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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노란조끼 그리고 쇼윈도 밖의 분노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요즘 프랑스를 넘어 서유럽으로 번지고 있는 노란조끼 운동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분노 2.0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경보음이다. 팍팍해지는 서민들의 삶에 분노하는 노란조끼 운동은 프랑스 정치의 중심, 파리뿐 아니라 인구 2만~3만의 작은 마을들에서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노란조끼를 입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이들은 직장을 잃은 젊은 경계인들이 아니다. 11월 17일 노란조끼 운동의 불을 붙인 에릭 드루에(Eric Drouet)는 평범한 트럭운전사였다.
 
노란조끼 운동은 전혀 중심 세력이나 핵심 서클이 드러나지 않는 리더 없는 풀뿌리운동이다. 공권력과의 물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점에서 노란조끼 운동은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도 사뭇 다르다.
 
우리 사회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다양한 색깔의 분노가 곳곳에서 넘실거렸다. 어둡고 좁디좁은 곳에서 일하던 청년 김용균의 허망한 죽음이 일깨우는 검은 분노. BTS가 이끄는 글로벌 코리아의 화려한 물결에서 밀려나고 있는 노년들의 황혼빛 분노.
 
그런데 TV의 굵직한 자막, 제도권 논객들의 말과 글, 민주노총의 열띤 집회, 이 모든 것들을 그저 ‘그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투명한 무채색 분노가 있다. 이들은 ‘그들의 세계’에 끼어들 시간도, 기회도 없다. 다만 희미하게, 조용히 분노를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다. 이들에게 작업장 위험의 외주화니, 최저임금제니 하는 제도권의 말들은 들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말과 글이 통과하지 못하는 투명한 유리 장벽이 제도권과 이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유리  장벽 밖의 젊은이들은 공시나 고시를 준비하면서 불안한 미래에 분노할 여유와 시간조차 없다. 유리 장벽 밖의 나이든 이들은 한낮에 TV 프로그램의 말싸움을 지켜보며 분노할 여유가 없다. 그 시간에 이들은 그날그날의 생존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유리 장벽 밖의 분노가 들리지 않는 동안 ① 여의도 정치는 시민들의 분노를 주제로 삼아 정쟁의 드라마에 열중해 왔다. ② 한편 정부는 시민들의 분노 지수를 알고 있고, 따라서 정책을 통해 격차 분노를 관리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대처해 왔다.
 
여의도 정치는 시민들의 분노하는 삶을 해결하기보다는 드라마화하는 데에 더 능숙하다. 여의도 정치의 주연들은 비극적 사고가 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언어로 말한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여당 대표는 일하는 청년 김용균의 비극적 사건 이후 태안 화력발전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 방문은 그 어둡고 좁은 작업장의 대대적인 청소와 단장, 컨베이어 벨트 운행 중단 이후의 일이었다. 쇼윈도 밖의 차가운 현실은 이렇게 차단된다.
 
정쟁의 드라마는 현실의 복잡함과 디테일을 소화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 이후 청년 김용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산업현장의 안전을 주제로 한 정치드라마는 계속 상영돼 왔다. 하지만 정작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만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여전히 국회의사당 한쪽을 떠돌고 있다.
 
한편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현 정부는 여의도 정치보다는 시민들의 삶의 분노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한 것은 분명하다. 진정성을 갖고 진지하게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민들의 삶의 분노가 올 한 해 더 높아진 까닭은 무엇일까?
 
문제는 정부의 일하는 방식, 정부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최저임금 인상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시민들 삶의 팍팍한 현실을 정부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최적화된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 해법의 효과를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 영세 자영업자,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주변부 노동자들, 복잡한 임금체계 등이 미로처럼 얽힌 생활세계에 16%(2018년), 10%(2019년)의 최저임금 인상을 법으로 강제한 것은 지식국가의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식국가의 시야는 정치적 힘을 갖춘 민주노총, 고학력 진보 성향의 시민들, 진보 지식인들의 세계에 갇혀 있다.
 
여의도의 정치 드라마도, 방대한 조직을 갖춘 정부의 노력도 유리 성벽 밖의 조용하고 투명한 분노는 듣지 못한다. 어두운 공장에서, 반지하 쪽방에서 분노는 계속 자라고 있다. 아직 유리 성벽이 깨지는 분노의 결정적 순간은 오직 않았다. 정치와 정부가 그리고 우리가 눈과 귀를 열어야 할 시간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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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