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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다시 만난 장영자

이가영 사회팀 차장

이가영 사회팀 차장

강화유리가 가로막았어도 윤이 나는 피부는 감춰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 안에서도 어쩜 그리 유지를 잘 하시냐”가 나와 버렸다. 표정은 당당했고 허리는 꼿꼿했으며 말은 청산유수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위정자들이 잘못 한다며 조목조목 따졌다. 급기야 정치부 소속이던 기자가 쓴 기사를 흔들며 “박근혜더러 좀 잘하라고 하세요”라고 질책했다. 지면 곳곳의 형광펜 자국이 얼마나 신문을 꼼꼼히 읽었는지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주인공은 장영자. 기자는 2000년 이른바 구권화폐 사기 사건으로 그가 세 번째 구속될 당시 사건을 취재하며 그와 접촉했다. 서초동 그의 빌라 앞에서 몇 날 밤을 새웠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발신지표시제한으로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것도 인연이었는지 2004~2005년 무렵 장씨가 남편(고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을 통해 “면회를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전혀 예상밖이었지만 보고 싶었다. 영등포구치소에서 마주한 장씨는 쉴새없이 자신의 말만 풀어 냈다.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너무나 해박해 하마터면 훅 넘어갈 뻔했다. 그러다 정치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자신이 언급한 여러 사람을 잘 안다는, 과장된 얘기들을 듣고 있자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 뒤로 가끔 “사람들이 그의 그런 유려함에 속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왜 보자고 했을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을 수도, 아직도 건재하다는 걸 보이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후 관련 보도가 나오면 장씨의 근황에 관심이 갔다.
 
최근 궁금증이 해소됐다. 네 번째 구속, 보석 신청과 기각, 사선 변호인들의 줄사퇴, 국선 변호인의 조력 등 장씨 뉴스가 잇따라 전해졌다. 변호인에게 도자기를 팔아 달라 했는데 가짜였다는 소식도 있다. 변호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활기차고 영리하며 달변인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또 다른 여전함이 있다. ‘믿을 수 없다’는 평가, ‘진실하지 않다’는 시선이다. 세상을 뒤흔든 사기사건의 주범인 장씨는 일생의 절반가량을 감옥에서 보내고도 자신에 대한 세평을 결국 바꿔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몇 년 만에 돌아온 출입처(법조계)에서 20여 년 전 인연이 닿았던 장씨와 조우하게 됐다. 재판 결과에 따라 장씨는 아마 좀 더 자유가 뺏긴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이 과연 그의 마지막 감옥살이가 될 수 있을까. 비록 기자와 (피의자로서의) 취재원 관계였지만 배금주의가 지배했던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듯한 그의 인생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이가영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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