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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극단선택한 날 밤샘조사까지...유족 배려 못한 경찰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20) 
 
“유가족이 아니라 피의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전은주(49)씨의 남동생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날 전씨는 경찰서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새 이어졌다. 전씨는 형사들의 질문에 답만 했다. 조사과정에서 유가족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전씨는 동생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만 쌓였다. 조사가 끝날 때쯤 '사건 처리를 위한 하나의 절차이겠지'라고 자위했지만, 고통에 절망했다. 그 일 이후 전씨와 그 가족은 종종 서로 화를 내고 다퉜다. 슬픔을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전씨는 "사건 이후 가족을 다시 볼 자신이 없어졌다"며 "1년 넘게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낮 12시 30분 서울 마포구 복층 집 다락방. 자살유가족모임 ‘우리들의 다락방’에는 전씨를 비롯해 9년 전 남편을 잃은 김혜정(52)씨와 아들 김다형(20)씨. 28년 전 오빠를 잃은 이채영(51)씨가 모였다. 이들은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그동안 쌓인 고통을 털어놨다. 자살자의 유가족이 외부로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들은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한다. 최모(59)씨는 취재를 사양했다.  
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복층집 다락방에서 자살유가족들이 준비한 시를 읽으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김혜정씨 ]

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복층집 다락방에서 자살유가족들이 준비한 시를 읽으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김혜정씨 ]

 시간이 흘러도 고통은 크다. 김씨는 “유가족들을 만나보면 가족을 잃고 1년이 지나든, 40년이 지나든 고통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씨도 "아직도 오빠가 꿈에 늘 나타난다"고 했다. 주변에선 이씨에게 그 일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유가족들이 극단적 선택을 겪게 되면 처음엔 그 사실을 부인하고 나중엔 분노·수치심·죄책감을 복합적으로 느낀다”며 “유가족들이 ‘가족이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와 같은 해답 없는 고민을 평생 짊어진다”고 말했다. 
 
 자살유가족은 쉽게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다. 김다형씨는 “이 모임 전까지는 자살 유가족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발표된 자살유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대인관계 단절·회피 및 업무 효율성 저하(72.2%)를 가장 많이 경험했고 우울증(41.7%)·불면증(37.5%)도 겪었다. 
 
 무엇보다도 편견이 힘들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약 1만 3000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약 8만 명의 유가족이 생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자살유가족을 쉽게 볼 수 없다. 섣불리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서다. 또 극단적 선택을 한 당사자에 대해 나약하다거나 피폐한 삶을 살았을 것이란 편견도 있다. 김혜정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당시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일 뿐"이라며 "이런 편견은 함께 살아온 유가족에 대한 폄하"라고 말했다. 자살 유가족의 극단적 선택 위험은 일반인보다 8배 높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유가족 모임은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들의 다락방’ 유가족모임은 함께 시를 읽고 감정을 표현하며 떠난 이를 애도한다. 김다형씨는 “처음엔 서로 낯설어 어려운 이야기를 못 꺼냈지만 나만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고는 서로 많은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유가족들은 유가족 모임(72.2%)이 상처치유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가족·친척(59.9%)보다 더 많이 의지한다. 
 
 이채영씨는 “자살유가족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이 잘 되면 좋겠다”며 "국가 차원의 자살유가족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도 자살유가족을 돕는다. 작년에는 91건의 유가족 면담을 진행했고 올해는 11월까지 124건을 했다. 센터에는 12명의 심리부검요원이 있다. 8만 명에 달하는 자살유가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김혜정씨는 “남편이 지금이라도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고 말한다. 이씨는 “이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며 "먼저 떠난 오빠의 삶을 존중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씨는 “동생의 삶에 누를 끼치지 않고 싶다"며 "세상이 유가족을 어둠이나 죄책감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먼저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과 존중이 담긴 말을 전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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