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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새 시대의 감수성과 일관성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페미니즘, 소수자 운동, 동물권 운동, 그 외에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각종 운동의 시대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의제들은 아니다. 하지만 목소리의 수와 거기에 실린 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지고 커졌다. 각기 분리된 개별 캠페인이라고 보기에는 그 밑바닥에 어떤 공통의식이 있는 것 같고 지지자도 상당히 겹친다.
 
새 시대가 오는 걸까?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중대한 혁명의 시기에 있다고 흥분한다. 반대편에서는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어 중 최악의 의미일 문화대혁명을 언급한다. 어느 시대나 늘 이 정도 진통을 겪으며 발전한다는 부드러운 반응도 있다. 이 움직임이 긍정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다고, 한 시절의 ‘무드’에 그치리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새 시대란 무엇일까? 새 시대가 온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그것은 사회 규범이 바뀐다는 의미다. 어제까지 불가능하던 것이 오늘부터 할 수 있게 되고, 어제까지는 괜찮았던 것이 오늘부터 할 수 없게 되는 것, 그리고 이 새로운 기준이 모레나 글피 폐기되지 않고 한동안 적용되리라는 믿음이다.
 
새로운 규범, 새로운 기준을 말하는 바람은 지금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부는 것 같다. 이제는 혼란스러운 개념이 되어버린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옛 틀이 이 바람의 기원과 경로를 분석하기에 적합한지 모르겠다. 차라리 감수성과 일관성이라는 용어는 어떨까 제안해 본다.
 
처음에 이 바람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기 시작한다. ‘이거 이상하지 않아?’ 하고 누군가 문제를 제기한다. 동의가 많아지면 문제제기는 담론이 되어 사상의 자유 시장에 올라온다. 여기서 그 담론은 일관성을 따지는 그룹의 검증을 받는다. 어떤 생각이 규범이 되려면 보편성을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사회 규범은 너에게나 나에게나 똑같이 적용돼야 하고, 기존의 다른 규범들과도 매끄럽게 연결돼야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나는 여러 진보운동들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사회 규범을 바꿔서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온 폭력과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믿어서다. 불행히도 그것을 가능케 할 한국의 담론 시장은 지금 거의 망가진 상태다. 감수성 그룹과 일관성 그룹이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기는커녕,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감정싸움만 벌이는 것 같다.
 
감수성 그룹이 보기에 일관성 그룹은 반동이다. 그들이 진부하고 악의적인 반론으로 논의를 가로막고 훼손한다. 생명감수성의 확장을 이야기할 때 ‘왜 개는 먹으면 안 되고 소와 돼지는 괜찮은가’라고 시비를 건다. 언어감수성을 말할 때 ‘우리가 하면 풍자, 너희가 하면 혐오표현이란 얘기냐’고 비아냥거린다. 가장 악명 높은 질문은 군대와 관련된 것들이다.
 
일관성 그룹이 보기에 감수성 그룹은 선동이다. 그들은 자극적인 사례를 내세워 빈틈 많은 주장을 새 도덕률이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한다. 공감과 연민의 연대는 종종 선택적이다. 원래 감정 이입의 속성이 그렇다. 그것이 일관성 그룹의 눈에는 편협, 불공정으로 보인다.
 
아예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에 양측은 상대의 지적 치열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는 토론 공간 자체가 사라지는 것 같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너는 너의 매체에서, 나는 나의 게시판에서 끼리끼리 귀를 막고 글을 쓴다. 그렇게 서로 발목을 잡고 하강 나선을 그리며 추락, 퇴행한다.
 
한국 사회가 너무나 후진적이었을 때는, 새 규범을 말할 여유도 없었다. 이미 만들어 놓은 법을 지키자고 외쳐야 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같은 당연한 요구가 통하지 않았다. 호주제, 동성동본 금혼제도처럼 이치에 맞지 않고 세계의 기준과도 동떨어진 괴이한 제도가 2000년대 들어 겨우 사라졌다. 그때 사회개혁은 상식 대 비상식의 싸움이었다. 사상의 자유 시장보다는 그 다음 단계가 문제였다.
 
이제 우리는 그 상식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이것을 제대로 해내면 새 시대가 열린다. 나는 이 작업에 지름길은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밟아야 할 과정을 건너뛰면 부작용이 생긴다. 맥락과 층위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마지막에는 기존 상식과 규범이 모두 그래왔듯이, 새 규범도 어떤 딜레마를 품은 채로 적용될 것이다. 그 규범이 폭력과 고통뿐 아니라 금기의 총량 역시 줄이는 방향이길 바란다.
 
감수성과 일관성은 새 시대를 만드는 도구이자 무기다. 새에게 좌우의 날개가 있듯 우리의 이성에는 감수성과 일관성이라는 날개가 있다. 어떻게 자세를 바로잡고 날아오를 것인가.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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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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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