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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방열복도 없이 쇳물 작업…그들이 김용균법 시초

산업화 역사 담긴 안전보건법 37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 소식을 전해듣고 김용균씨 직장 동료와 포옹하고 있다. [뉴스1]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 소식을 전해듣고 김용균씨 직장 동료와 포옹하고 있다. [뉴스1]

산업안전보건법에는 한국 노동과 산업의 역사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국회는 27일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을 통과시켰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가 한국 사회에 남긴 교훈은 산업안전보건법에 하나의 조항으로 남았다. 과거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이 그렇게 산업안전보건법에 흔적을 새겼다.
 
① 1년에 1300명 공장서 죽는 나라=1981년 5월 서울 구로공단의 한 주물공장 대표가 구속됐다. 이 공장에서 5년간 494명이나 일하다 다쳤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방열복도 없이 1500도가 넘는 쇳물을 쇠바가지로 옮기는 일을 하다 화상을 입었다. 구속되던 대표는 “우리 공장 정도면 안전시설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고 당시 보도는 전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처음 제정된 때가 그해 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자 안전에 대한 내용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간략해 있으나마였다. 당시 정부 조사를 보면 1980년 한 해 동안 산업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1273명이었다. 다쳐서 신체 일부가 영구 불능된 노동자가 1만4900여 명, 이 외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가 9만7200여 명이었다. 이마저도 실제보다 축소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산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한국노총은 “근로자 안전·보건에 대한 법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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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정된 산업안정보건법엔 산재 예방을 위한 사업주·노동자의 의무 등이 명시됐다. 법의 ‘제정 이유’ 첫 줄은 ‘중화학공업의 추진 등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로 시작한다. 산업화에 대한 반성이 법에 담긴 건 이때가 처음이다.
 
② 위험물질 공포=1988년 한 남성이 출근 준비를 하던 중 헛구역질을 하다가 쓰러졌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도금공장에서 4년 동안 일한 이였다. 그는 1년 전부터 노란 땀을 흘리고, 이가 누렇게 변하고, 온몸에서 기력이 빠지는 증상을 겪었다고 한다. 병원 검사 결과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이었는데, 몸에선 기준치보다 25배 많은 카드뮴이 검출됐다. 카드뮴 중독, 이른바 ‘이타이이타이병’ 국내 첫 사례였다.
 
1990년대 초 한국 사회는 위험물질 공포에 휩싸였다. 미나마타병을 일으킨다며 수은전지를 쓰지 말자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때 형성됐다. 특히 산업현장의 위험물질 공포는 더 높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85년 위험물질 사용 시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한국 법에까지 적용된 건 10년 뒤다. 1995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위험 물질’이라는 단어가 법 조항에 들어갔다. 법은 화학물질 사용 시 주의사항을 공장에 비치하도록 규정했다.
 
③ 급증하는 외국인 노동자=2000년대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급증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를 보면 2001년 56만6835명에서 2010년 126만1415명으로 10년 만에 두 배가 넘게 됐다. 덩달아 외국인 노동자도 늘어났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당시 중소기업 인력난과 저출산의 해법으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에 관대한 정책을 편 것도 이유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면서 공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일도 늘었다. 2005년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 원인 중 15%가 산재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2007년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계의 변화된 인력 구조를 담아 개정됐다.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이란 표현이 법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위험한 시설·장소에 대한 안전·보건 표지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었는데, 외국인을 채용한 사업주는 외국어로 안전·보건 표지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발생 원인 가운데 44.8%가 언어소통 미흡으로 작업안전수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반영한 결과다.
 
2007년 국내 첫 석면 피해 소송에서 1억6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원점순씨가 1970년대 부산 제일화학에서 근무하는 모습. [사진 환경운동연합]

2007년 국내 첫 석면 피해 소송에서 1억6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원점순씨가 1970년대 부산 제일화학에서 근무하는 모습. [사진 환경운동연합]

④ 첫 석면 소송=원점순씨는 국내 최대 석면방직공장인 부산 제일화학에서 1976~78년 일했다. 퇴사 26년 만인 2004년 그는 악성중피종(석면으로 인한 암) 진단을 받았다. 원씨는 제일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06년 숨졌다. 대구지법은 2007년 제일화학이 원씨 유족에게 1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내 첫 석면 피해 판결이다.
 
이후 사회적으로 ‘침묵의 살인자’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석면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을 철거하는 게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석면 건축물 철거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국회는 2009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석면 건축물 해체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조항을 집어넣었다. 일정 기준 이상의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 철거는 전문 석면 해체업자가 해체토록 한 것이다.
 
⑤ 감정을 팝니다=2014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의 경비원 이모씨가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동료 경비원은 “(주민들이 경비원에게) 유효기간이 지나 냉동실에 보관하던 과자를 개한테 주듯 5층에서 화단으로 던져주면서 먹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분신 당일에도 주민에게 욕설을 들었다. 이씨는 분신 한 달 뒤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감정노동에 의한 산재라고 인정했다.
 
2010년대 노동계 최대 이슈는 감정노동이다. 정부와 국회는 올 초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이란 단어를 집어넣었다.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처’를 사업주의 의무사항으로 추가한 것이다. 신체를 다치는 것뿐 아니라 마음을 다치는 것까지 법으로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개정 이유’ 첫 줄은 ‘최근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가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로 시작한다. 1981년 중화학공업 중심 산업에서 2018년 서비스산업으로 한국 사회가 바뀐 것이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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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