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 중국, 85년 서울 원자력회의 참가 9년 뒤 원전시대 개막

1985년 ‘태평양 연안 원자력 회의(PBNC)’ 서울 대회는 규모와 내용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유치 당시 약속대로 미수교국 중국의 대표단도 초청했다. 이들은 열심히 질문하면서 한국 원자력 현황을 파악하고 돌아갔다. 나는 이 대회가 중국 원전 굴기의 자극제가 됐고 중국이 한국을 벤치마킹해 대규모 건설 계획을 세웠다고 믿는다. 9년 뒤인 94년 4월 저장(浙江)성 친산(秦山) 원전 1호기의 첫 상업운전으로 원전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78년 4월 고리원전 1호기의 상업운전을 시작한 한국보다 16년 늦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 100여기를 운영할 예정이다. 사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기술자문을 하는 광둥성 링아오 원전 건설 현장. [중앙포토]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 100여기를 운영할 예정이다. 사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기술자문을 하는 광둥성 링아오 원전 건설 현장. [중앙포토]

현재 중국은 원자로 44기를 가동하고 13기를 짓고 있다. 2030년까지 100기 이상을 가동해 현재 전력의 3%쯤인 원자력 비율을 2030년 10%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체 발전의 73%를 차지하는 석탄을 원자력으로 대체해 스모그와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경제발전으로 급증한 석유·천연가스 수입을 원자력으로 대체하겠다는 에너지 자립 의지도 엿보인다. 원전 수출을 노릴 가능성도 커 보인다. 
중국이 러시아와 합작으로 최근 건설한 원전의 모습. 중국 원전 산업은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사진 중국핵공업]

중국이 러시아와 합작으로 최근 건설한 원전의 모습. 중국 원전 산업은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사진 중국핵공업]

85년 서울 PBNC 대회에선 지역 원자력 협의체인 ‘태평양 연안 원자력 협력 위원회(PBNCC)’ 결성의 성과를 거뒀다. 이로써 미국원자력학회(ANS)가 주도하던 PBNC를 회원국 모두가 참가하는 위원회에서 맡게 됐다. 지금은 태평양 원자력회의(PNC)로 불린다. PBNCC 초대 공동 위원장으로 루이스 매닝 먼칭 미국원자력학회장과 내가 선임됐다. 이를 계기로 국제 원자력 협력사업에 진출하게 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일할 기회도 얻었다. 
이듬해인 86년 4월 26일 소련 우크라이나 지역의 체르노빌 4호 원전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방사능이 누출되는 충격적인 사고가 터졌다. 29명이 숨지고 주민 9만 명이 이주했다. 사고 원자로는 흑연감속 비등형인 100만kW급 RBMK-1000형이었다. 이 형태의 원자로는 핵무기 원료를 추출하기 쉬워 소련이 선호했지만 사고 뒤 모두 폐쇄됐다. 한국은 처음부터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핵물질 확보와 무관하고 안전성도 높은 가압형 원자로를 채택했다. 
원자로를 콘크리트로 봉인해버린 체르노빌 4호 원전. [중앙포토]

원자로를 콘크리트로 봉인해버린 체르노빌 4호 원전. [중앙포토]

사고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안전을 지상과제로 삼고 전문가를 모아 국제 원자력 안전 자문위원회(INSAG)를 조직했다. 나도 초대 위원으로 위촉받아 사고를 철저히 검토해 강화한 안전규제 요건을 마련했다. 모든 원전의 설계·건설·운전·보수·운영에서 필수 안전장치와 안전조작 지침도 제시했다. 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원전 안전 기본원칙’을 확립하고 원전안전 수칙을 국제화했으며 안전문화 개념도 확립했다. 한국도 이를 계기로 안전한 원전 개발·운용을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국제 협력체제 구축에도 앞장섰다. 
모든 새로운 기술은 태생기에 검증을 거쳐야 하고 사회 정착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원전 기술은 냉전 중 개발됐고 일반인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고도의 복합 과학기술이었기에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