도 정당하게 대접받고 분배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정의는 더 강한 자를 위한 이익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부정적 얘기 대신 “정의롭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산다”는 긍정의 새해를 맞고 싶어서다.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려면 집권층의 능력보다는 솔직하고 투명한 대응이 우선일 것이다. 애매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빠져나가는 것은 반칙과 특권일 뿐이다. 20년 집권이니 뭐니 하는 정치적 구호에 휩싸여 눈먼 정의만 얘기해선 안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내부자’들이여. 욕심과 아집,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내려놓고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 하시는 게 어떨지.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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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